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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베 조각이불과 어머니
염상균/(사)화성연구회 사무처장
2009-09-01 09:07:45최종 업데이트 : 2009-09-01 09:07:4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칼럼] 삼베 조각이불과 어머니_1
[칼럼] 삼베 조각이불과 어머니_1
벌써 15년도 더 지난 일이다. 모처럼 당신의 둘째 아들인 우리집에 오신 어머니가 삼베 홑이불을 보따리 속에서 꺼내셨다. 그것도 조각조각 이어서 박음질한 것이었는데 어떤 조각은 방향을 잘못 계산했는지 뒤집어진 부분도 보였다. 빳빳하게 풀 먹여서 꾸더꾸덕할 때 다림질한 다음 덮고 자거나 깔고 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애비는 여름을 많이 타니까 이불 걷어차지 말고 이 삼베이불을 덮으라고 신신 당부하셨다. 그러면 한 여름 나기에 최고 좋을 거라고도 하셨다.

삼베 이불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땀도 많고 더위도 잘 타는 내게 그것은 아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마약이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살살 틀어도 몸속의 땀을 모두 앗아가는가 하면 그 깔깔한 촉감이 여름날 끈끈함을 물리쳐주는 것 아닌가? 더위가 한 풀 꺾여서 가을이 시작되면 이불 끝이 돌돌 말려갈 테니까 그때가 되면 잘 갈무리해 두라고도 하셨다. 더 쓰다가는 삼베 이불이 부러진다고 경고도 하셨다. 

요즘 우리네 삶에는 삼베가 얼마나 쓰일까? 저승에 갈 때 입고 가는 수의와 어른들의 베잠방이와 바지, 그리고 치마저고리에서나 어쩌다 보게 된다. 그러나 예전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여름을 났으며, 부잣집에서나 결 고운 모시로 맵시를 냈다.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삼베 반바지를 곧잘 입은 개똥이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 아랫도리는 여름마다 늘 악동들의 눈요기였는데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아도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셨다. 남들이야 어쨌거나 본인은 정말 시원했을 것이다. 또 보리밥을 싸리나무 채반에 담아 마루 끝에 매달아서 밥이 쉬지 않게 할 때는 덮개로 쓰여서 파리를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옷감이 발달하면서 손과 발로 씨줄과 날줄을 교차하면서 짜낸 삼베도 점차 잊혀졌다.

어머니의 삼베 조각이불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고 한다. 예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입던 옷들을 하나하나 튿어서 적당한 사각형으로 오리고 그것을 재봉틀로 박음질해 만든 것이다. 어떤 베는 올이 가늘면서 촘촘하고, 어떤 부분을 굵은 올이 듬성하고, 어떤 조각은 누런빛을 띠고 어떤 것은 흰색을 띠고. 그 조각들을 바라보노라면 하나하나 사연이 들어간 인생 같기만 하다.

어느 해 여름엔가. 나는 또 한 번의 횡재를 하였다. 어머니를 뵈러 갔던 길에 삼베 이불을 하나 더 얻어온 것이다. 원래부터 똑같은 삼베 이불을 하나 더 만들어서 형님용으로 주셨는데 형님은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게 웬 떡인가? 우리 것보다도 훨씬 좋아 보이는 그 삼베 이불을 가지고 오면서 한편으론 즐거웠고 또 한편으로는 쓸쓸했다. 형에게 만들어준 이불은 좋은 베만 골라서 만든 듯 아주 깨끗하고 반듯반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랴! 이미 두 이불이 내게 왔으니····

여름이 오기를 기다려 본래 내가 쓰던 이불은 침대에 바느질로 고정시켰고 형님용으로 만든 것을 덮었다. 바닥도 쾌적하고 이불도 시원하여 늘 단잠을 잤다. 게다가 잠이 들기 전에 어머니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뿐인가? 등이 가려우면 누운 채로 바닥에 쓱쓱 비벼대면 그만이다. 어느 손길이 이보다 더 내 등을 잘 긁어줄 것인가? 중간중간에 조각을 이어붙인 부분은 더욱 강렬하게 등을 긁어주지 않는가?

올여름도 잘 때마다 역시 행복하였다. 여행을 가서는 집이 더욱 그리워졌는데 순전히 삼베 이불 탓이라고 하겠다. 이제 그 이불이 돌돌 말려간다. 삼베 이불이 어찌나 계절을 잘 알던지 신기할 따름이다. 또 잘 갈무리해서 내년을 기약해야지. 그런데 잘 때마다 생각나던 어머니도 잊으면 어떡하나?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시간마다 자식들 생각을 하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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