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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수여선 협궤열차를 그리워하며
강대욱/경기도 박물관 초대관장
2010-09-16 17:54:01최종 업데이트 : 2010-09-16 17:54:0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수원역에서 출발하는 수인선은 고색동을 지나 오목천동, 황구지천 물줄기를 가로질러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를 거쳐 인천의 바닷가를 지나던 전동차가 아닌 증기기관차였다. 

석탄으로 동력원인 수증기를 작동, 칙칙폭폭 한 시대 낭만의 농촌풍경을 대변했던 서민교통의 향수, 생활현장을 잇는 교통수단이었다. 

1942년 중앙선이 개통되어 서울 청량리역에서 원주, 경주를 잇는 중앙선 광궤철도(廣軌鐵道)가 개통되어 경부선에 이은 한국 제2의 종관철도로 철도 연변일대의 광산농산 및 임산물을 내륙지방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전 수원 여주, 수원 인천 지역, 경기도를 동서로 연결 물류기지의 역할을 하던 수원의 지리, 그것은 경부선이 관통하고 협궤열차(挾軌列車)의 출발점이었다는데 있다. 

1970년대 후반, 공무원 시절 수원의 향수 협궤열차의 낭만이 그리워 수인선 노정을 창밖으로 즐기며 서해포구, 소래역까지 다녀온 여정, 그리고 여주에서 이천의 누님댁이 있는 호법면 유산역까지 덜컹덜컹하며 달리는 수여선의 생활상, 마주보는 좌석 좁은 공간이었지만 그 시절이 그립다.

1930년 수여선, 1937년 수인선이 개통되어 1995년(수인선)까지 한시대 수원의 교통명물이었던 협궤열차의 재현(수원역, 고색동, 오목천동 구간)으로 흘러간 세월을 반추해 보는 관광명품이 되는 것도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찾는 내․외국인에게 전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수원의 명물이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영국의 맨체스터와 리버풀 사이를 거대한 쇳덩어리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시속 60km로 철로 위를 질주, 육운혁명이 일어난 해가 1830년이었다. 

그로부터 백년 후 같은 이치로 자그마한 쇳덩어리가 곡창지대인 여주벌을 씨근대며 달림으로써 수원과 여주간에 교통 혁명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7년후 수인선이 개통되어 수원과 인천간의 여객수송은 물론 각종 화물을 운송하게 되어 인구의 유동과 물자의 유통을 통해 사회.경제.문화적으로 괄목할 변화를 가져왔다.

수인선은 서해안 간척지를 횡단, 군자, 소래, 남동 등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오지에 수송했던 한시대 역사의 단면이다. 
수인선 꼬마열차는 길이 14.7m 너비 2.15m 좌석수 50석인 장난감 같은 객차 2량을 끌고 다녔다.
당시 노선주변 학생들의 통학열차였고, 시골 색시들은 이 기차를 타고 시집가는 것이 소원이었으며, 시간 맞추어 지나가는 열차의 기적소리는 산촌 어촌의 시계이기도 했다. 

수여선과 수인선 협궤열차가 지금까지 남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관광열차로서 경인지역의 관광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다시 협궤열차가 살아났으면 하는 꿈을 꾸어 본다. 

수인선.수여선 협궤열차를 그리워하며 _1
옛 수인선의 흔적인 고색동-오목천동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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