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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동 판타지가 된다② Fixed Pink x 이끼 되살리기
김보람/이희은작가
2021-06-16 16:30:00최종 업데이트 : 2021-06-16 16:29:29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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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궁광장에 핑크가 등장했다. 어두워진 광장에 핑크색 텐트, 비상표시 삼각뿔이 세워졌다. 핑크색 텐트 안팎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핑크색 텐트를 축으로 공전하는 달과 지구 같았다. 분리된 두 자아는 획일화된 분홍색 상징체계가 지배하는 이 세계가 혼란스러웠다.

 

# 신풍동 비어 있는 전시공간. 마당에 마른 풀들이 초겨울 바람에 바삭거렸다. 풀 숲 사이로 설치된 분홍색 인형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기이한 분위기에 관람객들은 움찔했다. 링거가 줄줄이 매달린 전시장 구석에 하나의 자아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또 다른 자아가 링거에 초록색, 분홍색 주사액을 넣자,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이제 막 태어난 듯, 링거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때론 당돌하게 움직였다.

 

# 장안동 느티나무가 있는 성곽길. 분홍색 자아는 성곽길 바닥에 몸을 낮춰 기어가듯이 꿈틀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튀어 올랐다. 한 생명의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분홍색 천으로 감싸진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서, 깃발을 흔들며 춤을 췄다.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생명을 축원하는 굿이었다.

 

시각예술을 전공한 김보람작가와 몸짓예술가 이희은씨가 행궁광장과 골목길에서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온통 핑크핑크했다. 성 정체성을 주제로 작업해 온 두 작가는 수원 화성 안 마을에 '핑크색'을 던졌다.

 

Fixed Pink. '분홍색은 여자의 색'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관념을 표현하는 단어다. 김작가는 분홍색 오브제들을 전면에 드러냈다. 여자다움, 남자다움에 갇혀 있는 우리의 불완전한 정체성을 예의주시한 것이다. 관람객의 불편한 감정을 이끌어내면서, 작가는 분홍색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딱딱한 성 정체성 관습을 성찰했다.

 

이끼 되살리기. 이희은작가가 성곽길에서 마주한 이끼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는 원시적인 식물이었다. 고정되어 있지 않아 여기저기 떠도는 이끼의 성질에 작가 자신을 투영했다.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이미 정해놓은 정체성 틀 안에서 불완전하게, 때로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기이한 세상에 대항해 격렬한 몸짓으로 반응했다.

 

정조의 개혁정신이 깃든 화성 성곽길에서, 남녀 불평등한 사회를 고발했던 예술가 나혜석의 고향에서, 두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고정된 분홍색을 강요하는 이 사회는 얼마나 독재적이고 기이한가. 당신의 정체성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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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정체성이 꽤 마음에 들지만 어떤 성질이 내가 타고났고 외부에 의해 습득이 된 건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늘 과정과 결과가 뒤섞이고, 자주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이 한 행동에서 드러난다.

 

링거와 주사기는 우리가 필요한 영양분을 습득하는 수단 중에 아주 수동적인데, 이를 통해 움직이는 아티스트를 보고 치유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이는 변해가는 색깔에 대한 단순한 반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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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 이 공간에 발을 들였을 때 한 마리의 작은 새가 죽어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타투를 새길 때 타투이스트에게 '자유로워 보이는 새'로 새겨달라고 했었다. 이처럼 나에게는 새는 자유로움의 상징이었지만, 창문도 문도 닫힌 공간에서 알 수 없게 들어와 얌전히 죽어있는 새는 나의 상징성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당신이 겨우 일어선 아티스트의 어깨에 얹어주는 새 모양의 스티커는 단순 위로나 응원이 아닌 반대의 개념으로 닿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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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섞인 자극을 벗어던지고 우리는 핑크바로 들어간다. 분홍색은 색감일 뿐인데 사람들에게 성 개념으로 읽힌다. 남자 색, 여자 색은 누가 정의했으며 우리는 왜 반응하는가. 분홍색을 강력히 드러내는 공간은 당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핑크 방의 조형물들은 언제든지 흩어질 수 있는 파편들이 모여 한 형태를 이룬다. 가득 차 다 못해 터져 나온 형태, 올곧이 서버린 모습, 숨겨 있지만 반짝이는 움직임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핑크색 바닥처럼 어렴풋한 잔상으로만 기억된다. 하지만 한 쪽에 이 모습들이 그려지며 이는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이는 고정이 되는 자료가 될 것이다. 어떤 것에 애착을 두고 마음을 쏟고 의지하는 일은 빈번히 일어나지만, 대상은 각자 다르다. 우리는 왜 핑크색에 애착을 쏟았었는지 혹은 그렇지 못했었는지 공간에 들어선 당신에게 묻고 싶다.

