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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원의 기억들과 상상력
정수자(시 인)
2008-02-20 11:48:58최종 업데이트 : 2008-02-20 11:48:58 작성자 :   e수원뉴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울었다. 영혼이 맑게 씻기는 듯했다. '잠수종과 나비'. 전신마비 상태에서 왼쪽 눈의 깜빡임만으로 글을 쓰고 생을 마감한 남자의 이야기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하루에 반쪽씩, 그것도 언어치료사의 도움으로 단어를 간신히 조합하며 자신의 책을 썼다. 사투의 마지막 시간들은 슬프지만 아름답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는 그 과정을 왼쪽 눈의 시각으로 잡아낸다. 관객도 보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색다른 시선의 경험이었다. 저자만큼이나 감독(줄리앙 슈나벨)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미 전 세계(국내 번역본 제목은 '잠수복과 나비') 사람들을 감동시킨 책의 영화적 재탄생은 이렇듯 감독의 독창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이런 영화는 서울에 가야 볼 수 있다. 요즘 서울은 작은 극장들이 새로운 영화문화를 만드는 중이다. 광화문 주변만 해도 '시네큐브', '미로스페이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등 아늑한 극장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형극장이 피하는 영화를 주로 걸어 관객을 즐겁게 한다. 예술, 고전, 저예산, 독립영화 등 돈보다 영화를 먼저 생각한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다양한 취향의 발길이 쏠쏠히 이어진다.

새로운 상상력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수원에서는 그럴 기회가 거의 없다. 모 극장(전국을 강타한!)의 평정으로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광주 같은 곳은 예술영화 전용극장을 지킨다. 그런데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수원에서는 이제 관객의 기호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력을 갖춘 거대 극장들이 일방적으로 거는 영화만 봐야 하는 것이다. 관객의 취향이나 선택권을 앗긴 것이다.

이런 상황은 거의 폭력적이다. 일차적으로는 극장 책임이다. 자본만 좇는 극장 외에도 배급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방관하면 편중과 왜곡은 더 심해질 것이다. 이 지점에 지자체의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 우리 지역의 문화향수에 관심을 더 가져야 문화 전반의 응전력을 기를 수 있다. 물론 관객도 좋은 영화가 살도록 극장을 찾아야 하고, 문화 향수권도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다 알다시피 영화는 이 시대의 막강한 산업이다. 그것도 가장 경쟁력 높은 문화산업이다. 무소불위라 할 만큼 전방위적인 영향력과 가치 창출은 새삼 설명할 필요 없이 계속 증명된다. 오죽하면 '팍스 할리우드'라 하겠는가. 이에 맞서면서 우리도 살려면 경쟁력 높은 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 창출을 위해서도 다양한 영화의 공존은 중요하다. 문화 전반의 다양성이 새로운 상상력과 부가가치 높은 대작도 낳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화적 바탕이중요하다. 문화 전반의 힘이 곧 작품의 태반인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문화적 소양이 있었기에 전신마비 속의 글쓰기가 가능했다. 프랑스 '엘르'의 편집장이니 문화판에서 늘 놀았던 것. 덕분에 '상상력과 살아온 기억'만으로도 글과 생을 행복하게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다고? 엄살떨지 마!"라는 따뜻한 전언이 맴돌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우리 지역에서 함께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뒤에 나누는 맥주 한 잔과 소회는 또 수원의 행복지수를 얼마나 높일까. 하여 '수원의 기억'을 즐겁게 쌓아 가면 '상상력' 또한 높아질 것이다. 더불어 우리 지역의 문화지수도 높아지지 않을까.

*약력 : 시인, 문학박사(아주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시집 『저녁의 뒷모습』,『저물 녘 길을 떠나다』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작품상, 수원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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