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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둠이 그립다
정수자/시인
2010-02-11 11:06:23최종 업데이트 : 2010-02-11 11:06:2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눈앞의 저 빛!/찬란한 저 빛!/그러나/저건 죽음이다//의심하라/모오든 광명을!" 유하의 시 「오징어」는 짧아서 더 매섭다. 단 여섯 줄의 시가 일상에 갇힌 인식의 지평을 확 열어준다.

오징어는 집어등 불빛에 잡힌다. 불나방처럼 '빛'을 따랐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빛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요 매혹인 탓이다. 대체로 긍정적 의미를 지니는 빛은 이 시에서 인식의 전환을 일으킨다. 때때로 어둠만 아니라 밝음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간명하게 드러내는 세상의 비의가 비수같이 서늘하다.  

오징어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빛을 따라다니는가. 무릇 생명은 광합성처럼 빛에 빚지며 산다지만, 우리도 늘 빛과 함께 산다. 하루의 반이 낮이니 일생 쬐는 햇볕 같은 빛과 그 외에도 너무 많은 빛에 신세지며 사는 것이다. 어둠을 물리쳐주는 전기만 봐도 얼마나 많은 빛 안에서 살고 있는가.  

그런데 요즘은 빛이 너무 많아 문제다. 밤거리는 쉴 새 없이 내뿜는 빛들로 눈이 아플 지경이다. 특히 간판에서 내쏘는 갖가지 불빛은 도시를 빛의 난장으로 만든다. 거대한 발광체는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먹고 마시고 놀 거리들이 넘치는 거리를 위해 밤새도록 빛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거리를 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모든 불빛이 악을 쓰는 것만 같다. 

그렇듯 '더 크게, 더 환하게'는 간판의 지상목표였다.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낚기 위해서다. 일단 주변 간판보다 더 크고 밝아야 살아남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멋진 건축 작품을 세워도 간판이 망쳐놓기 일쑤다. 최후의 덧칠꾼 간판에 대한 건축가들의 절망적인 토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도심 거리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똑같이 시끄럽고 현란하고 무질서한 빛의 난장판이 되어 왔다.

그 와중에 잃은 것은 어둠. 점점 더 어둠이 그립다. 어둠은 휴식과 성장에 다 필요하다. 전봇대 옆의 콩이 어두운 곳의 콩보다 못 자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너무 밝은 빛이 밤에 자라는 식물이며 곡식 등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콩처럼 벼처럼 우리도 고요한 어둠이 필요하다. 어둠 속의 평화로운 휴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도시 전체가 너무 밝게 시끄럽게 돌아가니 참다운 쉼이 없다. 참 삶에는 참 쉼을 위한 어둠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간판이 특히 문제다. 유용한 정보인 간판이 문제가 된 것은 무작정 튀려는 욕심 탓이다. 그 때문에 도시 미관을 해치는 색깔과 크기 등에 대한 규제 의견도 꽤 많이 나왔다. 서울 종로구는 구청 지원으로 간판을 많이 바꿨다. 수원시도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간판을 정비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파트 단지 상가부터 시작해서 시 전역으로 넓혀갈 모양이다. 물론 상인들의 자발적 참여에 지원 같은 제도적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 작고 예쁜 간판으로 바꾼 후 장사가 더 잘 된다는 실례도 많다. 이렇듯 간판 예쁘게 바꾸기만 잘 해도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이 있는 도시로서의 미관과 품격을 높일 수 있다. 

더불어 '어둠권'도 논할 때다. 일조권이나 환경권처럼 어둠을 누릴 권리도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어둠을 너무 많이 빼앗겼다. 간판의 책임을 통감하고 불빛을 작고 은은하게 낮춰야 한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참다운 충전을 할 때 행복한 내일도 있다. 어둠은 휴식만 아니라 정신 건강과 창의력 향상에도 좋은 영양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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