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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빛낸 인물들
강대욱/경기도 박물관 초대관장
2010-07-14 13:57:22최종 업데이트 : 2010-07-14 13:57:2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역사의 궤적은 영원을 향한 이정표(里程標)다. 수원 산하는 국토의 요충 남양만을 포옹한 동북아시아 해상 교통의 요지로 역사, 문화, 경제교류의 터전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강의 물줄기와 서해안 평야를 아우르는 백두대간 한남정맥 마루금, 수원의 진산 광교산의 능선, 경기도 서해안을 감싸안은 자락에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이 민족사의 숨결을 토해 내고 있다. 

수원의 지명 변천이다. 삼국시대는 매홀군(買忽郡), 통일신라시대 수성군(水城郡), 고려시대 수주(水州), 조선시대 수원군(水原郡), 대한제국시대 수원시, 화성군(水原市, 華城郡)이 되었다.

◦ 우성전(禹性傳) 임진의병장(壬辰義兵將)
대한해협의 파고가 일본의 조선침략을 예고하던 1583년(선조16) 동,서당쟁의 어쩔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에서 동인(東人)의 영수(領袖) 허엽(許曄)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일만큼 우뚝했던 동인의 맹장(猛將) 우성전선생은 서인(西人) 세력에 밀려 실세(失勢)하여 수원(水原)의 향리(鄕里)인 지금의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로 은퇴하여 학문에 힘쓰게 된다. 

어천리에서 선생은 공리,공론(空理, 空論)의 성리학(性理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기설(理氣說)','역설(易說)'등으로 밝히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에 몰두하게 된다. 
선생은 이때 어천리에서 임진왜란의 비보를 듣는다. 고향으로 은퇴한 선비의 몸으로 그는 일어났다. 추의군(秋義軍) 모집 격문이 수원의 고을 고을을 누빈다. 무심한 풀포기도 의분에 떨게 했고 나는 새의 죽지를 접게 했던 선생의 우국열정이 수원의 산하를 울릴때 울분에 치를 떨던 젊은 선비가 구름처럼 모여든다. 

저마다 도끼와 연장을 들고 군량미와 군자금을 들고 달려 왔으니 마침내 선생의 문전은 호국열정으로 뭉친 수원의 의병(義兵)이 물결치듯 성시를 이룬다. 나라위한 일편단심으로 결진(結陣)한 추의군의 사기는 드높았다. 수천의 의병부대는 선생의 지휘하에 일사분란 강화로 진군 이곳에서 호서의병(湖西義兵)을 지휘하는 김천일(金千鎰)군과 합세하여 때로는 유격전으로 때로는 정면승부로 도처에서 전공을 세운다. 

강화는 의주에 몽진한 조정을 대신하여 내륙의 군사작전을 도왔던 거점이다. 김천일은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수원 독산성 전투때 권율장군을 도와 연합작전을 펴 기세를 떨친 명장이었다. 
김천일의 창의군(倡義軍)이 한강변의 적진을 유린할 때 추의군은 의병부대로서 그 역할을 수행했다. 1593년 1월 조·명(朝·明)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여 왜적이 서울로 쫓겨올때는 서울을 왕래하면서 유격전으로 적의 기세를 꺾었고 왜적이 퇴각할 때 멀리 의령(宜寧)까지 적을 추격, 섬멸하는데 언제나 선봉에 섰던 우성전의병장, 추의군대장(秋義軍大將)은 아깝게도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왜적을 추격 섬멸하던중 지병이 악화되어 1593년 7월 19일 돌아오는 길에 부평(富平)의 노상에서 별세하였다. 파란으로 점철된 애국열정 50생애의 문을 닫는다. 

◦ 수원의 2백년 앞을 내다본 채제공(蔡濟恭)
수원에 화성(華城)이 축성될때 총리대신이었고 후에 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를 지낸 채제공 선생이 수원의 2백년을 내다본 선견지명이다.

1790년(정조 14) 2월 정조는 화산의 현륭원을 참배하고 새로이 건설되는 신도시 수원의 팔달산 일원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내려와 신읍치를 주람(周覽)해보니 관아는 비록 그 규모를 갖추었으나 민가들은 아직 두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 당초에 뜻한 바와 같은 거리가 즐비하고 시가가 번창하여 대도회(大都會)를 이룩하기에는 짧은 시일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수 있겠다. 도시를 번창하게 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게 하는 특별한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나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이때 정조를 수행하던 채제공의 선견지명(先見之明) 건의내용이다. 
"시가를 즐비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가(전방)를 조성하여 서울의 부호가 수30여호에게 무이자로 1천냥을 대부해주고 신도시에 서로 마주보고 집을 짖게하여 장사에 이를 보게한뒤 몇 년후에 분할상환 한다면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또한 신도시 주변에 매월 6개소의 시장을 개설, 한푼의 세금도 받지않고 교역을 자유롭게 한다면 전국의 상업자가 운집해서 상업이 번성할것이다. 따라서 주민생활의 안정은 물론 다른곳의 주민들을 끌어 들이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모여들게 될것이다." 
지도자의 민생안정 '일자리 창출' 오늘의 시대상과 같은 역사의 발자취다.

