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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정조의 무사들은 바람에 머리 빗고 비에 몸 씻었다
김우영 언론인
2021-09-25 10:43:03최종 업데이트 : 2021-09-25 10:42:42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상단표출이미지


 

며칠 전 가을비를 맞았다. 낮에 사람들을 만나느라고 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아 차라리 운동을 하자며 나선 길이었다.

 

간편하게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나섰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무심히 나선 터라 우산은 준비하지 못했다.

 

30분 쯤 걸었을까, 과연 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몸에서 나던 열은 차가운 가을비에 금세 식었다. 여름이 지루하게 머물다 간지 얼마 안됐다고 해도, 아직까지 낮의 햇살은 따갑다고 해도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었다.

 

가을 밤비에 흠뻑 젖은 몸은 곧 추위를 느꼈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와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면서 문득 '즐풍목우(櫛風沐雨)'란 말이 떠올랐다. 빗 즐(櫛), 바람 풍(風), 머리 감을 목(沐), 비 우(雨)다.

 

직역을 하면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에 몸을 씻는다'는 뜻이다.

 

중국 우임금은 물난리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치수사업을 한 성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큰 강 300곳과 지류 3000곳의 치수 사업을 완수했다. 직접 삼태기를 들고 치수 공사를 하느라 13년간 집을 떠나 있으면서 세 차례나 집 근처를 지났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장자는 당시 우임금의 몰골을 "장딴지에는 솜털도 나지 않았고, 정강이에는 굵은 털이 닳아 없어졌다(비무발腓無胈 경무모脛無毛)"고 표현했다. 그리고는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고 세찬 바람으로 머리를 빗었다(목심우沐甚雨, 즐질풍櫛疾風)"고 했다. 바람에 머리칼이 제멋대로 흩날리는 것도, 쏟아지는 비에 몸이 젖는 것도 마다않고 공사에 헌신하느라 정강이의 굵은 털도 닳아 없어졌다는 것이다. 백성들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치수사업에 매진했던 것이다.

 

어렸을 때 장난삼아 즐풍목우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비 오는 여름날 처마 아래서 비누칠을 한 다음 마당에 나가 비눗물을 씻어 내리던 짓은 고등학교 때 캠핑을 가서도, 군대에서 인적 없는 산중으로 파견 나갔을 때도 비 오는 날마다 이어졌다. 지금도 기회가 된다면 목우(沐雨)와 함께 바람 부는 벌판에서 즐풍(櫛風)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다.

 

정조대왕도 즐풍목우라는 말을 사용했다.

 

'무예도보통지'의 서문에 "즐풍목우(櫛風沐雨)-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목욕하라" 즉, 자신이 만든 조선 최강의 군대 장용영 군사들의 훈련을 강하게 시키라는 지시였다.

 

장용영은 초창기엔 소규모로 편성됐지만 1793년 장용 내·외영제를 실시하면서 인원이 대폭 늘어나 5200여 명에 달했다. 당대 최고의 무인들이 모인 최정예 무사집단이었다. 따라서 부대 위상이 높았고 처우도 기존 군영보다 훨씬 좋았기에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무예24기 시범단원들의 교전 장면/사진 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무예24기 시범단원들의 교전 장면/사진 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하지만 최정예부대답게 혹독한 훈련을 해야 했고 군령도 엄했다.

 

무예24기 전문가 최형국 박사는 오래전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장용영에 뽑힌 병사들은 오직 실력으로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장용영에는 정조의 새 세상에 대한 의지와 정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장용영의 병사들은 기존의 오군영 병사들이 받았던 것보다 몇 배나 더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특수부대의 위용을 갖춰나갔다"고 밝혔다.

 

최박사는 장용영 병사들이 익혔던 기본 무예는 원기(元技)라 해 화포, 조총, 활쏘기였으며 이외에 별기(別技)인 창검 무예를 따로 익혔다고 했다. 또 장용영의 정예 기병인 선기대는 좌초와 우초로 나눠 좌초는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며 적을 기만하는 마상재를 훈련하고, 우초는 별기인 기창·마상쌍검·마상월도 등 실전에서 적의 예봉을 꺾는 기예를 훈련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훈련의 대부분은 정조의 어명으로 편찬된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정조대왕이 무예도보통지 서문에서 '즐풍목우(櫛風沐雨)'라고 쓴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소싯적'에 놀이로 즐겼던 즐풍목우와는 감히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아무튼 지금도 바람에 머리 빗고 비에 몸 씻으며 무예24기를 수련하는 무사들이 수원에 있다. 수원시립 무예24기시범단 단원들이 그들이다. 그들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진검 한 자루 들고 그들과 어울려 짚단과 대나무도 베고 본국검과 조선세법도 한바탕 펼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즐풍목우하며 10년 수련은 해야겠지. 응? 그런데 그때쯤이면 내 나이가...

 

포기하자.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김우영 프로필 및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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