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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마실의 추억
정수자/시인․문학박사
2009-12-07 09:52:15최종 업데이트 : 2009-12-07 09:52:1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밤이 길어졌다. 긴 밤에는 마실이 제격이다. 특히 시골은 가을걷이 끝에 시루떡 돌리고 김장까지 마치면 일이 없어진다. 곰처럼 뒹굴어도 뭐랄 사람 없으니 마실 다니기 좋은 때가 된 것이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불 켜진 사랑방을 슬슬 찾아 나서곤 했다. 

이쯤이면 마실 추억에 아련해지는 사람이 많을 법하다. 단골 마실방에 모여 내기 화투를 친 밤들이 새삼 그립기도 할 것이다. 그런 밤의 국수나 군고구마, 얼음 서걱거리는 동치미 맛은 얼마나 기막히던가. 또 동네방네 돌아가는 풍문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리는 재미는 또 얼마나 오졌던가. 뒷담화가 본의 아니게 말썽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마실방이 도시에서는 주점이겠다. 맥주집이든 막걸리집이든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곳이 곧 도회인의 마실방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여 어둠이 깔리는 시각이면 뭔가 아쉬운 사람들이 눈짓을 주고받다 단골집을 찾아 슬금슬금 모이곤 한다. 무슨 공모라도 하듯 삼삼오오 모여서 판을 짜면 회식과는 전혀 다른 자발적 추렴의 마실이 기꺼워진다.  

이런 마실꾼들 사이에서 새로운 '거리'도 나온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번쩍 아이디어를 치고 나오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새로 얻은 듯 침을 튀기며 혼자 계속 떠들어도 용서가 된다. 좋은 의견이면 곧 동조하는 사람들로 잔치 마당이 따로 없을 정도다. 집이 떠나갈 지경의 떠들썩함은 오히려 마실의 흥을 돋궈준다. 오죽하면 그 큰 생맥주잔이 간간이 깨져 나갔겠는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수원의 문화적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수원의 문화운동이나 축제 속의 어떤 프로그램 등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것은 알고 보면 마실방의 작품인 경우가 꽤 많다. 물론 뜻있는 사람들의 숙의인 것도 많지만, 술자리에서 의견을 나누다 기발한 상상을 보태며 발전시킨 게 제법 있다는 후문이다(문화판의 산 증인 K시인은 아이디어 튀는 마실이 뜸해진 듯한데, 주변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느낌이다). 특히 관 주도가 아닌 민간의 의견을 반영하는 문화적인 일들은 이런 자리에서 나온 것이 꽤 많다. 

돌아보면 마실은 사람들과의 좋은 놀이였다. 그 속에는 이웃이 있고, 마을이 있고, 삶의 곡절이 있다. 게임 나라의 가상세계와는 전혀 다른, 어깨를 맞대고 나누는 사람의 체온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하여 다신 안 볼 사람처럼 다투더라도 사람 사이의 일인지라 대개는 곧 풀고 다시 만나곤 했다. 가상세계의 적처럼 즉시 처단하는 일은 없을뿐더러, 그럴듯한 '거리'들은 더 좋은 문화적 실현체로 키워가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마실의 힘은 실로 다양하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이야기 즉 배설일지도 모른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라는 용어를 통해 묘파했듯, 배설은 곧 정화다. 속에 넣고 있으면 병이 될 일들도 말로 풀어버리면 좋은 치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실방 무수한 이야기야말로 요즘 전가의 보도가 된 '스토리텔링'의 모태라 할 만하다. 무릇 이야기란 느른하게 노는 중에 주저리주저리 나오게 마련. 아무튼 심심할 때 이야기를 갖고 노는 상상력도 창의력도 잘 터지지 않던가.

마실은 또 더불어 즐길 때 힘을 배가한다. 맺힌 속을 푸는 것보다 좋은 것은 무언가를 새롭게 더불어 만드는 즐거움이니 말이다. 톡톡 튀는 의견들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문화나 변화를 만들어낼 때, 수원에 사는 즐거움도 그만큼 배가된다. 그런 마실의 추억을 확장하면 토론방이나 문화사랑방으로 키워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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