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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화성축성 실무자 조심태, 호랑이 상의 무인(武人)이었구나!
김우영 언론인
2023-03-25 15:23:19최종 업데이트 : 2023-03-25 15:21:36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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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근 발견된 조심태 초상화 시복본(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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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성박물관 소장 조심태 표준 영정. 실제 초상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참 궁금해 하는 것 가운데는 정조대왕, 그리고 수원화성 축성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감동당상 조심태의 얼굴도 있다. 실제 모습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표준영정을 볼 때마다 "과연 실제 얼굴과 얼마만큼 닮았을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조대왕 초상화들은 화재로 모두 타버렸다. 정조대왕의 아들인 순조는 정조대왕이 이마가 넓고 높은 콧날에 네모난 턱을 가졌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왕실 족보인 '선원보감(璿源寶鑑)'에 있는 간략한 초상화도 우락부락하고 야성적인 무인의 얼굴이어서 순조의 회상과 비슷하다.

 

표준영정과 드라마, 영화에서 묘사한 잘 생긴 훈남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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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원보감에 수록된 정조대왕 얼굴

화성박물관이 소장한 조심태 표준 영정을 보면서도 의문을 느꼈다.

 

조심태는 채제공과 함께 정조대왕을 보좌한 명신(名臣)이다. 오늘날 수원이 있게 한, 수원의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789년 수원부사로 부임해 현륭원 조성과 수원신읍 건설에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1794년 수원화성 축성 당시에는 감동당상을 맡을 정도로 정조대왕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수원지방엔 조심태와 관련된 '곤장 한 대'라는 전설이 있다.

 

옛날 정조대왕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은 승려들이 권세를 믿고 술에 취해 아녀자를 희롱하다가 항의하는 남편을 죽이자 여자도 따라서 자결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수원부사 조심태는 즉각 승려를 잡아 들였지만 정조대왕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주는 승려들이었기에 곤장 한대만 치고 풀어주라고 했다. 이에 부사는 힘 좋은 사령을 불러 지시했다.

 

지시대로 사령은 곤장을 칠듯하다가 그치는 행동을 되풀이했다. 승려는 방심을 하게 됐고 사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온힘을 다해 곤장을 내려쳤다. 곤장 한 대로 승려는 즉사했다.

 

조정의 조사가 있었으나 실제로 곤장 한대 밖에 치지 않은 사실이 확인돼 사건은 종료됐고 그 후 승려들의 행패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는 것이다.

   

정조대왕과 조심태의 관계를 확인시켜주는 것은 수원화성박물관이 발간한 '정조어찰첩-정조대왕이 수원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시로 보낸 편지 편지에는 현륭원 조성과 수원부 이전, 수원화성 축성, 용주사 창건, 장용영 운영 등 수원유수부 경영과 관련된 정조의 지시사항이 수록돼있다. 정조대왕은 수원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모든 사안에 대해 조심태와 의견을 나누며 세세한 부분까지 지시했다.

 

정조대왕과 조심태가 얼마나 가까운 관계였는지는 다음의 편지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날이 덥기가 삼복더위보다 심하여 땀을 흘리고 헐떡이게 만든다. 경처럼 뚱뚱(비둔:肥鈍)한 사람이 어떻게 견디겠는가. 실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니 우습다." 더운데다 뚱뚱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더 덥겠는가, 나 역시 그러하니 우습다는 것이다. 본인도 더위를 이기지 못할 만큼 뚱뚱하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정조대왕의 초상은 살집이 풍성(?)해야 되는데 선비 같은 홀쭉한 얼굴이 표준영정이 되었으니 사실과 맞지 않는다.

 

 

"간밤에 잘 있었는가?" "근래 잘 지내는가?" "요사이 몸은 어떠한가?" "성역(공사)은 얼마나 되었는가?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힘들지 않은가?" "그 사이 몸은 깨끗이 나았는가?" 등 조심태를 아끼며 걱정하는 임금의 다정한 면모도 확인된다.

 

정조대왕은 "이 종이는 즉시 찢어버리고 남기지 말라" 했다. 평소 명을 잘 따른 조심태였지만 이 명만은 거역했다. 그리하여 편지가 남아 오늘날에 전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수원화성박물관 김세영 학예연구사가 조심태의 초상화 2점을 발견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다. 지난 2021년 삼성 일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수집품 2만 3300여 점 속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조심태의 53세 때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시복본(채색) 오른쪽 상단엔 '조어장심태(趙御將心泰)'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어장'은 '어영대장'이다.

 

초상만 봐도 그의 성품과 무인의 기개를 알 수 있다. 근엄한 얼굴에 눈매가 매서워 보인다. 호랑이상이다. 보는 이들이 위축될 정도로 위풍당당한 분위기를 풍긴다.

 

김세영 연구사의 설명처럼 얼굴의 곰보 자국, 수염의 묘사가 매우 섬세하다.

 

수원화성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의해 조심태 초상화 2점을 5월 개최 예정인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전시'에 소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물 조심태 초상화를 직접 보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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