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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연극쟁이 김성열을 다시 만났다
김우영 언론인
2023-03-18 16:46:48최종 업데이트 : 2023-03-20 09:23:50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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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았던 어느 오후 (사)화성연구회 모니터링에 이른바 '깍두기'로 따라 나섰다. 이날은 방화수류정에서 출발 화홍문-장안문-서북공심돈과 화서문까지 꼼꼼하게 둘러봤다.

 

마무리를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사이 따듯한 햇살이 고이듯 머무는 곳에서 했다.

 

문득 이곳에서 열렸던 행사들이 생각났다. 빗속에서 강행했던 화성연구회의 낙성연, 극단성의 연극공연, 미디어아트... 아, 그리고 2019년 9월 26일 그 가을 아침 김성열(1954~2019)의 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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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6일 화서문에서 열린 연극인 김성열 노제에서 잔을 올리는 공동장례위원장들.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연극쟁이 김성열이 세상을 떠나고 며칠 후 나는 김성열의 연극인생을 소개하고 삶을 추모하는 칼럼을 한 매체에 발표했다. 그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수원연극계의 대들보였다. 그의 전성기가 바로 수원연극의 전성기였다. 지금은 '수원연극축제'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는 '수원화성국제연극제'를 창설한 인물이다.

 

첫 행사 반응은 뜨거웠다. 참가한 외국 극단은 중국 길림성 경극단, 미국 오하마매직시어터, 일본 신주쿠양산박, 러시아 유고자빠제 등이, 한국에서는 극단 성이 참가했다. 관객과 언론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특히 한겨레신문 이봉수 논설위원은 '수원성에 살고 싶다'라는 장문의 칼럼을 통해 이 행사를 극찬했다. 조선일보도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 못지않은 '옛날과 오늘이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뤘다'면서 공연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전했다.

 

나도 1996년 제1회부터 집행위원으로서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했으며 때로는 외국공연단을 접대하는 일들을 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일본군강제위안부할머니를 돕기 위한 문화예술행사 를 개최한 적이 있다. 수익금 200여만 원은 안점순 할머니에게 직접 전달했다.

 

김성열과는 20대 때 처음 만났다. 내가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부터 거의 매일 만나 술을 마시고 '일'을 만들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미트 아시아' 연극제에도 함께 참여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던 중국 연변·북경 조선족 동포 취재에도 동행했다. 그 역시 첫 외국여행이었다.

 

그와는 많은 추억이 있다. 의기투합해 크고 작은 문화예술 이벤트를 만들었다. 삼복중엔 그와 동갑인 이용창 형과 함께 시장에서 생닭과 삼계탕 재료들을 사다가 푹푹 끓여 연습중인 극단 성 단원들에게 먹이기도 했다.

 

수원화성축성 200주년 때는 나와 함께 장안문 안에서 시 낭독회를 개최했다. 시와 연극, 음악, 무용, 마임, 행위예술 등이 하나가 된 수원 최초의 복합 시문학축제였다.

 

그러나 그의 말년엔 자주 만나지 못했다.

 

암 투병 중이며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사람과 함께 문병을 가려고 날을 잡아 놓았지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해 포기했다. 앞의 칼럼에서 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썼다. "사실 나는 죽음을 앞둔 그의 마지막 초췌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했던 빛나는 날들만 간직하고 싶었다."라고.

 

김성열은 수원 연극 발전을 주도한 인물이다. 1983년 극단 '성(城)'을 창단했고, 수원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시시비비',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 뮤지컬 '나혜석' 등 다양한 작품을 공연했다. 연극 '햄릿'은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김성열을 기리는 전시회 '에필로그-어느 수원 연극인'이 수원화성박물관 열린문화공간 후소에서 8월 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첫날 만사를 미루고 후소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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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성열 연극자료가 전시돼 있는 문화공간 후소(사진/김우영) 

 

김성열과 관련된 수원 연극 리플릿·포스터·극본·공연 테이프·사진· 영상과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었다. 그의 아내 신미선 씨의 추모작품과 추모 영상도 인상 깊었다.

 

전시회 안내 리플렛에 담긴 "에필로그는 연극의 마지막 부분을 말한다. 2019년 김성열의 연극은 끝났지만, 그가 남긴 연극자료가 수원연극 활성화와 문화도시 수원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전시를 기획했다"는 기획자의 의도대로 소박하지만 이 전시회는 수원예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에필로그-어느 수원연극인' 전시 자료들과 화가 차진환이 그린 그의 초상,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연극을 생의 우선순위에 놓았던 김성열이 떠난 수원의 연극판은 매우 쓸쓸해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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