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칼럼]문학은 힘이다
임병호/경기시인협회 회장
2009-10-28 09:48:11최종 업데이트 : 2009-10-28 09:48:1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 풀섶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생가를 순례한 국제P.E.N클럽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의 '가을 문학기행'에 동행하였다. 40여명의 문인들은 수원을 떠나 차창 밖에 펼쳐진 가을 풍경을 즐기며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 있는 정지용 생가에 이르렀다.

생가 앞으로는 정지용의 대표시 '향수(鄕愁)'의 첫련에 나오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흙돌담으로 둘러져 있는 생가는 두 개의 사립문이 있어 한결 정겨웠다. 담장 안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홍시들이 가을 햇살을 받아 더욱 붉었다. 정갈하게 보존된 안채와 사랑방도 보기에 좋았다. 정지용은 옥천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대시인의 소년시절이 떠올라 감회가 깊었다.

생가 옆에 있는 정지용문학관은 문학전시실· 문학체험관·영상실· 문학교실 등을 갖춰 정지용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양하게 보여 준다. 2005년 5월 15일 정지용의 생일에 맞춰 개관하였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정지용 밀랍인형이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한다. 생존의 모습 그대로다. 옆자리에 앉으면 어깨에 손을 얹어준다. 문화관광 해설사의 안내 또한 따뜻하다.

충북 옥천(沃川)은 정지용 시혼(詩魂)의 꽃이 사계절 만발한다. 국제P.E.N클럽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가 '정지용생가·문학관 순례'를 공문으로 미리 알렸을 때 한용택 군수가 직접 전화로 환영한다고 회신했을 정도다. 옥천군수의 핸드폰 수신음악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시작되는 노래 '향수'의 음률이다. 옥천군 문화관광과에선 옥천홍보물· 관광책자 등을 100여권씩 보내주었다.

생가·문학관 인근의 상점이나 식당의 이름은 거의 정지용 시(詩)에서 뽑아냈다. 정육점 이름이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이다. 어느 가게 이름은 ' 詩가 있는 상점'이다. "시 한 편에 얼마입니까" 물었더니 주인이 "돈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지용제(芝溶祭)'는 정지용을 추모하고 시문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매년 5월에 열리는 문학축제다. '정지용문학상'도 시상한다. 전통적 서정에 바탕을 둔 빼어난 시어로 한국 현대시를 개척한 정지용은 6·25 전쟁 때 납북됐다는 이유로 한동안 한국문학사에서 소외돼 왔었다. 1988년 납북·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를 계기로 정지용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했다.

옥천에서 정지용은 '신(神)'이다. 시인 한 사람이 쓴 시가 옥천은 물론 한국을 감동케 한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찾는 관광객이 한해 백만명이 넘는단다. '문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경향신문 주간과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한 정지용! '문장'지 추천위원으로 박목월·조지훈·박두진을 시인으로 배출한 정지용! 안타까운 일은 납북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해 묘소가 없다는 사실이다.

국제P.E.N클럽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회원들은 그날 정지용문학관 뜰 '정지용 동상' 앞에서 시 낭송회를 열었다. 김애자· 김철기· 이병숙· 임하정 · 장수영 · 홍은숙 시인이 정지용이 남긴 명시들을 낭송했다. 정지용 시인이 후학들을 지켜보며 미소짓고 계셨다.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하늘에는 성근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