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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대의 뒷모습
정수자/시인․문학박사
2009-11-16 10:05:01최종 업데이트 : 2009-11-16 10:05:0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시처럼 사는 건 이상이다. 그런 다짐을 하며 살아도 크고 작은 허울을 만들기 십상이다. 사람살이의 속을 들춰보면 크고 작은 허울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이다.

삶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시를 본 것은 뒷모습에 대한 단상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 출간이며 갈수록 성글어지는 거리들이 뭔가를 더 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럴싸해 그런지 빈 나뭇가지 끝이며 그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 뒷목도 더 수척하고 허전해 보인다. 이제 비듬 같은 거라도 쌓이지 않게 뒤태를 더 비다듬어야 하는 철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일찍 찾아온 추위가 바람 끝을 점점 거칠게 한다. 바람이 뒤집고 갈 때마다 손수레며 좌판의 손들이 부산하고 더 춥다. 저 꺼칠한 손은 오늘 하루치 저녁 벌이라도 했을까. 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뒷모습에 주변의 고단한 사람들 모습이 자꾸 어른거린다. 겨울 채비하는 나무들보다 더 추운 사람들의 뒷모습이 많이 보이는 시절이 된 것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뒷모습이 그 사람을 완성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부로 생을 마무리한 사람처럼 뒷모습이 좋게 회자되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뒷모습에는 이런저런 평가의 말들이 쌓이게 마련이다. 뒷모습이 자신이 걸어온 길의 전부를 담고 있는 형국이라 하겠다. 그러니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 생이 아름다울 밖에.

그렇듯 뒷모습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그 중 꼿꼿한 뒷목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다. 한국전쟁 때 얼굴에 흙칠을 하고 눈빛을 죽이며 검문을 넘어가려던 지식인들이 뒷모습에서 걸리곤 했다는 것이다. 지식인 특유의 자존 의식이 뒷목에 꼿꼿하게 나타나서 결국은 잡혔다니, 뒷모습이야말로 속일 수 없는 증좌가 아닌가 싶다. 

때로는 뒷모습이 좋은 안주감이기도 하다. 하여 술자리에서 먼저 갈 일이 있으면 누구든 뒤가 조금은 켕긴다. 본의 아니게 안주 제공할라 불안한 것이다. 주머니 사정상 쭈뼛거리다 가는 근지러운 뒤통수도 곤란하지만, 술값 다 내고 가는 당당한 뒷목 되기는 더더욱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서 아예 안주 삼으라고 웃으며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아픈 뒷모습은 가까운 사람들의 초췌한 그것이다. 특히 힘들거나 초라하게 늙어가는 형제의 뒷모습은 두고두고 밟힌다. 거리에서 본 누군가의 쓸쓸한 뒷모습에 불쑥 겹치는 부모님 모습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런 게 부모니 형제니 하는 더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연유하는 연민일 것이다. 간혹 초라한 부모형제의 뒷모습을 부인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더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오는 게 많다. 

겨울로 들어서는 11월, 문득문득 뒷모습에 신경이 쓰인다. 삶을 추스르며 언행을 돌아보게 된다. 비에 젖은 낙엽처럼 붙어 있기 급급한 것은 아닌지, 입지며 역할도 다시 짚어보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대부분 등에 꽂히는 시선들 때문에 삶의 옷깃을 더 가다듬으며 살아간다. 거리에서도 누군가 보고 있다고 여기면 더 똑바로 걷듯이 말이다.

뒷모습, 한 사람의 행장(行狀). 그대의 뒷모습은 어떠한가. 낙엽들이 돌아가는 길목에서 뒷목을 바로 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란 시인처럼, 찬찬히 돌아보며 가자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주 돌아보면 우리네 뒷모습도 좀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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