 

김보람 작가

김보람 작가

'정체성무덤'에 던진 '핑크'의 파편들 '김보람 작가'

 

본인 소개를 해주세요.

수원을 베이스로 예술 활동을 하는 김보람작가예요.

 

이번에 어떤 작품으로 참여했나요?

Fixed Pink x 이끼 되살리기= F-끼란 작업이에요.

 

제목이 어렵네요. 어떤 작업인가요?

Fixed Pink로써 고쳐진 형태(타인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은 주체)의 핑크색의 파편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했어요. 고쳐진 형태의 핑크는 고착화된(Fixed의 또 다른 뜻) 핑크로 관람자에게 보여지는 과정을 담았어요.

 

핑크색하면 떠오르는 고착화된 이미지들에 질문을 던지는 것인가요?

맞아요. 다양한 자극 속에 사는 우리의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고민으로, 당연한 것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는 자아가 이번 작업의 주제예요.

 

작업은 얼마동안 하셨나요?

9월부터 11월까지 동네를 탐색하고 작업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작업에서 행궁동이 어떤 영감을 주었나요?

행궁동은 오래된 역사를 배경으로 지역민이 거주하기도 하고 수원의 문화가 집중적으로 향유되는 동네예요. 이 프로젝트의 작업을 기획하며 행궁동에서 예술이 어떻게 소비되고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역사와 관련된 콘텐츠가 주를 이뤘던 프로젝트들과 다르게 '판타지'라는 소재로 조금 더 인터렉티브하게(상호작용하며) 관객과 소통하고, 역사적인 공간을 사람들과 저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물꼬를 트는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정체성을 이루는 주변 환경에 대한 구성을 탐구하면서 다양한 오브제 설치와 움직임으로 행궁동 곳곳에 출몰하고, 역사적인 배경의 사물들과 대조되는 분홍색을 통해 질문을 던질 수 있었어요.

 

행궁광장에 핑크텐트를 설치했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핑크텐트는 행궁 광장에서 퍼포먼스 할 때 가장 먼저 쓰였는데요. 광장 한가운데 빛나는 핑크빛 텐트의 안과 밖에서 예술가의 행동을 대조시키며 자아의 두 가지의 면모를 드러내려고 했어요. 수많은 영향에 노출되는 상황에 대한 경계를 텐트를 매개로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려고 했어요. 퍼포먼스에서 정체성 안에 두 개의 방향성을 설정했는데요. 텐트 밖에서 퍼포먼스 하는 이희은 작가와 안에서 그와 연결되어 있는 제가 있죠. 하나의 자아(이희은작가)가 계속해서 핑크가 닿는 공간에 멀어지려 할수록 또 다른 자아(내가)가 있는 텐트는 헝클어지고 주저앉아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그 안에 있죠. 자극과 영향력 안에 수동적인 자세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밖에서 격하게 움직이는 이희은작가의 육체도 결국엔 광장 속 핑크색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텐트 안에 있는 육체와 같은 바운더리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는 보호되고 밝은 분홍색이 비추는 공간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퍼포먼스는 마무리 됩니다.

 

밤에 작업한 이유가 있나요?

밖은 어둡고 텐트가 더 빛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텐트의 상징성을 더 강조하고 싶어서 밤에 작업하게 되었어요.

 

행궁광장이외에 골목길에서도 작업을 했나요?

전시장 근처에 핑크색 오브제로 감싸진 콘을 배치했어요. 왜 저기 핑크색이 있지 하고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작업했어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친분 있는 예술가 팀이 행궁동을 지나다 핑크색 액세서리로 뒤덮인 콘을 보고 "저런 짓 하는 김보람 같은 애가 또 있네!"라며 대화를 나눴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나중에 SNS에 작업물을 올린 것을 보고 "진짜 너 작업이었느냐?"며 사진을 보여줬던 게 기억에 남아요.

 

지인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가님만의 분명한 작업세계가 있군요. 이번 작업에서는 온통 핑크색이더라고요. 텐트도 그렇고, 사용한 오브제들이 모두 핑크색이에요. 

