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공감칼럼]튀르키예 지진 참사 생각하며 앙카라학교공원에 가다
김우영 언론인
2023-03-12 14:51:15최종 업데이트 : 2023-03-12 14:49:45 작성자 :   e수원뉴스

 1

<사진> 수원시 서둔동에 있는 앙카라학교공원(사진/김우영)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5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튀르키예에서만 4만6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0만 채에 가까운 건물이 무너지며 200만 명이 넘는 지진 난민이 발생했다.

 

이에 형제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조대를 급파해 생존자들을 구출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등 공공기관과 기업, 국민들의 구호금품도 기부도 줄을 잇고 있다.

 

나도 직접 가서 돕거나 큰 기부는 하지 못하지만 하루에 한번 이상은 튀르키예 관련 뉴스를 검색하면서 마음속으로나마 슬픔과 실의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를 간절히 응원 하고 있다.

 

오늘도 관련 뉴스를 찾다가 오래 전 내가 쓴 '터키 얄로바 시와 수원시의 끈끈한 우정'이란 글을 보았다.

 

1996년 6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도시정상 회의에 참석한 당시 심재덕 시장(작고)이 얄로바시를 방문, 6.25 한국전쟁 참전 용사 니아지 아슬란타쉬 씨(당시 70세, 작고)를 찾아갔다. 그는 6·25 때 수원 인근 용인 김량장리 전투에 참전했다. 죽기 전에 한국에 꼭 오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던 심시장이 용인 김량장리 주변의 흙을 퍼서 담아간 것이다. 전신마비와 실어증으로 누워있던 아슬란타쉬 씨는 눈물을 흘리며 흙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인연이 되어 1999년 6월 11일 얄로바시에서 자매결연식을 개최했다.

 

튀르키예군은 6·25전쟁 당시 1만5000명이 참전해 741명이 전사하고 2068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75명이 실종됐고 234명이 포로가 됐다. 이들은 모두 강제 징집이나 차출이 아닌 자원병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5000명 정도의 병력을 보낼 작정이었으나 모병 결과 1만5000명이 자원했다.


그리고 우리도 이번 튀르키예 대지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다. 이번 뿐 만 아니다. 지난 1999년 얄로바 지역에 지진 참사가 발생했을 때 수원시는 성빈센트병원, 아주대병원, 동수원병원 의사와 간호사, 공무원 등 22명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을 파견, 튀르키예인들을 감동시켰다.

 

2018년엔 얄로바시 페리터미널 인근 해수욕장에 공중화장실을 지어주기도 했다.

 

 

수원시와 튀르키예와의 인연은 6.25 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튀르키예군 1개 대대는 1951년 수원지역 권선구 서둔동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주둔하며 앙카라 고아원을 세워 전쟁고아 640여 명을 돌봤다. 전쟁이 끝난 뒤 1966년 튀르키예군 잔류 중대는 철수했다.

 

 

6·25 전쟁 당시 전쟁고아였지만 이들 군인 덕분에 성인이 될 때까지 앙카라 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오수업(78·사업) 앙카라형제회 회장은 이번 지진 때 1000만원을 기부했다. 오회장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군인들이 주말마다 우리에게 식량을 갖다 줬던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면서 "제가 튀르키예 군인들에게 받았던 것을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2013년 앙카라학교공원을 조성했다. 진입로는 앙카라길이란 명예도로명을 부여받았다. 공원 옆 서호초등학교에는 앙카라관이란 건물도 있다.

 

1

<사진> 서호초등학교 내 앙카라관 (사진/김우영)

 

몇 해 전 개봉돼 튀르키예 국민들을 감동시킨 영화 '아일라'는 한국 전쟁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나도 그 영화를 봤다.

 

튀르키예 병사 슐레이만(작고)은 부모를 잃은 고아 소녀(아일라, 한국명 김은자)를 발견하고 부대로 데려가 정성껏 키우다 귀국명령을 받고 앙카라 학교에 보내면서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60년이 지난 2010년에야 국가보훈처 주관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통해 재회했다.

 

오산 출신 막사발 명장 김용문 작가는 튀르키예 앙카라에 있는 국립 하제테페대학교 13년차 교수다. 이번 방학 때 수원과 오산에서 몇 번 만나 식사를 했다. 그런데 수원 앙카라학교공원을 모른단다. 수원에 튀르키예군이 주둔했었고 그들이 앙카라고아원과 학교를 운영했다고 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 '아일라'를 봤지만 그곳이 수원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1

<사진> 앙카라학교공원 가는 골목길 벽화와 막사발 작가 김용문 교수(사진/김우영)

 

앙카라로 돌아가기 며칠 전 나와 함께 앙카라학원이 있던 자리와 앙카라학교공원, 서호초등학교 내 앙카라관을 둘러봤다.

 

그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앙카라에 돌아가면 이 사실을 학생과 교수, 앙카라시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앙카라 앙카라 귀젤 앙카라~"

 

'귀젤'이 무슨 뜻이냐니까, '좋다' '좋은'이란다.

 

 

그런데 들어가는 골목이 너무 휑하다. 설명이 없으면 내용을 눈치 채지 못할 벽화 한 점과 기념비가 있었던 자리임을 알려주는 작은 안내판만이 있을 뿐이다.

 

입구에 벽화라도 몇 개 더 그렸으면 좋겠다. 형제국 튀르키예 국민을 비롯, 누가 찾아와도 금방 알 수 있도록.


추천 1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