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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기억과 시(詩)
정수자/시인
2010-09-18 10:29:32최종 업데이트 : 2010-09-18 10:29:3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의 '승무(僧舞)'를 보며 생각한다. 수원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특히 시인의 눈에 비친 수원은 어떤 모습일까. 수원의 시적 형상화가 문득 궁금해진다. 그런 시편이 곧 수원의 스토리텔링이요, 문화컨텐츠를 이루기 때문이다. 

수원의 문학적 형상화는 기대보다 적은 편이다. 현대사의 격동을 겪은 지역들에 비하면 더 그러하다. 상처로 쏠리는 문학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광주'는 많은 문학적 자극을 할 정도로 크나큰 아픔을 치른 도시다. 그런 지역에 비춰보면 수원이 큰 탈 없이 지나온 곳이고, 따라서 문학적 상상력을 덜 자극하는 도시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중에 '수원'이 나오는 시를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동향을 만난 듯 '어깨라도 치고 지고'의 심정이 된다. 조지훈의 '승무'도 수원과 관련이 깊은 시다. 시작 과정을 밝힌 글에서 시인이 이 시의 회임지가 '수원'이었음을 명시하기 때문이다. "수원 용주사 큰 재(齋)에 승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달려와 춤에 빠진 채 시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의 탄생도 퍽 감동적이다. 한성준 ․ 최승희 같은 당대의 내로라하는 승무에 이어 세 번째건만, 용주사 승무가 뜻 모를 선율로 계속 심금을 건드렸다고 한다. 절 뒤 감나무 아래 넋을 잃고 서 있었지만 시는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이듬해 김은호의 '승무도'를 보고 7,8매의 스케치를 한 뒤 12월에야 완성. 한 편의 시가 2년에 걸쳐 태어난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승무'는 지금도 조지훈의 대표작이자 한국시문학의 절창으로 꼽힌다. 그런데 시인이 '수원 용주사'라고 밝힌 대목이 수원의 입장에서 보면 더 반가운 것이다. 물론 용주사는 화성시에 속하는 절이지만 예전에는 그곳이 다 수원부였다. 게다가 시인이 수원을 명시하고 용주사가 화성과 뗄 수 없는 절이니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이다.

좋은 시는 비를 세워 기린다. 시는 감동과 위무, 정화 등으로 많은 사람을 당긴다. 시비(詩碑)가 때로는 시비(是非) 거리도 되지만, 잘 세운 시비는 장소까지 빛내준다. 사람들의 발길을 끌며 시가 탄생한 주변에도 더 많은 추억으로 시적 아우라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쌓여 지역의 문화적 기억을 이루고 예술도 풍성하게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수원을 그린 시는 이 지역 시인에게서 더 많이 나온다. 자신이 사는 장소에 대해 생기는 장소애가 훨씬 다양하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문학적 성과들을 모아놓는 것도 수원의 문화적 복원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사진 한 장이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지만, 그 안팎의 세세한 사람살이는 문학이 더 풍부하게 그리기 때문이다.

시 속의 수원을 새삼 돌아다보는 것은 문학이 지닌 본연의 힘 때문이다. 비록 영상에 밀리는 신세가 됐지만 문학은 여전히 우리네 삶의 좋은 기록이자 복원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을 안고 미래를 고민하는 본연의 소임 때문이다.   

수원의 기억. 시인이 용주사에 일부러 와서 감동에 떨며 쓴 '승무'를 천천히 뇌어본다. 아름답다. 역시 한국의 고전적 미감을 잘 그린 명시다. 용주사에 시비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화성시와 연계하는 수원시티투어에 시 이야기도 하나 얹으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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