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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어둠이 필요해
정수자 시조시인
2021-08-02 13:57:38최종 업데이트 : 2021-08-11 14:05:41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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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가 길다. 그에 따라 불면도 길어진다. 코로나 방역강화에 열대야까지 피로지수만 높아간다. 마음대로 나다니거나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불만도 폭발 직전 열대야 같다.

 

불면은 탓의 가지를 친다. 뒤척이는 밤이면 불빛도 불면의 주범으로 원성을 산다. 틈만 보이면 도처의 불빛들이 시끄럽게 쳐들어오며 잠을 훼방하는 까닭이다. 창문 꾹 닫고 커튼까지 쳐야 조금 조용해진다. 하지만 잠이 들 만하면 집안의 작은 불빛들이 또 신경을 건드린다. 휴대폰, TV셋톱박스, 전자시계, 냉장고 등… 전자기기 불빛들이 불면 개미처럼 새어나오는 것이다.

 

어둠이 필요해, 진짜 어둠.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서 어둠을 불러본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밤의 어둠을 밀쳐낸 지 오래다('어둠도 오래 응시하면 훤해진다'는 전언과는 다른 차원이다). 밤낮없이 시끄러운 불빛에 에워싸여 지내는 게 도시인의 일상이다. 어둠을 쫓아내며 더 많은 불빛들을 더 높이 세우며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불빛을 문명 발전의 가늠자로 삼기도 했을 것이다.

 

자본의 상징처럼 번쩍이는 도시의 불빛들. 가로등이며 아파트며 고층건물의 비상등 같은 불빛이 밤마다 경계를 서고 있다. 도처에서 부릅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아니 지켜주는 것일지도. 그렇게 나름의 소임을 받았으니 골목의 외등도 제 마음대로 끌 수 없는 노릇이겠다. 그 모두 소용을 앞세운 것이지만 밤이라는 자연의 어둠을 인위적으로 물리쳐온 셈이다.

 

불빛 공해쯤은 나 몰라라 밤낮없이 불 밝히는 건물도 있다. 신축 광고인지 햇빛보다 밝은 불빛을 밤새도록 쏘아대는 것이다. 무슨 외계의 거대한 착륙선처럼 홀로 불타는 건물은 괴기스럽기도 하거니와 인근에 끼치는 폐가 이만저만 아니다. 자기 간판만 크게 걸어 작은 것들을 덮치듯, 고층의 위세로 주변의 작고 낮은 건물을 짓누르는 것이다.

 

이처럼 너무 환한 밤이 길어질수록 어둠이 그립다. 밤이 밝아도 너무 늦도록 지나치게 밝기 때문이다. 곡식도 가로등보다 어둠 속에서 잘 자라듯, 지나치게 밝은 것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휴식을 방해한다. 때와 곳에 따라 불빛을 조절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우리 몸도 자연의 리듬에 맞게 낮과 밤의 순환을 따라 사는 게 좋다니 지금의 불빛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어둠을 삶에 들여놓기. 일정 시각 후에는 불을 끄거나 낮추는 것이다. 물론 곳에 따라 다른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밤을 되찾으면 삶의 양상도 달라질 법하다. 우선 현대인이 많이 놓친다는 잠의 양과 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밝은 밤으로 잃었거나 얕아진 사유도 깊어질지 모른다. 어둠 속에서는 감각과 생각 등이 말똥말똥 깨어나기도 하니 말이다.

 

일찍이 일러둔 시인의 말도 그러하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정진규, 「별」). 그래서 어둠이 필요하고 별은 또 어둠이 낳는 것이겠다. 하긴 어둠 없이 저 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을 어찌 볼 수 있겠는가. 별만 아니라 우리네 삶과 자연의 뭇 생명에게도 어둠은 두루두루 있어야겠다.

 

어둠은 불빛천지에서 더 귀하게 다가온다. 돌아볼수록 우리의 밤은 어둠이 필요하다. 시방사방 불빛을 낮춰줄 마땅한 바탕이다. 그리하여 어둠으로 조금 더 고요해지고 싶다면.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정수자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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