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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우리 모두를 위하여
정수자/시인.문학박사
2009-12-30 11:21:20최종 업데이트 : 2009-12-30 11:21:2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위하여"는 만능이다. 어디에 붙여도 척척 맞는다. 하여 화합의 말로도 으뜸이다. 어떤 모임을 위하여, 너와 나를 위하여, 누군가의 합격을 위하여, 혹은 수상이나 승진을 위하여, 또는 누군가의 사랑을 위하여,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어디나 들어맞는 것이다.   

이 말은 또 평등의 말이요, 동참과 격려의 마음이기도 하다. 어느 자리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높은 어른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위하여!"를 외칠 수 있으니 존대법 발달한 우리말에서는 대단히 평등한 느낌인 것이다. 게다가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을 동참케 하는 힘도 크고, 주인공을 축하하거나 격려하는 구호 효과도 아주 높다.  

하지만 때로는 충동과 선동으로 오명을 높이기도 한다. 모임에서 이 말을 너도나도 외치다보면 분명 넘치는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 중 치명적인 것이 알코올과 비용 그에 따른 피로라 하겠다. 구성원의 결속과 단합이 커지는 만큼 알코올의 양이나 도수도 높아지게 마련이니 '위하여'를 치죄해야 할 판이 되는 것이다. 

이 말과 비슷하게 애용하는 "화이팅"도 문제의 소지가 많다. '싸우자'라는 뜻이 너무 거칠다고 '아자'로 바꾼 지도 꽤 되었다. 하지만 '화이팅'을 여전히 최고의 응원 구호로 쓰고 있다. 심지어 꼬마숙녀의 꽃잎 같은 입에서도 '화이팅'이 힘차게 터져 나온다. 별 의식 없이 결속을 외치는 습관적인 말이 됐지만, 가끔은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사실 이 말은 너무 전투적이다. 모든 일과 경기에 '싸움'하듯 임한다면 효과야 높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외치면 부드러운 것들의 힘이나 가치를 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양보하고 배려하고 섬기는 마음들도 점점 사라져가는 게 아닐까. 지면 곧 죽음이라는 무한경쟁사회에서는 이기는 것만 중시하다 보니 압박의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 게임을 즐겼으면 그것으로 지는 것까지 품고 가야 사회의 품도 넓어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언제나 '싸움'하듯 산다는 것은 너무 처절하지 않은가. 즐겁게 하자는 의미를 담아 '아자'를 쓰면 예쁜 우리말도 늘고 정서도 순화될 텐데, '화이팅'은 늘 뒤끝이 불편한 말이다. 말이 사회상을 담는 거울이라는 점에서도 거친 말을 부드러운 말로 대체해야 한다는 건 다 안다. 하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굳어진 말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위하여'를 뇌다 보니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재작년 중국의 어느 남방에서 본 간판인데, 한국인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의 소박한 마을에 한글로 '위하여'가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장가계의 허름한 호텔에서 서툰 한글로 쓴 '비아그라'보다 더 괴기스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거기서도 '위하여'를 요란하게 외친 모양이다. 

올 한 해 우리는 '위하여'를 얼마나 외쳤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얼마나 즐기거나 혹은 이루었을까. 진정 위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 말은 숨어 있던 위력을 발휘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간의 즐거움에 그치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허전한 구호를 만들지 않으려면 위하는 마음부터 지녀야 하지 싶다. 

'위하여'를 외칠 때마다 불렀던 것들을 생각하는 세밑. 우리가 위하자고 외쳤던 것이 승리든 보람이든 즐거움이든 돌아보고 이제 다시 새로운 시간을 맞을 때다. 그리고 새로 위할 것들을 고요히 들여야 할 때다. 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든, 꽃이든, 하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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