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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버지, 그 아릿한 이름에게
홍숙영/한세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2009-02-26 09:41:39최종 업데이트 : 2009-02-26 09:41:3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칼럼] 아버지, 그 아릿한 이름에게_1
[칼럼] 아버지, 그 아릿한 이름에게_1
산업의 역군이었던 우리의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괜스레 찡한 마음부터 든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고, 몸 바쳐 일해야 했으며, 쉴 새 없이 앞만 내다보고 달려야 했던 우리의 아버지들. 늘 바쁘고 엄격하고 마음으로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표현에는 서툴렀던 우리의 아버지들.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일곱 살 무렵,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 둘을 데리고 종종 집 앞의 작은 동산에 오르곤 하였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동산에 올랐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하늘에 박힌 별들을 가리켰다.
"저기 봐라. 우리 딸들처럼 별 세 개가 나란히 나왔네."
그러면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 주셨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아름답게 비추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별만 둘이서 눈물 흘리네."
 내용도 서글프지만 곡조는 더욱 애잔했다. 

이 시절 이후 아버지는 일하느라 항상 바쁘셨고, 그러면서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내 유년의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기억을 남긴 채 아버지는 그렇게 나의 일상에서 멀어져 갔다.
 
독립영화로 관객 백만 명을 돌파한 화제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 등장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우리 아버지들과 닮아있다. 소에게 해롭다고 농약도 치지 않고, 직접 꼴을 베어 먹이며 몸이 바스라지라 일만하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다른 방법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아버지들은 늘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거나 가족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익숙해있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면서 외롭게 나이 들어간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가 된 우리들은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함을 느끼지만 그것뿐이다.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는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이라도 놓여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이제 다시 아빠가 된 중년 남성들을 보면 또다시 찡한 마음이 든다.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로 남아 있기도 하고, 직장에서는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늦은 술자리를 차마 거절할 수 없고, 집에 오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래저래 왕따를 당하는 아빠. 
 
입학식과 졸업식에 늘 빈자리를 만드는 우리의 아빠들, 자녀와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자녀와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아빠들은 막상 자녀와 함께 있게 되어도 그 시간이 서먹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아이가 첫 걸음마를 시작하던 날, 아이가 혼자서 두발 자전거를 타던 날, 아이가 첫 생리를 시작한 날.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에 아빠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에게서 전해들은 소식이 아니라 아빠가 직접 체험한 일이라면 감동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자녀들의 삶에 뛰어들어 산 증인이 되고, 온 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라면 더 이상 그 이름은 찡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녀들을 진정 가슴으로 안아주고 추억을 공유하면서 아버지, 따뜻한 이름을 새기면 좋겠다.  

홍숙영
-한세대 미디어 영상학부 교수
-프랑스 국립2대학 언론학 박사
-미디어비평가
-저서 '창의력이 배불린 코끼리'
-'슬픈 기차를 타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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