이번 프로젝트는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핑크 색감으로 표현했어요. 이 색감은 성의 색깔로 일컬어지는 좁은 개념에서 확장되어 독재적인 상징성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며, 무의식 속 다양한 영향의 출처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핑크색의 상징체계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죠. 작가님 말대로 독재적인 상징체계죠. 그 체계를 만들어낸 사회적인 인식 틀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작가님의 큰 그림이군요.

실내 전시장에 다양한 오브제들을 설치했는데, 제일 눈에 띄는 게 이희은작가의 퍼포먼스가 시작되는 공간에 매달려 있는 많은 링거들이었어요. 링거마다 색색의 물이 담겨 있었는데, 이것들이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링거는 우리가 필요한 영양분을 습득하는 수단 중에 아주 수동적인 도구로써, 자극을 습득하는 자아검열 없는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공간 스토리의 가장 처음에 배치했어요.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의 자아에 직접 투여하고 이끼의 색감인 초록색이었던 액체에서 주사기를 통해 핑크색으로 변화시키는 순서에 따라 작동되는 움직임들로 인해 치유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요. 변해가는 색깔에 대한 단순한 반응을 잘 표현하기 위해 링거를 사용했어요.

 

전시장 마당으로 들어가 아주 작은 분홍색 인형들을 보았어요. 마른 풀들 사이에 놓여 있었는데, 기괴하고 약간 소름이 끼쳤어요. 이 오브제들이 관람자에게 뭔가 강력한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작가님의 의도가 궁금해지더라고요.

풀 사이에 있는 분홍색 오브제는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명백한 오브제예요. 다만 사람의 형상을 띄고 있어서 보는 사람이 조금 creepy(기이하게)하게 느낄 수도 있겠는데요. 정체성, 자극, 상징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본질에 대해 파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오브제는 그저 사람의 형태(외형)를 가지고 있지만, 플라스틱의 재질일 뿐이고 우리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야 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마른 풀들은 생동감이 없지만 죽어있지 않은 모습으로 저를 비롯한 동시대 우리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다고 생각해요.

 

현대무용을 하는 이희은작가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전에도 같이 작업을 했나요?

올해 '하든 짓도 예술판 깔아놓으면 안 한다.'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예술가로서도 참여했어요. 제가 평소에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이희은작가를 비롯해서 시각예술가, 연주가분을 섭외하고 6개월간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9월에 퍼포먼스를 했어요. 멍석 깔면 하던 짓도 못한다는 한국인의 특성을 예술 판으로 끌고 와서 우리가 예술을 표현할 때 우리를 경직되게 하고 피로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에 관해 각자의 시선으로 표현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이희은작가와 함께 한 이번 작업은 어땠나요?

둘 다 바라보는 방향이 같으면서도 서로 피드백도 빠르고 쉽게 주고받아서 재밌게 작업을 했어요. 제가 구성한 공간에서 희은작가의 움직임으로 생동감이 부여되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번에도 각자 다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자연스레 뒤섞이며 단순히 두 개가 아닌 오히려 더 많은 관점을 만들어낸 시간이었어요. 매번 너무 재밌게 해서 같이 작업을 꾸준히 해 나갈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신경 썼던 것은 무엇인가요?

혼자만의 전시가 아니라 관람자가 있는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흐름이 매끄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공간의 배치도 여러 번 수정하고 리허설도 해보며 작업물, 움직임, 관객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스토리를 짰어요.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공간에 손이 닿아야 했기 때문에 행여나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염려했었지만, 이희은작가와 송은지작가의 도움 덕에 기획했던 부분을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퍼포먼스용 의상을 입고 작업하고 리허설 하다가 그 옷을 그대로 입고 행궁동 식당에서 밥도 먹고 필요한 재료도 사고 신호등도 건너고 하는데, 사람들이 꽤 신기하게 쳐다봤던 게 기억에 남아요.

또 하나는 행궁동의 큰 나무 아래로 핑크색 천을 감싸고 오브제를 배치했는데 퍼포먼스 진행 전까지 누가 혹시 훼손할까봐 아래서 지켰어요. 나중에는 저도 다른 공간에서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가야 해서 다른 분이 퍼포먼스 진행 전까지 대신해서 지켜주셨던 게 생각나요. 추운 날이었는데 감사해요.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 주제가 '행궁동 판타지가 된다'인데, 행궁동에서 어떤 판타지를 생각했나요?

