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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으로의 산책
정수자/시인
2011-03-14 15:16:32최종 업데이트 : 2011-03-14 15:16:3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일찍이 아름다운 병이 있었다. 천석고황(泉石膏肓), 선조들이 즐겨 앓던 자연 사랑이라는 고질병이다. 산수자연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깊었으면 불치의 병으로까지 지녔을까. 그렇게 그리던 자연을 직접 찾지 못할 때는 '와유(臥遊)'라는 방식으로 짝사랑을 달래곤 했다. 금강산 그림을 방 안에 걸고서라도 오매불망 그리움을 풀었던 것이다.

이즈음의 문화유산 사랑도 그 못지않은 듯싶다. 인류의 정신과 문화, 예술의 집약인 문화유산에서 얻는 게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많은 사람이 '호모 노마드' 즉 유목인처럼 돌아다니는 신유목시대, 문화유산이 최고의 지속적인 관광수입원일 것은 자명한 노릇이다. 매력적인 문화유산이 없는 곳은 아주 뛰어난 풍광이라도 곧 심심해지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도 수원시는 복 받은 도시다. 화성이라는 관광으뜸명소 덕분이다. 물론 이에 대한 선각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성을 시의 정신적 ․ 문화적 핵으로 삼아 키우는 한편 복원과 관리 등의 측면에서도 앞장을 서온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전도사 같은 소명의식과 긍지로 실천하는 화성 사랑도 점점 늘고 있다. 관련자만 아니라 화성연구회 같은 민간단체며 일반 시민까지 화성 사랑의 즐거운 '앞잡이'를 자청하는 것이다. 

이번 화성박물관의 '한 ․ 일 세계문화유산 사진전'에서도 그런 사랑의 증좌를 만날 수 있다. 이상수, 서헌강, 준초이 그리고 미요시 가즈요시 네 작가의 남다른 시선을 통해서다. 이들의 사진은 문화유산의 정신과 미학을 천착해오는 동안 품었을 짝사랑의 시간을 느끼게 해준다. 최고의 순간을 얻기 위해 그들은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겸허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유산의 진면목과 새로운 면모, 정점의 아름다움을 위해 수없이 다시 찾고 찍고 했을 것이다.

사진에서는 우선 그런 시선의 깊이를 만날 수 있다. 그 속에서 다시 보는 문화유산들은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의 유산에서 화강암 같은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질감이 두드러진다면, 일본의 그것은 인위적으로 다듬어낸 선과 미니멀리즘 같은 모노톤이 더 보인다고 할까. 건축 양식과 선, 색 등에서도 미감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또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 잡아낸 사진에서는 대상에 다르게 접근하는 시선의 깊이를 맛볼 수 있다. 특히 나무마루에 떨어지는 햇살의 포착은 시간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듯, 마음을 오래 잡는다. 

관람객의 발을 오래 잡는 것은 아무래도 화성 사진이다. 그 중 성벽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준초이의 대형사진 앞에서는 많은 사람이 붙박인다. 늘 보고 걷고 하던 성벽이건만 돌 하나, 틈 하나에 서린 빛과 음영의 무늬들이 새롭게 와 닿기 때문이다. 성벽을 품고 날기라도 할 듯 펼쳐진 구름 또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만큼 사진들은 유산이 견뎌온 시간의 깊이며 그 안팎의 무늬며 질감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이 모두 다른 시선을 통해 만나는 유산의 발견으로 삼는다면 더 즐거운 개안(開眼)의 시간이 된다.  

이렇듯 작가들이 모색하는 화성은 수원의 예술적 자양이다. 이번 사진전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미학을 추동하는 즐거운 산책이 될 것이다. 조선 문화예술의 집약인 꽃 화성의 예술적 탐색. 이를 더 다각적으로 견인할 때 더 오래 남는 꽃이 될 것이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화성을 다시 보고 찾고 그리고 있을 터, 그것의 축적 또한 꽃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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