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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눈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정수자 시조시인
2022-01-12 10:07:00최종 업데이트 : 2022-01-12 10:07:00 작성자 :   e수원뉴스

인문칼럼

 

이번 겨울은 눈이 적다. 푸근히 쌓인 적이 없다. 눈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설국 풍경을 만들 만큼은 아니었던 게다. 이웃지역 강원도에 내린 폭설에 비하면 중부지방은 눈이 아주 적은 겨울이다.

 

농촌에서는 눈이 적으면 가뭄을 걱정한다. 바짝 마른 나무들에 산불 염려도 커진다. 예전에는 보리밭에 눈이 푸근히 쌓여야 풍년이 든다고들 여겼다. 어른들이 곰방대를 물고 서서 펄펄 눈이 내려쌓이는 들판을 보며 풍년 빌던 장면이 스친다. 아이들과 개들이 신나서 뛰어다니고 여기저기 눈 치우는 소리가 들리던 시골의 눈 내리는 날은 푸근했다. 음력이 표시된 달력 속의 정겨운 풍경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없다. 눈 치우기가 고역이라 반기지도 않는다. 폭설이라도 내리면 도로가 엉망진창이 되니 도시인들에게는 눈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런 불청객이라도 눈이 내리는 순간만큼은 뛰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보기만 할 때는 눈이 반가운 손님이다. 막상 길을 나서면 뒤엉킨 차량에 공해로 더러워진 눈이 질척거리면 불평이 쏟아진다. 행궁광장이며 외진 공원 같은 곳에서나 깨끗이 쌓인 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눈 내리는 모습은 낭만적이다. 우리를 들뜨게 하는 힘이 눈에게는 더 있다. 그래서 눈 치우기는 귀찮아도 순간의 설렘을 카톡, 카톡 나누곤 할 것이다. 전처럼 쉬 만날 수는 없지만 문득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라도 주고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기만 하던 첫사랑 같은 먼 이름도 한번쯤은 불러본다. 그런 설렘을 불러내는 눈이 적어서인지,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익숙해서인지, 그리움 같은 감정마저 자꾸 줄어드는 것 같다.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것 중에 그리움이 있다. 예술이나 일상에서 너무 많이 써서 낡은 말이 된 느낌이지만 그리움은 아직 유효한 정서다. 눈을 기다리는 것도, 누군가 만나고 싶은 것도, 지상에 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모두 그리움에서 비롯되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눈이 오는 것도 그리운 사람 때문이라고 했다. 백석의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현 맞춤법대로 '힌'만 '흰'으로 표기함)를 눈 오는 날에 읽으면 눈 속으로 마구 내닫고 싶어진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와 고조곤히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일상에 지친 눈을 새로 뜨게 해주는 시인의 해석이 마음에 묻어둔 우리네 그리움까지 빛나게 닦아준다. 시를 읽자니 언제쯤 눈이 푹푹 내릴지 설레게 된다. 잠시나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눈의 마술에 어딘가 접어둔 그리움들도 펼쳐볼 수 있기를.

 

시는 그렇게 우리 안에 묻어둔 서정을 일깨운다. 공감과 위안과 치유를 건넨다. 각박한 방역 속에 무뎌진 감각과 정서도 흔들어준다. 새로운 시선에 활짝 피는 개안(開眼)도 즐거우니, 가끔씩이나마 시를 좀 읽어야겠다.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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