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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아래로의 소풍
정수자/시인
2010-05-31 09:37:50최종 업데이트 : 2010-05-31 09:37:5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병의 '귀천' 중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시다. 어찌 삶이 소풍처럼 아름답기만 하랴. 그렇지 않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어쩌면 그래서 이 대목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더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어서-. 아니, 세상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슬픔이며 고통까지 다 아름답게 돌아볼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소풍을 가고 싶었다. 고향의 느티나무에게-. 오백 살 가까이 된 우람한 나무와 그 곁에 거느린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 일가. 여전히 잘 있을까. 작년에 찾았을 때는 '상전벽해(桑田碧海)' 신도시의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쪼그라든 모습이었다. 주변보다 움푹 들어가게 된 데다 고층아파트들이 심하게 치고 올라가 너무 초라해진 것이다. 산도 다 뭉개는 판에 그나마 보존이 어디냐는 자위하면서도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 피바람(6․25 전쟁)을 맨몸으로 건너왔다. 누가 뭐래도 묵묵히 가문을 지키는 종손처럼 말이다. 태어나고 떠나고 울고 웃는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며 몸피가 굵었다. 오월 단오면 그네 매고 노는 동네잔치에 그 몸을 기꺼이 내주었다. 하굣길에 다리쉼하며 재잘거리던 우리들의 얘기도 그 품에 다 들였다. 지나던 사람 누가 몸을 들여도 넉넉한 그늘을 변함없이 내주었다. 네 동네 내 동네 구별 않는 공동의 정자였다. 그런 품에 들면 잠시나마 근심이 사라지는 듯해서 수시로 그늘을 찾아 쉬고는 했다. 

그런 느티나무로의 소풍은 거기 내려와 사시는 어느 교수 덕분이다. 이메일을 주고받다 느티나무 아래의 데이트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얼마 전에는 수원 출신의 시인 청으로 인상적인 미술관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혼자서도 가끔 화성을 걷다 가는 분이지만 미술관 나들이가 수원에서의 또 다른 추억이 된 듯하다. 그런 기억들이 수원을 다시 찾게 한다. 좋은 기억을 잘 갈무리해놓은 장소들이 사람을 부르는 아우라가 되는 것이다.   

수원도 그런 쉼터를 곳곳에 많이 만들고 있다. 최고의 휴식처는 물론 화성이지만, 어린이공원이나 쌈지공원처럼 크고 작은 공원으로 휴식의 질을 높이는 중이다. 그래도 저녁 먹고 가볍게 산책 나설 만한 근린공원은 여전히 더 필요하다. 녹지야말로 많을수록 좋다. 녹지며 나무가 열섬 현상 완화에도 효과가 크니 말이다. 

환경은 삶의 질을 좌우한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도시가 생태를 표방하고 있다. 독일의 어느 생태도시는 돗자리만 깔면 어디서나 그대로 소풍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자전거, 태양열 주택, 작은 시장 등으로 환경을 되찾은 것이다. 채소며 과일을 조금씩 사는 장바구니로 비닐봉투를 몰아낸 것은 물론 쓰레기도 일주일에 작은 봉지 하나로 줄였다. 불편을 참으며 동참한 시민들은 깨끗한 물과 공기와 햇볕이라는 최고의 상을 누리고 있다. 짬만 나면 아무 데로나 소풍 나가 쉬면서 책을 읽거나 이웃과 어울리는 자연의 도시를 만든 것이다. 

아무 데나 자리 깔면 소풍이 되는 도시. 커다란 자연공원 같은 도시는 시민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도심 소풍을 즐기는 도시는 뭇 생명과의 상생으로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도심으로 혹은 느티나무 아래로 소풍 가는 주말을 꿈꾼다. 훗날, 수원에서의 삶은 소풍처럼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기를 빌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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