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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도심 속 사찰, 수원사
도심 속에서 마음 따스해지는 경험을 만들어보다
2024-03-05 10:40:43최종 업데이트 : 2024-03-05 10:40:39 작성자 : 시민기자   송은교

도심 속에 위치한 특별한 사찰, 수원사입니다.

도심 속에 위치한 특별한 사찰, 수원사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눈이 녹으며 따스한 봄이 찾아오는 요즘, 집 밖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다가오는 봄, 수원화성 근처에는 나 자신에게 빠져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버드나무가 가득한 수원천을 옆에 두고 잔잔한 풍경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도심 속 사찰, '수원사'다.

수원사는 1920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 소속의 작은 절이다. 당시 용주사의 주지스님이었던 강대련 스님이 수원 사람들에게 불교를 포교하고자 이곳에 법당과 관음전, 요사(스님들의 기숙사)를 신축하게 되었다. 이때 지어졌던 법당이 지금의 극락대원전이며, 관음전은 정토수행관이다.  처음 지어졌을 당시부터 이곳은 '수원불교포교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으며, 수원 및 인근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포교 활동을 펼쳤다. 그래서 수원사는 조계사, 강릉포교당과 함께 전국 3대 포교당 중 하나가 되었다. 1957년에는 이곳의 이름이 '화광사(華光寺)'로 불리기도 했지만, 현재는 다시 '수원사'로 불리고 있는 중이다.

수원사의 일주문에는 '수원사' 편액과 함께 뒤편에는 1920년 당대 명필이었던 죽농 안순환이 쓴 '수원불교포교소'가 적혀 있다. 죽농 안순환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령숙수로서 1909년에 '명월관'이라는 조선 궁중 요릿집을 열었던 사람이자 서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강대련 스님의 부탁으로 당대 명필이었던 죽농 안순환이 작성한 '수원불교포교소' 편액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강대련 스님의 부탁으로 당대 명필이었던 죽농 안순환이 작성한 '수원불교포교소' 편액


수원사가 도심 속에 위치하고 있는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억압하고자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러한 법은 1895년에 들어서서 풀리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도심 속에 사찰을 짓고자 했고, 그렇게 최초로 지어진 도심 속 사찰이 바로 조계사다. 이와 함께 수원사도 도심 속에서 불교의 교리를 알리고자 지어지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사찰은 신도들이 사찰에 방문해 기도를 드린다면, 포교사는 스님이 직접 도시 속으로 들어가서 시민들과 함께 활동하며 불교 교리를 전달하는 곳이다. 특히, 이러한 포교사는 근대에 들어서서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일본 불교가 들어오게 되었고, 우리의 불교 교리를 전달하고자 조금씩 포교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포교사이기에 더욱 사람들에게 불교 정신을 쉽게 전달해야 했고, 그래서 수원사에서는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 부처'와 중생들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수원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정토수행관은 옛 관음전으로서 관세음보살을 독대할 수 있는 곳이다.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도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도록 외관에 불화로 그려 넣은 것도 볼 수 있다.

옛 관음전이었던 현재의 정토수행관에서는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옛 관음전이었던 현재의 정토수행관에서는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정토수행관의 왼쪽 벽면에는 또 다른 불화를 만나볼 수 있다. 오른쪽 가장 끝에는 아미타 부처가 다스리는 극락세계와 함께 아미타 부처의 오른편에는 관세음보살이, 왼편에는 대세지보살이 있으며, 왼쪽 가장 끝에는 지옥세계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이 함께 있다. 그들 사이에는 죽은 영혼을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인로왕보살이 함께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불화를 통해 정토수행관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음을 한 번 더 보여주고 있다.

극락세계에 있는 아미타 부처와 함께 인로왕보살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불화입니다.

극락세계에 있는 아미타 부처와 함께 인로왕보살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불화


정토수행관의 서쪽에는 수원사의 법당인 극락대원전이 있다. 이곳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전각으로 강원도에서 모셔온 목조 아미타불과 함께 1927년 이운해 온 관음불이 모셔져 있다. 또한 1964년 금용 일섭스님이 조성한 칠성, 독성, 산신 등 현대불화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극락대원전은 수원사의 창건 당시 지어진 곳이기에 100년 이상된 건축물이다. 근대 건축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건축물이다.
100년 이상된 수원사의 법당인 극락대원전

100년 이상된 수원사의 법당인 극락대원전


이렇게 수원사는 근대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는 곳이다. 이 외에도 사찰로서 독특한 하나의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바로 1929년 한국 최초 신여성인 정월 나혜석이 국내 최초로 이곳 수원사 뜰에서 서양화 개인전을 개최했었다. 그녀가 파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 수원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개인전은 동아일보에서 개최하고, 중외일보에서 후원했으며, 한국 최초 여성화가의 전람회였기에 의미 있는 전시회였다.

이러한 모습 외에 수원사 창건 이전에는 이곳에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당이 있었다. 흔히 서낭당에는 돌무더기와 신목인 당산나무가 함께 있다. 현재는 이 모습을 엿볼 수는 없지만, 서낭당의 당산나무 흔적을 보여주듯 수령이 300년 이상된 느티나무가 심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찰 창건 이전 이곳에 있던 서낭당의 흔적을 보여주는 당산나무

사찰 창건 이전 이곳에 있던 서낭당의 흔적을 보여주는 당산나무


포교사이기에 외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수원사 외부에서도 중생들을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구제해 주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부처님과 보살님을 상징하는 모습을 통해 누가 어떤 부처님이고 보살님인지 알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보관 속에 부처님이 함께 앉아 있으며, 정병을 들고 있기에, 수원사 건물 외벽 동상이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원사 외벽에서 수원 및 인근 지역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모습

수원사 외벽에서 수원 및 인근 지역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모습

수원사가 어떤 마음으로 도심 속에 사찰을 만들었을지 다음 극락대원전의 상량문(上樑文)에서 느껴볼 수 있다. 

[포교당을 크게 열으니 수원의 신(紳)의 표식으로 다시 기울어진다. 고운 마음의 옥축이 뒤집어져 날아오르고 나부끼니 꾀꼬리가 일어나 춤추는 것이 아니며, 바람은 의지함이 없이 완고하게 틈을 보내는구나. 어긋난 호구의 길을 잘 부르겠으니, 가르치는 자는 그 희롱함이 끝이 없고 가엾은 가난한 자는 스스로가 반대로 빨리 벗어날 것이다.]
도심 속 사찰 수원사에서 나 자신에 집중하고 깨달음을 얻어볼 수 있습니다.

행복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도심 속 사찰 수원사
 

수원사는 수원불교포교소로서 특히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다. 1박 2일형으로 체험형과 휴식형의 템플스테이를 제공하고 있다. 체험형은 걷기 명상, 차담, 발우공양 등을 통해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는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으며, 휴식형은 1박 2일 머물면서 자율적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를 위한 행복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템플스테이 홈페이지(www.templestay.com)'에서 수원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확인한 후 신청해 보길 추천한다. (템플스테이 신청 바로가기)

송은교님의 네임카드

수원사, 포교사,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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