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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종음(夫婦縱飮)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7-04-24 14:44:10최종 업데이트 : 2017-04-24 14:44:1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몇 년 전 농촌에 살았을 때 일.
판교면 등고리는 서천팔경 중 봉림귀운(鳳林歸雲)으로 알려진 봉림산 아래 길게 펼쳐진 마을이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에서 4번 국로를 따라 북쪽을 향하여 10분정도 달리면 우측에 마을 입구 표지석이 나타난다. 이 마을에 27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길은 이웃 문산면 앵두마을로 통하는 길이다. 길 따라 왼쪽으로만 시골길이 5개 있어 길 따라 농가가 자리 잡고 있다. 첫 번째 길은 작은 고개에 자리하여 소롱굴(고개)이라고 부르며, 두 번째 길목은 아랫말 또는 수렁이 많다 해서 수랭이, 다음은 중뜸으로 마을 한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다음 길 위쪽 부락은 윗뜸, 그 옆 건너는 윗말이라고 부른다. 마을이 끝나는 동쪽의 작은 고개는 배나무가 많았기에 배나무굴이라 하고 이웃 앵두마을로 넘어간다.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첫 번째 부락인 소롱굴로 향한다. 아내가 소롱굴 맨 위 할머니 댁 흙벽이 멋지다고 부추겼기 때문이다. 소롱굴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논을 끼고 작은 비탈길을 오르면 왼편에 농가와 텃밭이 있다. 쉼터를 지나 세 번째 집인 빨간 지붕 집에 사는 부녀회장은 텃밭에서 고추 지주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버스길에 우리 부부가 몇 번 만났던 아주머니이다. 반갑다며 일손 털고 함께 집으로 들어간다. 시골집이 깔끔하다. 즉각 내 오는 것이 소주다. 집에 오는 사람을 위해 그냥 준비한 것이란다. 안주로 취나물을 축낸다. 

쉼터-소롱굴 가는 길
쉼터-소롱굴 가는 길

맨 위 할머니 댁. 뒤꼍은 산기슭 대나무 밭이고 취나물 등을 심었다. 황토 흙벽이 운치 있다. 흙벽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직접 쌓았다. 찾아오시는 분들도 종종 사진을 찍고 간다고 한다. 댓돌이 조옥 놓여있지만 마루가 조금은 높아 보인다. 마루 한 구석에는 일제시대 모란문 자기 요강이 놓여있다. 그런데 할머니는 욕쟁이다. 그냥 스스럼없이 하는 욕이라 듣는 이의 귀가 오히려 즐겁다. 

마당 한편 창고에는 옛 농기구들이 먼지에 쌓인 채 있다. 할아버지 유품이라 잘 보관해 둔다고 한다. 좁은 마당에는 잔디를 심었다. 비가 오면 질퍽한 것이 보기 싫어 심었다고 한다. '저쪽 집은 누가 살고 있나요?' 건너편에 보이는 집은 빈 집이다. 대문으로 향한 길에는 쇠뜨기가 잔뜩 돋아 있다. 할머니 왈 '저놈의 쇠뜨기 뿌리는 중국까지 뻗어 있어'. 그만큼 잘 퍼지고 제거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어느새 뒤꼍에서 취나물을 뜯어와 봉지에 담는다. '집에 가 반찬 해 먹어!'  

박씨 아주머니 댁 장독대
박씨 아주머니 댁 장독대

바로 아래 박씨 아주머니 집. 얕은 돌담이 멋있다. 돌담위에는 기와를 얻었다. 본래의 옛 집에 이어 마당에 새로 가옥을 지어 살림을 한다. 얕은 담 너머를 기웃거리자 아주머니는 반갑게 집안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부추 부침개와 소주를 내온다. 이 댁은 된장, 간장을 많이 담근다. 친구 분들이 맛있다고 가져가더니 이내 소문이 나서 된장, 간장 담그느라 조금은 바쁜가 보다. 이래저래 또 소주잔을 비운다. 아주머니는 맥주만 한 잔 한다. 아내는 부침개가 맛있다고 침을 흘린다. 

자, 이제는 내려가는 길목. 이번에도 박씨 아주머니 댁이다. 새로 지은 지 몇 년 안 되는 양옥이다. 대문에 들어서려면 넓은 벚나무 묘목 밭을 지나야 한다. 마당 한쪽에는 개집 그리고 닭장도 있다. 맥주를 내 온다. 아들이 사다 놓은 것인데 맥주는 한 잔 할 수 있다고 마른안주를 가져오며 자주 놀러 오란다. 

오늘 마지막 집은 신씨 할아버지 댁이다. 이 분은 경운기를 몰고 지나갈 때에 항상 우리 집 마당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저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서 내가 마당에 있나 확인하는 것이다. 이 집 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개들이 있다. 꼬리치며 달려들고 난리다. 노부부는 반갑다며 소주를 내온다. 이래저래 우리 부부는 소롱굴을 훑으며 거나해서 내려왔다. 

이때쯤이면 소도원(小桃源) 주인은 자못 비장하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酒不醉人人自醉). 그리고 괜스레 이백의 '월하독작'을 들먹인다. '내 몸 있음도 알지 못하니 이게 바로 최고의 즐거움이네(不知有吾身 此樂最爲甚)'. 
주(酒)님 만세. 오늘 소롱굴 여러분 덕분에 까닭을 찾을 겨를도 없이 마셔댔다. 곧 다음 일정을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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