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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하주성 형, 오늘도 ‘바람이 머무는 곳’ 하늘나라에서 답사를 다니시오?”
김우영 언론인
2021-02-08 10:15:31최종 업데이트 : 2021-02-08 10:15:16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칼럼 상단

 

지난달 28일 하주성 씨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 아직도 한참은 더 활동을 해야 할 나이이거늘.

 

그는 한때 대전 KBS에서 PD생활을 했고 수원에서 전통문화관련 신문도 발행했으며 모 인터넷신문과 수원의 복지신문 편집국장으로 활약한 언론인이었다.

 

또 전국의 사찰과 문화재를 답사하며 자신의 블로그와 오마이뉴스 등에 글을 써 많은 독자를 확보한 답사 전문가이면서, 해박한 무속과 민속문화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펴낸 민속연구가이기도 했다.

 

더 놀라운 일은 과거 작곡까지 해 권위 있는 음악제인 동아음악콩쿠르에 입상한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역대 입상자를 검색해보니 실제로 '하주성(河周成 10회, 국악)'이라고 기록돼 있다.

 

1982년엔 인천시립무용단 창단공연작 '굴레야 굴레야'라는 작품의 곡을 썼다. 아울러 국립무용단 정기공연, 대한민국무용제 작품의 곡을 쓰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를 만난 것은 내가 지역신문의 문화부 기자를 할 때이다. 그는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민속문화 관련 부정기 간행 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여름철이었는데 시커먼 개량한복을 입고 있는데다 인상마저 부드러운 편이 아니어서 첫인상에 호감을 갖기는 어려웠다. (그 후 십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로부터 들으니 나도 까칠해서 그렇게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단다.)

 

그런저런 세월이 흐르고 나도 신문사를 나와 수원시에서 만드는 시정신문 'e수원뉴스' 주간을 맡게 됐다.

 

e수원뉴스는 시민기자 제도를 도입했고 모범적으로 운영된다는 평가를 받아 전국 지방정부의 벤치마킹이 이어졌다.

 

시민기자 중에 '하주성'이란 이름이 눈에 띄었다. 전화를 걸어 "내가 아는 그 하주성 선생이 맞습니까?"하고 물었더니 "하하하 그래요. 내가 그 하주성이오"라고 해서 그날 저녁 즉각 만났다.

 

왜 그동안 수원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느냐는 물음에 전북에서 강원도에서 절집 밥을 좀 얻어먹었다고 했다. 왜 절간에 몸을 의탁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뒤 시청에서, 지동 시장 근처 대포집에서 뻔질나게 만났다. 참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e수원뉴스 시민기자를 시작한 것은 2012년 8월부터였는데 2020년 5월 쓰러지기 전까지 무려 2천 819건이나 되는 기사를 썼다. 2013년 생태교통축제가 열리던 9월에는 아예 행궁광장에 마련된 임시 프레스 센터로 출근, 한 달에 80개가 넘는 기사를 썼다. 그러니까 하루에 두세 건씩 기사를 쓴 것이다.

 

그의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은 모두 취재의 대상이었다.

2013년 3월 e수원뉴스 시민기자 교육에 참가한 생전의 하주성 씨.사진/이용창(사)화성연구회 이사

2013년 3월 e수원뉴스 시민기자 교육에 참가한 생전의 하주성 씨.사진/이용창(사)화성연구회 이사

 

내가 퇴직을 하고 나서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1년에 어쩌다 두세 번 정도 거리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대포 한잔 정도 나누고 헤어지곤 했다.

 

그런데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청에서 가족을 찾는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로부터 가족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바 없어 도움이 되질 못했다. 그 후 간신히 수소문을 해서 입원한 병원을 알아냈고 문병을 갔는데 이런,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다른 병동으로 옮긴 뒤여서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면회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갔고 1월 28일 영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김효임 시민기자는 '열혈 시민기자, 하늘의 별이 되다'란 추모의 글을 e수원뉴스에 써 고인을 애도했다.

 

'2014년 8월 무더운 여름날 새내기 시민기자에게 비친 하 기자님의 모습은 거인처럼 듬직한 모습으로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롯데쇼핑몰이 수원역에 생기는 것을 두고 지역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때였다. 그 일을 두고 수원의 전통시장 상인들이 모여 시위를 했다. 수원역에서부터 9개 전통시장이 모인 수원남문까지 롯데쇼핑몰 반대 시위대를 따라 걸으며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기록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무더운 여름날 비지땀을 흘리며 시위대와 한마음으로 궁지에 몰린 시장상인들 편에 서던 기자님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홍일선 시인도 '정토행'이란 글을 내게 보내왔다.

 

'오늘/이 시간 이 고해(苦海)가/서방정토가 아니겠느냐는/하주성 보살 대취 장광설이/벌써 그리워지오이다/맞소이 천번만번 맞소이/예토에 유배된 아라한이여/박수보살이시여/어희 고향 돌아가소서'

 

장례가 끝나고 큰 아들이 내게 전화를 걸고 문자도 보내왔다. 감사 인사와 함께 그동안 그릇된 소문으로 오해가 있었음을 알려줬다. '아버지가 쓰러졌는데도 자식들이 모른 척 했다'는 소문에 가슴 아파했다. 그 발 없는 소문은 나도 들은바 있다. 사실은 병원에 있는 동안 자녀들이 계속 오가며 간호를 하고 치료에 힘썼던 것이다.

 

그날 빈소에서 이들을 만난 뒤 그 소문이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녀들은 문상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깊은 고마움을 표했다. 쓰러진 아버지를 모른 척 할 만큼 그렇게 매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해를 풀 수 있어서 고마웠다.

 

하주성 형, 마지막 가신 길 착한 아들과 딸, 며느리들이 잘 모셔 줘서 마음 편하셨을 것이요. 홍일선 형의 추도시 한 구절처럼 나도 형의 '대취 장광설이 벌써 그리워'집니다.

 

머지않아 형을 그리워하는 몇몇과 '그 집'에 모여 형을 추억하겠습니다. 자리하나 비워 둘 터이니 그때 잠시라도 오시길. 이 세상에서 자유로웠던 영혼이여.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김우영 언론인 사진 및 프로필

 

김우영, 언론인,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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