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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내가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그리고 가수 윤형주
김우영 언론인
2023-02-25 10:06:06최종 업데이트 : 2023-02-28 09:27:54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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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가 3.1절을 앞둔 2월 28일 '윤형주의 음악, 그리고 윤동주 시인 이야기' 토크콘서트를 개최한다. 꼭 가보고 싶다.
 

두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고 가수다. 윤형주는 윤동주의 6촌 동생이지만 둘은 서로 만난 적이 없다. 윤동주는 1945년에 세상을 떠났고 윤형주는 1947년에 태어났으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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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141회 수원새빛포럼 홍보물

   

지난 2015년 2월에 개봉한 영화 '쎄시봉'은 '마성의 미성' 윤형주와 '타고난 음악천재' 송창식, 그리고 김세환, 이장희 등 당대를 풍미한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윤형주와 송창식은 트윈폴리오라는 2인조 듀엣을 결성해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트윈폴리오가 영롱한 어쿠스틱 기타(통기타) 연주와 감미로운 보컬 화음으로 초기 한국 포크의 '고운 노래'를 확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부른 '하얀 손수건', '웨딩 케잌'은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내 머리 속엔 지금도 이 노래의 여운이 맴돌고 있다. 심각한 연애도 해보지 못했으면서...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실연의 아픔을 겪은 젊은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 노랠 따라 불렀다.

 

 

트윈폴리오가 해체되고 윤형주와 송창식은 각자 솔로로 활동하면서 많은 히트곡을 냈다.

 

윤형주는 '비와 나', '라라라(조개껍질 묶어)', '비의 나그네', '두개의 작은 별', '우리들의 이야기', '바보(짧다란 사연 하나)', '고백', '사랑스런 그대', '어제 내린 비' 등을 불렀다. 이 가운데 '오랜 만에 그녀가 보내온 짧다란 사연하나~'로 시작되는 '바보'와, '어제는 비가 내렸네. 키 작은 나뭇잎 새로~'가 도입부인 '어제 내린 비'는 한때 나의 노래방 애창곡이었다.

 

그런데 윤형주가 시에 조예가 깊었다는 것은 잘 몰랐다. 학창 시절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시인이었다. 그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아버지 윤영춘은 1937넌 '신동아' 신춘문예에 시 '지금은 새벽'이 당선되었으며 첫 시집 '무화과'((1948)를 제2시집 장편서사시 '하늘은 안다'(1951), 에세이집 '행복은 너의 것'(1965)을 냈다. 윤동주의 당숙으로 시인이 죽기 2주전 마지막으로 면회를 갔고 일본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옥사했을 때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시인 아버지와 음악인 어머니, 6촌형 시인 윤동주... 문학과 음악에 일찍이 눈을 떴음은 당연하다.

 

윤동주는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중학생 때 첫 수업시간에 들어온 국어 선생님이 칠판에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서시)'를 썼다. 그리고 5분쯤 지났으려나,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지워버렸다. 그런데 기억력이 썩 훌륭하지 않았는데도 단숨에 외워버렸다. 시가 내안에 들어왔다. 그냥 가슴이 먹먹했다. 아, 이게 시라는 것이구나.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김소월, 하이네, 구르몽 등의 시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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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내 책꽂이에 있는 윤동주 시집들(사진/김우영)

 

그 순간을 '한국시학' 2018년 봄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춘기 소년이었던 내겐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니...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니... 아아, 이거 단순한 언어의 연결이 아니고 뭔가가 있구나, 이게 뭐지? 까까머리 소년에게 내린 시(詩의) 강신(降神)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처 옮겨 적을 시간도 없었던 그 짧은 시간, 시를 모두 외워버렸지요. 그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았어요. 며칠 후 돈이 없어 새 책을 살 엄두는 나지 않았으니 매향여중·고 앞 수원천변 헌책방을 뒤져 윤동주 시집을 구하려 했는데 찾아내지는 못하고 대신 내손엔 김소월의 시집이 쥐어지게 됐지요. 2차 강신이 왔어요. 김소월의 '초혼'을 읽고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붉은 해는 서산에 걸리었다... 떨어져 나가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하아, 이건 또 뭐냐. 어린 영혼을 모두 털어버린 윤동주와 김소월은 그래서 내게는 무당들이 신 내림을 받을 때의 신아버지 같은 존재들이에요."

 

 

한중 수교전인 1991년 중국에 갈 때 일부러 용정까지 가서 고생고생 끝에 윤동주 묘소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2015년 화성연구회 해외답사 때도 윤동주가 다닌 용정 대성학교를 방문 하고 명동에 있는 윤동주생가를 찾아갔으며 윤동주 무덤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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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15년 용정 윤동주 묘를 찾은 (사)화성연구회 회원들(사진/김우영)

 

듣자니 중국은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시인이라고 우긴다고 한다. 국적이 중국이고 민족을 조선족으로 표기하고 있단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 마을의 윤동주 생가 입구에도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라고 적힌 대형 표지석이 있다.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데 우리 주변국인 일본이나 중국은 침략한 것도 모자라 남의 역사를 훔쳐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뻔뻔한 재주가 있다. 그야말로 후안무치다.

 

3월이 온다. 봄이 왔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해방을 몇 달 남기고 적국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윤동주 시인의 심정에 어찌 비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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