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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달에 빌며 마음을 밝히듯
정수자 시조시인
2021-09-19 12:09:54최종 업데이트 : 2021-09-19 12:11:45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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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좋은 시절. 한가위라는 가을의 한가운데서 더 넉넉해진 달을 맞는다. 수확의 계절에 맞춤하게 달빛도 한층 풍성하게 내리는 듯하다.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중추의 달빛 하사에 그동안 각지고 지친 심사들도 둥글어지길 바라게 된다.

 

예전에는 중추 달빛이 얼마나 환했을까. 너무 밝은 밤의 이즈음 도시에서는 달빛을 피부로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도심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달이 얼마나 환하던지. 달빛 쏟아지는 소리가 손에 잡힐 것만 같다. 그러니 지금보다 훨씬 어둡던 시절의 보름 즈음이면 괜히 들레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들이 달병(病)을 낳았을 법하다.

 

달빛은 햇빛에 비하면 약한 빛이다. 그런데 어둔 밤을 비추는 까닭에 은은한 빛이 한결 그윽한 음영을 자아낸다. 으스름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밤의 심연을 더 흔드는 것이다. 달이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시편에 등장하며 시인 자신은 물론 수많은 독자의 시심마저 오래 울려온 연유겠다. 그런 정서에서 「월하정인」 같은 그림도 나왔을 것이다.

 

달은 널리 고루 비춤의 비유로도 많이 쓰였다. 부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을 비춘다는 뜻을 담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부터 그러하다. 구석구석 어둠의 고샅까지 다 비추는 자비의 비유로 달빛이 적합했을 법하다. 이후의 『월인석보(月印釋譜)』에서도 비유가 이어지니, '월인'이라는 비유가 그만큼 멀리 닿는 까닭이겠다. 달을 우러러 뭔가를 빌던 전통도 그런 마음을 먼저 먹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달빛에 마음을 깊이 담아온 전통은 정조의 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정조가 스스로 짓고 창덕궁 존덕정 현판에 쓴 호가 바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니 말이다. 이 만천명월이라는 표현에도 '달빛이 모든 냇물을 가리지 않고 비추듯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고루고루 베풀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정조 하면 떠오르는 애민정신의 한 상징으로 볼 수 있는 자호다. 국민을 섬긴다고 하는 현대의 표현과는 다른 군주의 표현이긴 하지만.

 

그런 달빛의 마음을 듬뿍 실어 전하는 정조의 시도 있다. "화려한 망루와 성벽이 의기를 과시하여라/여기에 항상 오색구름 펼쳐진 걸 보노라/높은 누각은 우뚝 솟아 가을빛과 겨루고/오만 물상은 다 밝아서 달빛에 떠오르네/경치는 유독 오늘밤으로 인해 좋거니와/산천은 원래 사시의 아름다움이 있다오/뜨락의 소나무는 더디 크는 게 무방하여라/상국의 집에 맑은 달 바퀴 길이 매어 놓으리."

 

'동장대(東將臺)에서 중추(中秋)의 달을 구경하다'의 시운이면, 다른 이의 시도 있었을 것이다. 번암 채제공의 시라고 짐작해보면 아쉽기가 그지없다. 한 권이나 된다는 채제공의 화성시집을 아직 못 찾고 있는 까닭이다. 이 시에서 정조는 화성에 대한 자긍심과 달빛이 빚어내는 풍치를 한껏 살리고 있다. 과연 만천명월주인옹다운 운치로 격조를 높인다. 게다가 "상국의 집에 맑은 달 바퀴 길이 매어 놓으리"라니, 채제공을 아끼는 정조의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도 보여준다.

 

한가위 달이 하 좋아도 즐기지 못하면 그림의 달. 달마중을 나서야 휘영청 훤칠한 금빛 하사를 누릴 것이다. 무릇 둥글고 환한 것을 기리면 마음도 그와 같아지려니.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정수자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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