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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여름날 광교산 기슭에서 왕유의 시를 읽다
김우영 언론인
2022-08-01 17:38:06최종 업데이트 : 2022-08-01 17:37:37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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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열대야가 와서 잠들기도 어렵다. 거의 벗다시피 앉아 원고를 쓰면서도 더위를 이기지 못해 하루에도 두 세 차례 샤워를 해야 한다.

 

에어컨을 켜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그러고 싶다. 극한의 더위가 온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지난해엔 도저히 잠을 못 이루던 끝에 할 수 없이 서너 차례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그것도 한 두 시간 정도씩만.

 

냉방병까지는 아니지만 세월이 갈수록 장시간 에어컨 바람 쐬는 것이 싫다. 그래서 선풍기를 튼다. 잠을 잘 때 좌우로 회전시켜 놓으면 질식의 위험도 없을 뿐 더러 모기를 쫓아내는 효과도 있다.

 

 

 

며칠 전 광교산 아래 광교저수지 둘레길 산책을 했다. 내친 김에 13번 버스 종점 위 사방댐까지 갔다.

 

확실히 시내보다는 시원하다. 아마도 3~4°C 정도는 더 낮을 것이다. 사방댐 바로 아래는 숲속 쉼터가 있다.

 

 

광교산 사방댐 아래 숲속 쉼터(사진/수원시포토뱅크)

광교산 사방댐 아래 숲속 쉼터(사진/수원시포토뱅크)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다가 음료수를 마시려고 가방을 뒤적이는데 책 한권이 손에 잡힌다.

 

'왕유(王維)시선'이다. 1984년 홍콩에서 출판된 책인데 내가 익히지 못한 현재의 한자인 간체자(簡體字)가 아니라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써 오던 방식 그대로의 한자인 번체자(繁體字)다. 제대로 된 한문 공부를 해 본적이 없지만 자전과 시간만 있으면 그런대로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한동안 가지고 다녔다.

 

이 책은 '조선의 협객 백동수' 저자인 김영호 씨가 선물한 것이다. 사실은 선물이라기보다는 나의 '깊은 관심'에 어쩔 수 없이 넘어왔다고 해야 한다. '왕유시선'과 함께 '이상은시선'도 함께 선물 받았으나 이상은 시선은 벌써 손을 탔다.

 

 

 

왕유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이자, 화가다. '시성(詩聖)' 두보, '시선(詩仙)' 이백과 견주어 '시불(詩佛)'이라고 불린다. 불심(佛心)이 깊어 왕마힐(王摩詰)이라고까지 불렸다.

 

 

 

나는 왕유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모두 좋지만 그 가운데서도 최근 내 마음에 와 닿는 시는 '과향적사(過香積寺-향적사를 찾아서)'다.

 

 

 

不知香積寺(부지향적사)​/數里入雲峯(수리입운봉)​/古木無人徑(고목무인경)/深山何處鐘(심산하처종)

 

​泉聲咽危石(천성열위석)​/日色冷靑松(일색냉청송)​/薄暮空潭曲(박모공담곡)/安禪制毒龍(안선제독룡)

 

 

 

향적사가 어디인지 몰라/구름 낀 봉우리 속으로 몇 리를 들어가니/고목은 우거지고 사람의 자취는 없는데/깊은 산 어디에선가 종소리 들린다

 

샘물은 가파른 바위에서 목 메인 소리를 내고/햇빛은 푸른 소나무에 비쳐 차갑다​/어스름 저녁 녘 텅 빈 못 굽이에서/조용히 참선하며 탐욕을 다스린다

 

 

광교산 계곡(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광교산 계곡(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여러 사람이 번역한 것을 내 방식대로 조금 바꿔보았다.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왕유와 함께 향적사를 찾아가는 길을 상상만 해도 쾌적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정화되는 듯하다.

 

향적사는 당나라 때 서안 남쪽 종남산 자오곡에 있었던 절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쩐지 이 시가 광교산 가는 길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 저녁 녘 텅 빈 못'은 사방댐이라고 해도 좋고 '가파른 바위에서 목 메인 소리'를 내는 물줄기는 산행도중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폭포들과 같다. '깊은 산 어디에선가' 들리는 종소리라... 고려시대에는 광교산에만 창성사를 비롯한 89개의 절집이 있었다고 하니 그 종소리의 여운도 아직도 골골마다 남아 있을 터.

 

 

광교산 버스 종점 위 사방댐(사진/수원시포토뱅크)

광교산 버스 종점 위 사방댐(사진/수원시포토뱅크)

 

광교산에서도 '과향적사'와 같은 시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전기한 것과 같은 풍경에 더해 고려시대의 국사인 진각국사가 입적했던 창성사, 신라말기의 대학자 최치원이 올랐다는 종대봉(鐘臺峰)과 즐겨 찾았다는 바위 문암(文巖)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각국사와 최치원은 모두 뛰어난 시인이었다.

 

진각국사는 임금의 스승인 '국사(國師)'란 칭호를 받을 정도의 이름 높은 고승이고 최치원은 불교 뿐 아니라 도교와 유학에도 통달해 '신선'이 됐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왕유시선'에 있는 '과향적사'를 읽다가 진각국사와 최지원, 왕유가 한 시대에 태어나 광교산에서 만났다면 어떤 시를 남겼을까라는 상상도 했다.

 

 

 

덕분에 잠시이긴 했지만 무더위는 잊을 수 있었다.


저자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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