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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정수자/시인
2010-07-16 09:16:19최종 업데이트 : 2010-07-16 09:16:1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꽃은 아름다움의 으뜸이다. 아니 아름다움 그 자체다. 미(美)의 핵이요, 상징이요, 한 생의 찬란한 개화다. 꽃은 그렇게 오랫동안 아름다움의 정수로 찬양되어왔다. 뭇 아름다움의 여왕으로 군림해왔다. 세상에 그 무엇이 꽃보다 아름다우랴.

그런데 그보다 아름다운 게 있다. 다름 아닌 사람이다. 하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안치환 노래가 높은 호소력을 발휘한 지도 꽤 되었다. 시인들은 물론 사람의 아름다움을 더 다양하게 더 웅숭깊게 노래해왔다. 품에 따라, 노력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꽃의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겠다. 그 중에도 사람이 이루는 세상의 많은 일,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들이 우선일 듯싶다. 서로 어깨를 겯고 암담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모습들도 아름답고, 힘든 이웃을 돌보며 같이 웃는 얼굴들 또한 아름답고, 한 세계의 진경을 위한 예술인의 고투들도 아름답다. 돌아보면 진실이 담긴 어떤 행위들은 다 귀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 말에는 오해의 소지도 있다. 사람이 더 중하다는 인간 중심주의 혐의 때문이다. 사실 사람은 만물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존재다. 어느 생명체보다 다양하게 줄기차게 다른 생명체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어느 동물도 심지어 동물의 제왕이라는 맹수까지도 먹이 사슬을 벗어난 식도락을 인간처럼 즐기지는 않는다. 그것도 배가 고프면 먹는 정도로 먹이구조의 정도를 지키는데, 인간은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즐기고 제멋대로 생태를 유린한다.

인간들이 그렇게 즐기는 동안 생태계는 회복 불능의 환자로 전락했다. 그 재앙이 얼마나 끔찍할지는 수없이 예고되었고, 경고가 현실이 되는 장면을 수없이 닥뜨리고 있다. 하여 어떻게 하면 파괴를 줄일지, 그 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실천은 만만치가 않다. 무엇보다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기본 욕망을 줄이기가 어렵다. 자발적 가난을 택하는 소수 외에는 욕망의 그물 안에서 남들과 어슷비슷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현실적 대안은 '절제'다. 이 시대에 가장 긴요한 것을 꼽는다면 절제, 즉 청빈의 정신을 들고 싶다. 특히 소비 욕망의 절제가 절실하다. 조금씩 '덜 사고, 덜 먹고, 덜 쓰기'가 바로 자신, 집안, 나라, 나아가 세계를 구하는 지름길이다. 예전에 한참 사회운동으로 삼았던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를 일상화해야 한다. 뜻 있는 사람들이 이를 생활화하여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세상을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그이는 손에 부채를 든 사람이다. 절제를 아는 사람이다. 포식 대신 소식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간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웬만한 거리는 선뜻 걸어서 다니는 사람이다. 차 안의 구부린 의자 보행이 아니라 햇살 바람의 손을 잡고 직립 보행을 즐기는 사람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넘치면 세상은 더 아름다울 터. 걸어 다니는 꽃들로 화성 안도 더 환하게 피어날 터. 그런 보행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시에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존중받고 다른 생명과 더불어 꽃이 되는 우리 시를 다시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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