◦  경기도청 유치 수원 발전 주역 이병희(李秉禧)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선인도 악인도 되지 않는다. 수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꿰뚤어본 정치인 그는 수원사랑의 열정으로 생애를 일관한 이병희 선생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태어나 격동으로 점철된 청장년기, 오직 선생은 수원의 미래와 영광을 위해 전신을 투구했다. 지역사회의 밝은 내일을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심점이자 원동력인 경기도청을 유치했고, 국민은 배고픔을 면해야 하늘을 안다는 궁핍과 곤궁의 시절 선생은 정치가다운 소신과 선구자적 신념으로 삼성전자, 선경합섬, 연초제조창을 수원에 정착시킴으로서 수원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선생은 문화역량은 곧 국력에 결집됨을 통감하고 황폐에 이른 화성(華城)을 복원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로 가꾸는데 그에게 주어진 역량을 다했다. 그 밖에도 교육환경개선, 농구체육인 양성은 평생사업으로 주도해온 결실이었다. 

장부의 한평생은 포부를 실현하는 멀고도 긴 대장정이다. 수원사회를 탈바꿈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 수원시민의 소리없는 성원을 받았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인, 그의 발자국 수원시민의 자랑이었기에 가능했다.   

◦  선경직물(SK) 창업자 최종건(崔鐘建)
선경합섬 창업자 최종건은 1926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1953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땅에서 한국에서 제일가는 직물공장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부서진 직기를 손수 고쳐 선경직물을 설립하였다.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개척정신으로 열정적인 기업가의 삶을 살았던 최종건이 있었기에 오늘날 SK 그룹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수 있었다. "기업의 자산은 곧 사람" 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인재양성과 교육환경 조성에도 앞장 섰던 수원이 낳은 자랑스러운 기업인이다.

1960년대 크레폰, 앙고라, 깔깔이, 스카이론등 각종 직물을 개발하여 국민의류생활 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6년에는 한국 직물사상 최초로 레이온태피터를 홍콩에 수출하여 우리나라 섬유산업발전의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1973년 정부로부터 서울 워커힐 호텔을 인수하여 선경이 재벌 반열에 들어섰으나 그해 11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  대~한민국, 붉은 악마의 상징 박지성(朴智星)
수원에 박지성거리가 상징하듯 박지성은 수원이 낳은 축구선수다. 
수원의 세류초등학교, 화성 병점에 있는 안용중학교 수원의 수원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지성의 축구경력 하이라이트(highlight)는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으로 대한민국의 4강진출에 크게 기여한 것일 것이다.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표팀 4강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된 박지성은 경기스타일이 양발을 모두 사용할수 있기 때문에 좌측과 우측 어느쪽에서나 뛸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넓은 행동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으로  '산소탱크' '세개의 폐'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박지성의 국가대표 주요경력은 뭐니뭐니해도 2002년 CONCACAF 골드컵대표, 2002년 FIFA 월드컵대표 2006년, 2010년 FIFA 월드컵 대표일 것이다.  

대한민국 붉은악마의 환상적 상징 박지성의 수상경력중 4강진출과 관련된 부분만 추려본다. 2002년 엠파이너스컵 MVP 수상,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이다. 

여기서 모교인 안용중학교 교정에서 후배학생과 화성시민 500여명의 기원속에 치러진 박지성 4강진출 '화성시민 기원제'사진을 소개한다. 

수원을 빛낸 인물들_1
전면 초헌관 우호태시장, 후면 아헌, 종헌관, 안용중학교 축구선수와 후배 여학생

2002년 6월 22일 11시에 진행된 2002 WORLD CUP 4강진출 화성 시민 기원제는 화성시 축구협회가 주관하고 기원제 집례와 기원제 축문 독축은 필자가 담당하였다. 
당시 우호태 화성시장, 화성시 축구협회장 김용하, 임택명 경기도 화성시 교육장이 시민을 대표하여 참례하였음을 여적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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