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칼럼] 문예군주, 정조대왕
임병호/경기시인협회 회장
2009-10-13 10:20:17최종 업데이트 : 2009-10-13 10:20:1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조선조 제22대 정조대왕(1752.9.12~1800.6.28)을 한국역사는 '개혁군주', '문예군주'라고 칭송한다. 정조가 다스린 시대, 18세기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문예부흥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정조 또한 임금인 동시에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수 많은 시(詩)· 서(書)· 화(?) 작품을 남긴 예술가였다. 성효(聖孝)를 실행한 '눈물겨운 사람'이었다.

정조는 문학을 정치의 흐름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정조는 문학을  문이재도(文以載道)로 보았다. "각 시대마다 독특한 문체가 있어 세도(世道)와 더불어 승강(昇降)하므로 글을 읽으면 그 글을 산출한 세상을 논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또 문학을 실용적 효용가치와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학문이 정도(正道)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학문이 없는 것이 차라리 낫고, 문장이 실용(實用)에 쓰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문장이 없는 것이 낫다"고 평했다. 

그렇다고 정조가 문학의 예술적 가치와 독립적인 가치를 부정한 건 아니었다. "문장에는 도(道)가 있고 술(術)이 있거니와, 도는 바르지 않을 수 없고, 술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배우는 자는 반드시 육경(六經)을 종주로 삼고, 자서(子書)와 사서를 우익으로 삼아서 위아래를 포괄하며, 고금을 널리보되 끝내는 주자(朱子)의 글이라는 극점에 모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문사가 순정해지고 도와 수리 오차가 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바로 사상과 문학을 아우르는 정조의 문학관이다.

정조대왕은 어려서부터 글씨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두 살 때 이미 글자 모양을 만들었고, 서너살 때엔 필획이 이루어졌다. 대여섯살 때 쓴 글씨로 병풍을 만들었다.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1735~1815)로부터 물려받은 천품(天稟)위에 타고난 성실과 근면한 성품으로 학문과 더불어 필법도 끊임없이 연마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정조는 글씨를 논할 때마다 "붓을 사용하는 것은 마음에 달려 있으니, 마음이 바르면 필법도 바르게 된다(用筆在心心正則筆正)"는 중국 당(唐) 유공권(柳公權)의 말을 자주 인용하였다. 
지금까지 전해진 정조의 진적(眞蹟)과 금석문을 살펴보면, 정조는 안진경·유공권체의 바탕위에 우리나라 명필의 장점을 더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어필체를 이룩하였다. 자체(字體)가 늘 주장하던 것처럼 돈실원후(惇實圓厚)한 모양에 웅건장중(雄健莊重)한 맛이 가미됐다. 이는 정조가 남긴 여러 어필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정조의 치세 때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눈부신 발전이 이룩됐다.  회화사면에선 조선의 화선으로 지칭되는 김홍도(金弘道) 등 거장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였다. 
정조의 남다른 효심은 한양에서 수원까지 정조가 행차하는  장관을 담은 기록화 '화산능행도' 등에 나타난다.  정조 때 조선 고유색과 독자성이 두드러진 눈부신 진경문화의 절정, 난만상(爛漫相)을 맞게 된다.

정조의 유작들도 적지 않다. 26세인 1777년에 그린 '묵매'와 '사군자도'는 유명하다. 보물 743호인 '파초도'와 보물 제744호인 '국화도', '추풍명안도'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국화도'엔 메뚜기까지 묘사돼 심사정이나 강세황의 초충도(草蟲圖) 범주와도 통한다. 
정조의 그림들은 호사스럽거나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차분하며 조촐하고, 맑고 밝은 화면으로 분위기가 정제됐다. 야일(野逸)한 아취(雅趣)를 느끼게 한다.

정조의 삶은 위대한 학자의 삶 그 자체였다. 임금이란 직함만 떼면 정조는 분명 조선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이었다. 시문집 '홍재전서'를 비롯한 많은 서적을 편찬했고, 세조 때 설치됐으나 폐지된 규장각을 부활시켜 서적보관은 물론 그곳을 통해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동시대 실태를 읽고 문제점 해결의 지혜를 구했다. 탕평책으로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세도정권을 타파했다. 

대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한 정조가 49세에 승하하지 않고, 10년, 아니다 5년만 더 통치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문예부흥과 위민정치(爲民政治)가 더욱 찬한한 꽃을 피웠을 게 분명하다. 

12월 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기획전 '정조, 예술을 펼치다'에 가면 정조대왕의 시, 글씨, 그림과 생애를 만날 수 있다.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 향기'에 취하게 된다.
추천 0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