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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쉽게 쓰기의 유혹
정수자 시조시인
2021-07-19 13:30:04최종 업데이트 : 2021-07-19 13:34:11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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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또 표절로 시끄럽다. 잦은 표절 논란은 쓰기의 문제를 일깨운다. 쉽게 가려다 걸리는 표절의 그물. 누군가 애써 쓴 것을 조금만 갖다 쓰려다 밭떼기 표절에 빠지기도 한다. 남의 글을 그대로 갖다 쓰면 맥락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다 그만 베껴 쓰기로 뒤덮는 것이다.

 

표절의 위험은 늘 따른다. 대놓고 베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필사하다 내면에 녹아든 좋은 글이 제 것인 양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존의 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새로 쓰기의 어려움이다. "시인으로 막 데뷔한 신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선배 시인을 수정주의적으로 모방"(헤럴드 불룸 Harold Bloom)하며 자신의 쓰기를 확장하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글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무릇 책이 이전의 책을 딛고 나오듯.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빌려 쓰기의 영욕을 돌아본다. 기발한 발상에 오호! 무릎을 치며 쓰다 보니 누가 한참 전에 쓴 것이라던가. 그런 경험은 너무 흔해서 한숨으로 자신의 늦음을 누를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새로운 게 담겨야 글로서의 생명을 얻게 되므로.

 

쓰기란 그런 고통을 감내하는 일이다. 우선 쓸거리 찾기부터 힘들지만 쓸 것을 찾아도 잘 쓰기는 지난하다. 고민은 글의 구성이나 구체적 전략이 절실할 때 깊어진다. 지금까지 써온 것처럼 쓸 것인가. 새로운 방식으로 갈 것인가. 그럴 때 조금 쉽게 타협하면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통째 베끼기에 걸린 표절들도 '쉽게' 가려는 그 어디쯤에서 나왔을 것이다.

 

'쉽게'로 방향을 잡아도 '쉽게' 해결되진 않는다. 쓰기의 기준 삼을 기본이 많은 것이다. 단어는 정확하게, 표현은 명료하게, 문장은 간결하게, 논리는 명쾌하게. 그렇게 쓴다 해도, 한 문장이 한 문단이 되거나 비비 꼬인 비문을 거울삼아 다시 봐야 한다. 거기다 글맛이며 문채(文彩)까지 높이려면? 쉽게 읽히는데 그 안팎에 통찰이나 발견이나 인식의 깊이 등도 담으려면 더 많은 무엇이 또 필요하다.

 

그럴수록 쉽게 쓰기의 유혹은 크다. 쓰기가 막히면 편히 가자는 속삭임이 나오게 마련이다. 더 쉽게 더 널리 읽히길 바라는 마음도 거든다. 게다가 어디나 있을 법한 독자의 반응도 귓전을 때린다. 뭘 그리 어렵게 쓰냐고. 쉽고 재미있는 글도 많지 않느냐고. 대중이 좋아하는 쉬운 글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아무튼 치받는 속말은 잘 쓰기로 추스를 밖에 없다.

 

짚어보니 '쉽게 쓰기'에 걸리는 게 많다. 글에 대한 호응은 필자가 다 바라는 바다. 그런데 누구나 아는 내용으로 쉽게 쓴 것과 문장이 잘 읽혀서 쉽게 닿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깊이 있는 쉽게 쓰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경지다. 매 편이 새로운 쓰기여야 하니 어느 정도의 수준 유지만도 힘든 것이다. 그런데 독자에게도 매혹적인 '쉽게 쓰기'를 구한다면 고통을 더 즐겨야 한다. 내용의 함량은 물론 자신만의 글발을 높이거나 넓히는 길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므로.

 

'쉽게'의 죽비를 새삼 맞는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부분) 식민치하 조선청년이 되뇌던 '쉽게'의 부끄러움에 오늘날의 '쉽게' 타협이 뼈아프게 돌아 뵌다. 그렇다면 함부로 쉽게 쓰지 않기를.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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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시조시인, 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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