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입춘무렵엔 원래 추위가 있었다
김재철/농학박사, 칼럼니스트
2012-02-06 14:51:06최종 업데이트 : 2012-02-06 14:51:0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입춘은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는 절기다. 그런데 이 무렵 큰 추위가 있으면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라 하고,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하여 입춘 무렵에 반드시 추위가 있다는 말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새해 첫 절후인 입춘에 백관이 대전에 나가 입춘절을 축하하고 관리에게는 이날 휴가를 주었다. 입춘 대조회는 태종 14년(1414)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고종 22년(1885)에는 병술년(1886) 입춘이 정월 초사흘이나 역서에는 초이틀로 잘못 쓰여 제대로 추산하지 못했다 하여 역서를 맡은 관리가 문책 당하기도 한다. 

입춘을 정확히 시행한 경우도 있다. 정조 24년(1800), 청나라 역서와 대조해 본 결과 12월 21일 입춘의 경우 청나라는 미시 초 2각 10분에 들고(*오후 1시 40분) 우리나라는 미시 초 2각 11분에 들어 각각 1분씩 차이가 나지만 이것은 북경과의 시각차이 때문이라 하여 우리나라 역서에 따라 시행하라고 정조가 윤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혹한을 구제하는 명령을 내려 추위에 떨며 구걸하는 사람을 불러다 죽을 먹이고 옷을 하사하며, 추위에 몸을 가리지 못하여 입김을 불고 있는 남녀가 반드시 있다 하여 이를 살피지 못한 포도대장을 추궁하기도 한다. 정조는 식량의 수송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고, 나누어 줄 때 백성이 기다리며 추위를 호소하는 폐단이 없도록 잠시도 자리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입춘무렵엔 원래 추위가 있었다_1
입춘무렵엔 원래 추위가 있었다_1

중종은 추운 날씨로 인해 11시에 시작하는 주강 및 저녁 법강을 중지시킨다. 혹한으로 인한 휴강이다. 추위가 닥쳤을 때 하옥된 죄인을 보살피고 죄가 가벼운 죄인은 정상을 살펴 놓아주기도 하는 것은 제왕의 당연한 일이라 하였다. 고종은 죄질이 가벼운 죄수들과 70살 이상, 15살 이하를 모두 석방하였다. 추위를 무릅쓰고 보초서는 군인들을 보살펴 초소를 옮기고,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하고 관급 토목 공사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정조의 백성 사랑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춥고 배고파 신음하면서 떠돌아 흩어진 사람이 태반인데, 백성들은 먹을 곡식이 없고 살 곳을 잃어 의지한 데가 없다. 어린 것의 손을 잡고 노인을 부축하면서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고 있다. 아! 내가 백성을 기르는 주인이 되었으니 한 사람이 굶주려도 나 자신이 굶주리는 것 같고 한 사람이 추위에 떨어도 나 자신이 추위에 떠는 것과 같은데, 고요히 그 허물을 생각하노라면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를 지경이다. 아! 백성은 오히려 내가 좋은 음식을 달게 먹고 고운 담요에서 편안히 쉰다고 생각하는가? 가을부터 겨울을 거쳐 해가 바뀌기까지 자야 할 때에 자지 못하고 먹어야 할 때에 못하며 오직 너희들의 굶주려 여위고 해진 옷을 입고 곤궁하여 어쩔 줄 모르는 형상이 내 눈에 보이는 듯한데, 너희들은 오히려 내 마음을 알 수 있는가?"

요즈음 위정자들이 진정 새겨들어야 할 마음 씀씀이다. 이번 겨울은 대한을 지나 입춘 앞이 가장 추웠다. 55년만의 2월 혹한으로 전기사용량은 늘어나고 지하철 탈선, 수도관 동파, 휴교에 단축 수업까지 실시한다. 이런 혹한 속에 철야 노숙투쟁을 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입춘을 맞이하여 다행히 기록적인 한파가 누그러졌다. 혹한에 지하철이 멈춰도 승객을 무시하고 거짓 안내방송을 하는 현실. 봄기운과 함께 전 국민의 얼굴이 활짝 펴질 수 있는 부끄러움 없는 환경으로 변화하기를 기원한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