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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수원에는 ‘시림(詩林)동인회’가 있었다
김우영 언론인
2022-07-04 09:36:36최종 업데이트 : 2022-07-04 09:35:48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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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지만 워낙 오랜 가뭄이 계속됐기 때문인지 싫지 않다.

 

우산을 챙기고 비에 젖어도 괜찮을 만한 차림을 하고 작업실을 나섰다.

 

 

비가 내리는 날 가장 궁금한 곳은 수원천이다. 물이 산책로까지 차오르는 지도 궁금하지만 유속이 빨라져서 겨우내 하천 바닥에 쌓인 퇴적물을 쓸고 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수위가 적당하면 하천길을 따라 산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수원천 산책은 틀렸다. 꽤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넘쳐 산책로를 덮치며 흘러내려가고 있다.

 

산책로를 덮고 흘러가는 물

산책로를 덮고 흘러가는 물

 

팔달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문자가 왔다. 평택에 사는 김미구 시인이다. 아, 이런 부인상을 당했단다. 그것도 전남 고흥에서 장인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부인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을까?

 

 

만사를 제치고 빈소가 있는 안산으로 달려갔다. 아직 아무도 오지 많은 상청에는 김시인과 아들, 딸이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하, 이런 일이 어디 있소. 하아..." 그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한 시간 남짓 앉아 있다가 "이따 저녁엔 많은 사람들이 올 터이니 지금 좀 쉬시오"라고 말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픔과 당황스러움이 나에게도 전이됐는지 수원행이 아니라 서울방면으로 가는 전철을 잘못타서 금정역에서 갈아타고 수원으로 왔다.

 

 

몇몇 사람들, 옛 시림(詩林) 동인들에게 연락을 했다. 오승철 시인은 제주도에 있고, 최영철 시인은 부산에, 이정환·박기섭 시인은 대구에 있으니 그만두고 수도권에 사는 김승종 시인과 문창갑 시인에게 연락을 했다. 요즘 연락이 끊어진 문시인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김시인과 통화를 해서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안동출신의 김승종 시인은 대학교 강단에 있다가 지난 3월 정년을 맞아 퇴직했다. 최근엔 몇 십 년 만에 시집도 펴내 반갑게 읽은 적도 있다.

 

아무튼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시림동인 셋이 모였으니 자연스레 화제는 시가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치기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소주 한잔에 김승종 시인의 얼굴이 붉게 익어가는 것은 45년 전이나 똑같았다.

 

"스무살 때 전남 고흥군 소록도가 지척인 김미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시간 김미구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내 집에 있었다"(김우영)

 

"성남에 살던 최봉섭과 고흥 김미구 집에 갔다. 미구는 서울엔가 가고 없었는데 사촌동생이 술을 사줬고 잠도 재워줬다. 다음 날엔 어머니가 차려주신 정이 그득한 아침상도 받았다"(김승종)

 

이런 이야기도 나눴다. 이처럼 당시 시림동인들은 서로 찾아다니며 교유(交遊)했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었고 집 전화가 없는 집도 많았던 이유도 있다.

 

나도 제주도까지 전국을 누비며 동인들과 만났다. 밤새워가며 술을 마셨고 문학을 이야기했다.

 

 

시림동인은 1975년 수원에서 출범한 문학모임인데 1976년부터 전국 규모 동인회로 확대됐다. 당시 '학원'이나 '학생중앙'을 통해 시를 발표하던 이들이 주축이었다. 당시 시 좀 쓴다는 전국의 문청들 사이에 "거기 사는 000 알아?"할 정도로 제법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초기 동인은 나를 비롯한 수원의 문학도들이었지만 이후 재편 과정을 거쳐 김우영(수원), 이정환·박기섭(대구), 최영철·조성래(부산), 김미구(광주), 오승철(제주), 문창갑(서울), 김승종(안동), 최봉섭(대전), 김기홍·김해화(순천) 등이 참여했다. 이밖에도 몇몇 사람들이 동인으로 활동했지만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다.

 

동인 가운데 이정환·박기섭·오승철 시인은 한국 시조문학계를 대표하는 중진시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이정환시인은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영철·조성래·김미구·문창갑·김승종·최봉섭·김기홍·김해화 시인은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는데 지금은 이 세상에 없거나 연락이 끊어진 이들도 여럿 된다.

 

 

지난 1989년엔 '70년대 학생문단의 주역들, 「詩林」 그 후 10년 그들의 현주소!'라는 부제의 '그대 걸어갈 광야는 멀다'라는 동인지를 다시 펴냈다. 다섯 번째 동인지인 셈이다. 당시 열음사에서 일하고 있던 최영철 시인의 노력으로 10년 만에 다시 동인지를 발간하며 부활하는 듯 했으나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긴 휴면상태다.

 

1989년 10년 만에 다시 발간된 시림동인지 '그대 걸어갈 광야는 멀다'

<사진> 1989년 10년 만에 다시 발간된 시림동인지 '그대 걸어갈 광야는 멀다'

 

 

그나마 2019년 수원에서 한차례 번개 모임을 가졌다. 멀리 제주에서 오승철 시인이 날아왔고 부산에서 최영철 시인과 그의 부인인 소설가 조명숙 씨가 왔다. 서울에서 문창갑 시인과 김승종 시인이, 전남 고흥에 살다가 평택으로 이주해 온 김미구 시인도 참석했다.

 

제주도에서 다시 모임을 갖기로 하고 날짜까지 정했다. 비행기 탑승권도 예약했으나 태풍으로 불발됐다.

 

 

동인들의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암 투병, 시력 약화, 허리 부상 등 안 좋은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행방을 모르는 이도 있다. 걱정이다. 수원이 됐건 제주도가 됐건 다시 한 번 뭉쳐야 할 텐데. 장례식장에서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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