정조대왕이 핑크색 옷을 입고 행궁 광장 가운데 핑크색 텐트 안에 있는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판타지

 

이번 작업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나요?

전시공간에 있던 작업물들과 움직임처럼 작은 파편과 순간순간들이 우리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꼭 큰 사건이 아니어도 우리 주변의 자극은 언제든지 내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처럼요.

 

그동안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경계를 허무는 일을 즐기는 저는 설치예술작업을 하기 보다는 오브제와 드로잉을 재배치하며 노는 것을(Playing) 선호해요. 통제되는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의 미성숙함과 부서지기 쉬운 모습을 담아내요. 대조적으로 밝은 색감은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사던 염색된 병아리에게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노란색 병아리들이 유행이더니, 한참 지나 알록달록한 색깔의 병아리들이 나왔어요. 눈에 띄는 색감으로 염색되어 팔렸어요.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염색되는 것이 아니라, 잉크에 그냥 담갔다(dip) 빼는 것이라 생명체에게는 굉장히 치명적이죠. 그들은 상업적인 업계에서 선택받기 위해, 이미 갖춰있던 사회모습에 의해 독성의 잉크로 염색이 되었고 저는 이 색감으로 저와 친구들을 투영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예술의 형태를 고민해보는 작업을 계속할 것 같아요. 평면->설치->협업 및 퍼포먼스로 영역을 변화시켜왔는데 지속해서 협업 및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비대면)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끊임없이 동시대의 저와 제 친구들, 제 주변인들의 모습을 담아 부서지기 쉬운 존재의 기록물을 계속 남길 거예요.

 

끝으로 함께하고 있는 연무지대팀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제가 속해있는 팀으로 예술가, 디자이너, 기획자 등으로 이루어진 예술집단이에요. 서울지역에 밀집된 문화 인프라로 인해 활동이 어려운 수원 지역의 청년 문화생산자들, 그리고 문화를 향유하기 어려운 청년 문화소비자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경기도 내 청년 문화생산자들 간의 네트워크 부족으로 정보 공유가 용이하지 못해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움이 되고자 네트워크를 생성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문화생산자들 간의 연대를 이루고,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시민들의 인식과 참여를 끌어내 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인 팀이에요.

 

 

이희은 작가

이희은 작가


'이끼'를 닮은 나, '이끼의 행진'을 벌이다 '이희은 작가'

 
 

본인 소개를 부탁해요.

춤추고 안무하는 이희은이에요.

 

이번에 참여한 작품 제목은?

개인 작업 <이끼 되살리기>와 김보람 작가와의 협업작업 에 참여했어요.

 

어떤 작업인가요?

<이끼 되살리기>는 자화상 개념으로 안무한 작업이에요. 요즘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사유를 풀어보고자 했어요.

 

작업의 주제가 궁금하네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떤 뚜렷한 정체감 혹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영향 미치는 것들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순간에 직면 중인 나를 바라볼 때 혼란스러웠던 기억들을 꺼내보고자 했어요. 어쩌면 뿌리와 줄기, 잎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지만 원시적인 식물인 이끼처럼 이도 저도 아닌 것들의 합인 정체성이 오히려 가장 원시적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작업 기간은요?

대략 3개월 걸린 것 같아요. 행궁동 골목을 걷고, 구상을 하고, 안무를 짜고, 김보람작가와 협업하는 작업도 같은 과정을 거쳐 진행했어요.

 

행궁동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행궁동을 돌아보며 공간 리서치를 할 때에 성곽의 이끼를 보고 작업의 소재를 찾았어요. 또한 여러 동이 합쳐진 행궁동의 기원에 대해 조사하면서 '나의 기원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나의 기원을 이끼에서 발견한 건가요? 이번 작품에서 이끼가 중요하게 표현됐더라고요.

"이끼는 원시적인 식물이라 꽃이 피지 않고 뿌리와 줄기, 잎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뿌리는 헛뿌리로 몸을 지지하는 역할만 하고, 관다발도 발달되지 않아 물과 영양분을 온몸으로 흡수해야 한다." 이끼를 설명하는 글에서 이끼와 나의 이도 저도 아닌 정체성이 닮아있고, 온몸으로 무언가 흡수하고 있는 지점이 맞닿아있다고 느껴 이끼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끼를 안무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무에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무엇인가요?

김보람작가와 협업하는 작업이었기에 '함께' 에너지가 발할 수 있는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전시 공간, 소품, 색감과 어우러질 수 있는 안무가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어요.

