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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독도의 날’에 더 생각나는 사운 이종학 선생
김우영 언론인
2021-10-25 14:41:47최종 업데이트 : 2021-10-28 11:25:59 작성자 :   e수원뉴스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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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 1927~2002)선생은 서지학자이자 자료수집가로 독도와 이순신장군, 일본침략사, 항일 운동사 자료수집에 평생을 바친 수원의 인물이다. 현재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으며, 수원광교박물관엔 선생이 기증한 소중한 자료를 모아둔 '사운실(史芸室)'이 있다.

 

<사진>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0년 가을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 선생 화성 특별 자료전'에서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운 선생 (사진=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용창 이사)<사진>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0년 가을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 선생 화성 특별 자료전'에서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운 선생 (사진=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용창 이사)

 

1986년에 간행된 첫 번째 '수원시사' 편찬 과정에서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편찬위원으로 참여했고 나는 집필위원으로서 문화예술과 행정 일부를 썼다. 아주 강직하고 타협을 모르는 꼬장꼬장한 사람이라는 게 첫인상이었다.

 

나도 살가운 사람은 아니어서 그때는 별로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

 

1990년 수원에 본사가 있는 일간신문사에 들어가 문화부 기자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선생께서 신문사로 나를 찾아 오셨다.

 

선생이 내민 서류봉투에는 일제 강점기 이 지역 독립운동 활동 관련 자료들이 들어 있었고 이를 다룬 기사는 1면 메인을 차지했다. 그 뒤로도 가끔 씩 새로 발견한 자료가 있으면 신문사를 방문하거나 밖으로 불러냈다.

 

장소는 주로 수원여고 앞에 있는 고등반점이란 중국음식점이었다. 요리 몇 가지를 시켜놓고 자료에 대한 설명을 해주곤 했는데 그 자료에 의거해 쓴 기사들은 대부분 1면이나 사회면 톱을 차지하곤 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들이었다. 내용은 주로 일제의 탄압과 그에 맞선 독립 운동가들의 활동 등이었다.

 

한번은 나를 따로 불러 두툼한 서류봉투를 건넸다. 2001년 3월 1일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개최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 관련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전시 팸플릿부터 전시회를 극찬한 북한 '로동신문'의 기사 스크랩, 전시회 사진 등이었다.

 

사실 나는 그 후에 방영된 KBS1 TV 일요스페셜 '아주 특별한 만남-남북 최초 역사자료 공동전시회'를 통해 선생의 방북소식을 알고 있었다.


<사진> 2001년 3월 1일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개최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 왼쪽에서 두 번째 안경 쓴 이가 이종학 선생이다.(사진=독도박물관)

<사진> 2001년 3월 1일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개최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 왼쪽에서 두 번째 안경 쓴 이가 이종학 선생이다.(사진=독도박물관)
 

당시 방송의 내용은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공동 역사자료 전시회가 열렸다는 것. 이종학 사운연구소 소장이 평생 동안 모은 자료를 토대로 준비된 전시회라는 것. 북일 수교회담을 앞두고 일제 40년의 한반도 강제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밝히는 남북의 공동대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의 파장이 불거진 가운데 남북 역사학자들이 최초로 일본의 역사왜곡 행위를 규탄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고 했다.

 

남북 역사자료 공동 전시회는 일본의 조선강점이 불법임을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이 처음으로 하나가 돼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밝힌 남북의 공동대응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전시한 자료들은 독도박물관이 최초로 개최한 특별기획전 자료로 국민들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선생은 생전에 '독도 수호의 사명은 남북이 따로 없으므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소신을 강조했다.

 

선생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북 역사자료 공동 전시회 지료를 건네주던 자리에서는 독한 고량주를 두어 잔 마셨다. 그때 들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북한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이 증거를 토대로 해서 북이라도 우리가 못 받았던 사과와 배상도 제대로 받으라고요. 독도 수호의 사명은 남북이 따로 없으므로 힘을 합쳐야 해요"

 

선생은 '독도는 우리 땅'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독도가 대한민국 고유 영토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를 수집했다. 독도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자비를 들여 일본 도서관과 고문헌 수집상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수원광교박물관 사운실에는 이렇게 모은 귀중한 역사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선생 사후 유가족들이 고서, 고문서, 관습조사보고서, 사진엽서, 서화 등 2만여 점의 방대한 사료를 수원시에 기증한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라고 표기된 '삼국접양지도' 등 독도 관련 자료와 함께 이순신장군의 '이충무공전서'와 수원화성, 간도, 금강산 등 귀중한 자료도 있다. 독도 관련 사료 중 일부는 1997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울릉군)에 기증했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이종학선생의 자료 등 수많은 기록은 독도가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일방적으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바꾸고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이후 지금까지 근거 없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2005년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했다. 한국 정부는 같은 해 3월 17일 일반인에게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했다.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2008년 독도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성사되진 않고 있다. 지난 18일엔 울릉군을 지역구로 하는 김병욱 국회의원이 "독도는 생태적, 경제적, 지정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일본이 불법 편입을 시도한 국권 침탈과 독립의 역사적 의미도 갖고 있다"며 10월 25일을 독도의 날로 지정하는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독도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독도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 주장에 찬성한다. 이는 대한민국 주권 수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 세상의 사운 선생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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