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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행복해지는 습관
홍숙영/한세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2009-01-19 10:02:08최종 업데이트 : 2009-01-19 10:02:0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칼럼]행복해지는 습관_1
[칼럼]행복해지는 습관_1
지난 주 일요일, 혼자서 광교산에 다녀왔다. 
늘 그랬듯이 아무런 장비도 없이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입고, 천천히 산으로 향했다. 

잎을 죄다 떨어뜨린 나무들의 맨 몸이 황량하게 느껴졌지만, 그들로부터는 비움으로써 새로운 삶을 얻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고, 살얼음이 언 작은 개천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은 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듯 하였다.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노래 부르며 포르르 포르르 날아다니는 작은 새에 이르기까지 꾸미지 않아도 언제나 아름다운 산은 이렇게 나를 환대해 주었다. 
 
프랑스에서 7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산이었다. 
파리에는 산이 없다. 산이 없다는 건 보호막이 없음을 뜻한다. 휑하니 뚫려 있는 도심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늘 산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불로뉴 숲과 뱅센느 숲은 그러한 그리운 마음들이 모여 파리 근교에 만든 커다란 숲이다. 
 
불로뉴는 파리 서쪽에서, 뱅센느는 파리 동쪽에서 각각 일상에 지친 파리 시민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이곳에서 피크닉과 산책을 즐기는 건 그들만의 특권이다. 산이 그리운 마음들은 숲뿐만이 아니라 공원도 만들었고, 청회색 하늘에 뚫린 구멍을 땜질하려는 듯 초록의 나무들을 잔뜩 심어 두었다.    
 
룩상부르그, 튈러리, 플랑트, 몽소, 몽수리 등 파리에는 유난히 큰 공원이 많고 이 큰 공원을 어떻게 이렇게 가꾸나 싶게 철철이 나뭇가지를 치고 꽃을 피우게 한다. 
공원이나 숲에 앉아 있어보면 종종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간혹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관광객이거나 유학생이다. 
진정으로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뛰지 않는 게 원칙인 듯싶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개의 출입이 허용된 곳이라면 개와 함께 아니면 혼자서 조용히 사색에 잠기며 최대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걸으면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파리 사람들의 생활은 메트로, 불로, 도도 이 세 가지로 압축되어 표현되기도 한다. 
메트로는 교통을, 불로는 일을, 도도는 잠을 뜻한다. 출퇴근길에 시달리거나, 일을 한 뒤 피곤에 절어 잠에 빠지는 일상을 벗어나 도심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한가해지는 순간이 바로 산책하는 시간이다. 세상과 조금은 동떨어져 자연과 가장 가까워지며 자연을 닮아가는 시간.
 
파리에 사는 사람들이 천천히 걷기와 함께 행복해 지기 위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습관은 바로 기다림이다. 
 
빵이 나오는 시간인 저녁 6시. 참을 수 없는 빵 냄새의 유혹에 못 이겨 발길을 옮기다보면 이미 빵집 앞에는 바게트를 사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프랑스인들의 주식인 바게트는 팔 길이만큼 길며 겉에는 딱딱한 껍질을 둘렀지만 속은 더없이 부드럽다. 입천장이 여러 번 까졌다 여물 때쯤이면 프랑스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되었다고 할 만큼 처음에는 먹는데 어느 정도의 고통이 따른다. 
 
우리가 좋은 쌀을 찾아 맛있게 밥을 짓듯 파리지엔들은 질 좋은 밀을 빻아 빵을 굽는 빵집을 찾아 줄을 선다. 이미 프랑스에선 14세기에 맛없는 빵을 만들면 벌금을 매겼을 정도로 바게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천원 안팎인 바게트 몇 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 한참씩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파리지엔들은 이런 시간을 전혀 지루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소한 빵 냄새를 맡으며 빵과 잔돈이 오가는 풍경을 즐거운 듯 쳐다보니 말이다. 
 
뛰지 않고 천천히 걷기, 맛있게 먹기 위해 기다릴 줄 알기. 여기에 파리 사람들의 작은 행복이 숨어 있었다. 

홍숙영
-한세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프랑스 국립2대학 언론학 박사
-미디어 비평가
-저서 '창의력이 배불린 코끼리',
-'슬픈 기차를 타라(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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