 

이번 퍼포먼스는 시간대를 달리해 진행됐어요. 낮과 밤으로 구분해 퍼포먼스를 한 이유가 있나요?

자연광에서 움직일 때와 조명과 함께 움직일 때 관객들로 하여금 보이게 될 것들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빛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을 실험해보고자 했어요.

 

그 실험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나요?

코로나 상황이고 날씨가 제법 추워서 많은 분들이 오진 못했지만, 낮에 전시공간 안에서와 밤에 성곽길 앞 나무 앞에서의 퍼포먼스를 둘 다 본 분들의 소감을 잠깐 들었어요. 모호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퍼포먼스에 공감하셨다고, 어떤 분은 눈물이 나왔다고 해 주셨어요. 밤에 한 퍼포먼스는 성곽길에서 큰 나무까지로 동선을 잡았는데,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생동감 있게 와 닿았다고 하셨어요.

 

이야기한 대로 밤 퍼포먼스는 화성 성곽길과 큰 느티나무에서 진행했는데, 어떤 걸 표현하셨나요?

앞으로의 날들이 분홍색 꽃들로 만발하는 길 위에 있기를 염원했어요. 우리의 소망이 가득 담긴 분홍색 깃발을 들고 분홍이 흩날리는 굿을 했어요.

 

퍼포먼스 할 때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어요. 밤에 야외에서 공연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막상 공연을 할 때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어요. 봄날 같은 날씨가 계속 되다가 퍼포먼스 하는 당일 날 기온이 뚝 떨어졌어요. 안무복이 얇아서 다들 걱정해 주셨는데, 당초 기획한 안무의상을 바꿀 수는 없었어요. 다행히 무던한 저를 걱정해주며 춥지 않도록 몸을 감싸는 의상을 준비해준 송은지 기획자와 김보람 작가가 곁에 있어 따뜻한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김보람 작가와 그 전에도 공동 작업을 했나요?

<하든 짓도 예술판 깔아놓으믄 안한다>라는 제목으로 우리들의 예술 활동이 온전히 내가 하던 짓이었는지 물음을 던지는, 예술의 강제성에 대해 고찰했던 전시 퍼포먼스 작업을 함께 했어요.

 

이번에 김보람작가와 함께 작업하는데 서로 합이 잘 맞았을 것 같아요. 이번 작업과정은 어땠나요?

김보람 작가와 함께였기에 혼자라면 주저했을 행동들을 과감하게 해낼 수 있었고, 이번 작업을 통해 앞으로의 또 다른 작업을 도모하고 기대할 수 있었어요. 나의 부족함까지 응원해주는 동료가 있어 과정 자체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어요.

 

이번 작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제 자신 또한 저의 공연의 관객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저의 작업들은 나 자신한테 하고 싶은 말들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 작업을 통해서는 흔들리고 헤매는 그것이 오히려 원시적인 정체성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또한 진심이 아닌데 애써 무언가 확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자신의 공연에서 관객이기도 하다는 말이 와 닿네요. 이번 작업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큰 흐름이 공공미술프로젝트이다 보니 '어떻게 공공한 예술을 할 수 있을까?'가 작업을 하면서의 화두였어요. 사실 이미 우리는 공공한 예술을 하고 있었어요. 공공한 공간에서 공공한 나로서 공공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으니까요.

 

작업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위에서 말한 화두의 연장선으로 어디까지 나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을지, 충실해야 할 지 작업을 진행하며 고민이 많았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은요?

전시장에서 저와 성곽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관객과 다 같이 이동하는데, 그것 또한 퍼포먼스의 일부분처럼 느껴져서 좋았어요. 모두가 한 목표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 열정이 타올랐어요.

 

전체 주제가 '행궁동 판타지가 된다'인데, 행궁동에서 어떤 판타지를 생각하셨나요?

행궁동에 이끼의 행진이 일어나길 바랐던 저의 판타지는 실현되었고, 애초에 행궁동이었기에 꿈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에게는 행궁동이 아주 고마운 공간이에요.

 

그동안 어떤 작업을 해오셨나요?

위에서 잠깐 이야기 했지만, 주로 나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은 물음표들을 꺼내고 다듬어 안무해왔어요. 그렇기에 자화상적 작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앞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에서부터 내 주변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이번 작업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하며 떠올렸던 또 다른 판타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김보람 작가와 협업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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