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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하루 품삯은 열두 냥인데 우리 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언론인 김우영
2020-07-20 10:03:20최종 업데이트 : 2020-07-20 11:47:37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공감칼럼] 하루 품삯은 열두 냥인데 우리 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공감칼럼] "하루 품삯은 열두 냥인데 우리 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비 오는 날이면 당기는 막걸리/사진 김우영

​비 오는 날이면 당기는 막걸리


'우리가 놀면 놀고 싶어 노나.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하루에 품삯은 열두 냥이요 우리 님 보는 데는 스무 냥이라 엥헤라 엥헤라 엥헤라 엥헤라
사랑이 좋으냐 막걸리가 좋으냐, 사랑도 좋고 막걸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엥헤라 엥헤라 엥헤라 엥헤라 
네가 좋으면 내가 싫고, 내가 좋으면 네가 싫고 엥헤라 엥헤라 엥헤라 엥헤라'

 
 
나 어린 시절 비가 오면 동네 남자들은 막걸리나 소주를 사다 마시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내 10살 위 의형(義兄)인 임병호 시인도 한때 '노가다'라고 불리는 현장 일을 했다.   

'아느냐, 배고픈 설움을 아느냐,/밀린 노임 받지 못해/아침 끼니를 거른 날//벽돌지게에 생활을 지고/빌딩 신축현장 가설계단 오르면/의지도 때로는 휘청거렸다, 그러나/우리의 노동에/목숨 매고 기다리는/죄 없는 식솔들을 위하여/무너지지 말자, 무너지지 말자,/여름 햇빛 불타는 현장에 실의를 쏟아 놓으며/금력이 날뛰는 거리/도심을 향해 힘차게 침을 뱉었다.'
-임병호의시 '벽돌 지게에 생활을 지고' 전문
  

시인은 일찌감치 혼인을 하여 20대 초반에 가장이 됐다. 아내와 딸이 굶지 않도록 공사판을 전전하면서도 시를 썼다. 그러다가 수원시 공무원이 됐고 이어 경기일보 기자가 됐다. 문화부장을 거쳐 논설위원을 하다가 정년퇴직해 지금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장이자 계간 시전문지 '한국시학' 발행인을 맡고 있다.

그런데 나도 임병호 형님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비교적 일찍 혼인해 아이를 5명이나 낳았다. 다만 병호 형님은 4녀1남인데 나는 3녀2남이다. 혼인 후 쌀을 사기 위해 공사판에 다닌 적도 있다. 

1980년대 중반 쯤 화서문 밖 연립주택 공사판에 내가 있었다. 벽돌이나 시멘트를 지고 '아르방'이란 철판을 오르내렸다. 아르방은 비행장 임시활주에 까는 구멍 뽕뽕 뚫린 철판이다. 시내의 작은 개천을 건너는 다리에 깔아놓아 뽕뽕다리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여러 직업을 거쳐 수원시청에 월간 잡지 '우리 수원'을 만들기 위해 들어갔고 몇 년 후 수원시청을 그만두고 신문사(중부일보) 창간 작업에 참여해 문화체육부장을 역임했다. 5년 정도 지난 후 당시 심재덕 시장의 권유로 다시 수원시청에 들어가 10일에 한번 발행되는 신문 '늘푸른 수원'을 창간했고 나중에 인터넷 신문 'e수원뉴스'를 만들었다. 퇴직한 지금은 경기신문에서 비상근으로 사설을 쓰는 중이니 인생 역정이 흡사한 것이다. 게다가 시를 쓰는 문학의 도반이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 맞다. 실내 공사를 하는 현장 노동자들은 상관이 없지만 실외 공사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공치는 날이다.

내가 작업실로 사용하는 원룸주택에도 공사판노동자들이 있다. 같은 층에 사는 내 또래 남자의 방에는 비 오는 말이면 '공친' 동료들이 몰려온다. 아침부터 한잔 걸친 데다 현장 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서인지 목소리가 우렁차다. 한참 떠들다가 왁자하니 몰려나간다. 다른 친구 방으로 몰려가는 것일 터이다. 한동안 귀에 거슬려 신경이 쓰이더니 요즘은 문을 닫고 이야기를 해서 그런대로 참을 만 하다. 한 열닷새 조용한 적도 있었다. 어디 아픈가? 혹시 이사 갔나? 궁금했는데 어제 또 잔뜩 몰려와서 시끌벅적했다. 웃음이 났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막걸리에 잘 어울리는 김치전

막걸리에 잘 어울리는 김치전

  
장마가 시작된 요즘 문득 이 노래가 떠올라 혼자서 흥얼거려봤다. 저녁엔 간만에 역사학자 ㅇ선생, 그의 후배 한사람과 지동시장 지나 안성순댓국집에 들렀다.

이집은 그냥 내 집처럼 편하다. 70대 주인 내외도 당신들이 먹던 안주나 반찬이 있으면 다른 손님 몰래 슬쩍 내 식탁에 놔두고 간다.      

순댓국 값은 35년째 4,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소머리국밥도 6,000원이다. 좀 올려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우리가 늙어서 더 이상 이 가게를 하지 못할 때까지 올리지 않겠다"는 말씀이시다. 안주도 5천원~1만원이면 푸짐하다. 정말 착하고 아름다운 가게다.  

남부지방엔 폭우가 내려 피해가 생겼다. 수원지방은 아직 큰 비가 내리지 않았다. 수원이 살기가 좋은 것은 비피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큰비가 내려 화홍문이 무너진 일도 있었다. 1846년(헌종 12) 큰 홍수로 무너져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었으며 1922년에도 홍수로 유실돼 1932년 '수원명소보존회'를 주축으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다. 

내 중학교 시절엔 홍수가 나서 고색동 평동 벌판이 모두 물에 잠겨 도로 좌우의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며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봉담면 수영리 우리집까지 갔었다. 그때 장롱과 뱀도 떠 내려왔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최근엔 치수행정이 잘 이루어져 그런 일은 없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빗소리를 배경으로 '엥헤라 엥헤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도 그리운 그 노래는 다시 듣고 싶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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