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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오늘은 김홍도와 오주석을 만나러 후소로 갔습니다
김우영 언론인
2021-02-23 09:27:54최종 업데이트 : 2021-02-23 09:27:44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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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문화공간 후소

열린문화공간 후소
 

행궁동 공방거리는 내가 좋아하는 산책코스 중 하나다. 그 공방거리 가운데쯤에 열린문화공간 '후소(後素)'가 있다. 후소는 미술사학자 오주석 형의 호다.

 

이곳은 옛 그림 관련 전시와 교육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1층은 전시 공간 및 교육공간, 2층은 오주석의 서재, 미술사자료실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조선의 화가, 김홍도' 테마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5일부터 시작돼 올해 연말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인 김홍도의 작품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20~30대 시절의 작품 '타작', '서원아집도', '신선과 사슴', 지방관직을 역임하던 40대 이후 작품 '호귀응렵', '마상청앵' 등 김홍도의 작품 복제본 17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 형은 2015년 발행된 그의 저서 '단원 김홍도'에서 단원의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다.

 

"자못 자긍심을 가지고 자중하여 경망스레 먹을 뿌리지 않았으니, 이것은 대개 그 인품이 매우 높아 고상한 선비와 운치 있는 시인의 풍모가 있어서, 자신의 심력과 손놀림이 사람들 교제에나 소용되는 예물이 되고 말거나 장식용 놀잇감이 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눈이 펄펄 날리던 날 후소를 방문해 전시회를 관람했다. 작품 옆에는 '옛 그림읽기의 즐거움' ' '단원 김홍도' 등 명저를 통해 접했던 오주석의 그 명품 해설이 붙어 있다.

 

정조대왕 시기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단원 김홍도와 그의 삶과 예술을 심층 연구했던 미술사학자 후소 오주석의 만남이 다시 이루어진 것이다.

열린 문화공간 후소에 마련된 오주석의 서재. 저기 어디쯤엔 내 시집 부석사 가는 길도 있다.

열린 문화공간 후소에 마련된 오주석의 서재. 저기 어디쯤엔 내 시집 부석사 가는 길도 있다.
 

오주석 형은 1956년 수원에서 태어나 200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원에서 평생 살다 간 미술사학자다.

 

나보다 한살 위인데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시작된 인연은 그가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와의 추억은 2018년 4월 24일자 본란에 '오주석, 봄이 무르익으면 생각나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적이 있으니 찾아보시길 바란다. (바로 가기→https://news.suwon.go.kr/?p=43&viewMode=view&reqIdx=201804251602454125)

 

그는 '오주석의 한국 미 특강',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단원 김홍도' 등 많은 저서를 펴내 옛 그림에 무지했던 나 같은 청맹(靑盲)들의 눈을 뜨게 했다.

 

'옛 그림 해설서라기엔 재미가 있었다. 친절하고 자상했다. 그리고 그의 박학다식에 새삼 감탄했다. 해박한 지식을 근거로 한 오주석의 자상한 설명으로 인해 청맹(靑盲)에서 벗어나 그림을 보는 눈을 조금 뜨게 된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쓴 '오주석, 봄이 무르익으면 생각나는 사람'이란 칼럼의 일부분이다.

 

나는 그로부터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탄신250주년 기념 단원 김홍도 특별전'도록을 선물 받았다. 도록은 책꽂이에 꽂혀있는데 저자의 서명이 들어 있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아쉽게도 손을 탔다.

김홍도 그림을 볼 수 있는 전시장

김홍도 그림을 볼 수 있는 전시장


평일 낮인데다 눈이 쏟아지기 때문인지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없었다. 덕분에 나 홀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김홍도의 그림을 감상하고 오주석 형의 해설을 찬찬히 읽어 볼 수 있었다.

 

내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은 그림은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마상청앵(馬上聽鶯: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 듣다)'이었다.

 

봄날 선비가 말을 타고 가다가 길가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 한 쌍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마상청앵도', 종이에 수목담채, 117.5 x 52.0 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마상청앵도', 종이에 수목담채, 117.5 x 52.0 cm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나그네가 문득 섰다. 주춤, 뒷다리는 아직 어정쩡한 말을 보니 주인이 막 고삐를 당겼다. 무언가? 선비는 순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구종 아이도 나란히 시선을 옮긴다. 고요한 봄날의 정적 속...(중략)...꾀꼬리의 절묘한 가락이 꽃 아래 여인의 봄노래가 되고, 황홀한 모습은 아찔해서 술 향기 맡은 젊은 시인이 되었다...(중략)...이 작품은 분명히 술 꽤나 마시고 그린 그림일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림의 요점이 잘 드러나 보인다. 아주 직정적(直情的)이다. 그리고 시적(詩的)이다. 세세하게 그리진 않았지만 S자로 능청거리는 저 버들가지 굽은 선의 형태에서 봄날의 무르녹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112-114쪽 부분 발췌

 

거듭 읽어 보아도 참 대단하다. 그가 시를 썼더라면 좋은 작품을 남겼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너무 일찍 갔다.

 

열린문화공간 후소 옆을 지나칠 때마다 그가 2층의 서재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아, 김형. 어디 가세요? 저 옆에 가서 막걸리 한잔 합시다" 빙그레 웃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와 다녔던 목로주점, 국민집, 와이하우스는 모두 사라졌다. 와이하우스 주인이었던 소설가 백도기 목사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얼마 전에 들었다. 저 세상에서 두 사람이 만나 무언가를 토론하며 껄껄껄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인 김대규 선생과 박석수 형도 그 부근 주막에 함께 계시려나?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김우영 사진 및 프로필

 

 

 

김우영, 언론인, 공감, 김홍도, 오주석, 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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