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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수원에 문학관을 허(許)하라
2009-05-21 09:11:40최종 업데이트 : 2009-05-21 09:11:4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칼럼]수원에 문학관을 허(許)하라_1
[칼럼]수원에 문학관을 허(許)하라_1
문학이 밥 먹여주나? 거의 다 그랬다. '국문과'는 '굶는과'라고. 그만큼 먹고사는 일과 먼 게 문학이려니 했다. 국어선생이나 하면 바랄 나위 없지, 그렇게 씁쓸히 웃고는 했다.  

지금도 그런가? 여전히 그렇다.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세계적 부와 명성을 누리는 환타지 소설가 조앤 K. 롤링은 스타가 부럽지 않다. 국내에도 글쓰기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작가가 몇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글로 풀칠도 못하는 수준이다.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 전반의 홀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기초를 무시한 성장 위주의 사상누각 비판도 이제는 지친 듯하다. 인문학적 바탕 없는 실용이 어떻게 바르고 튼튼한 미래를 만들 것인가. 이런 말도 눈앞의 이익에 밀리고 눌려 옛 이야기가 돼버린 느낌이다.

그런 판에 '문학관을 짓자'니! 더구나 최악의 경제 상황인데, 씨도 안 먹힐 소리라 웃겠다. 하지만 문학관은 지금부터 고민할 과제 중 하나다. 왜냐하면 문학관이 우리 지역의 진정한 문화적 산실 노릇을 할 곳이기 때문이다. 문학관이 박물관과 다른 기능으로 역사 ․ 문화도시 수원의 오늘을 다지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학관은 주로 문학 자료를 정리 ․ 보존 ․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나아가 문화적 교육적 욕구의 수용과 실현 공간이었다. 그런데 문학관이 이제는 기존의 기능을 넘어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역할을 확대하며 문화 교육적 효과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문학관은 문화관광상품 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이는 향유자의 문화 욕구를 위한 배려요 반영이다. 문화예술의 향유와 창작 욕구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이를 담당할 문화공간이 절실해진 것이다. 필요는 기능과 역할의 확장을 추동하며 문학관을 박제된 전시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진화시킨다. 문학관이 시민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올리며 그 지역의 문화적 상징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수원에 문학관을 짓는 것은 이런 산실을 마련하는 일이다. 문학관이 지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담아낸다는 점에서도 건립은 긴요하다. 시민이 갈망하는 예술의 다채로운 향유는 그 경험을 창작으로 이어가는 데 큰 동력이 된다. 문학관 건립이 일상 속의 즐거운 향유로 더 좋은 마당을 펴는 투자인 동시에 더 큰 시인 작가의 탄생을 예비하는 일인 것이다.

수원시 인구가 115만 명을 넘었다. 하지만 문화공간은 별로 늘지 않았다. 인구 5만의 강진군조차 '시문학파기념관'을 짓는데 말이다. 강진은 지금 '시문학(詩文學)'(동인지 3호를 냈지만 한국시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님) 문학관으로 자기 지역 출신 김영랑 생가와 연계된 복합문화공간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수원은 '예총회관' 계획도 지지부진이니 문학관 운영이 차라리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면 여는 사람이 분명 나올 것이다.

많이 즐겨야 많은 걸작이 나온다. 걸작은 명예와 함께 부를 낳는다. 문학관은 그런 창출과 꿈의 산실이다. 좋은 문화공간은 우리 도시의 문화지수를 높여준다. 시민의 행복지수도 물론 높여준다. 고로, 감히 외친다. 더불어 행복한 도시의 꿈!
 
수원에 문학관을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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