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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관광 코스 수정 필요해...융건릉 반드시 포함해야
융건릉은 수원화성 축성 배경과 정조의 개인사까지 이해할 수 있는 코스
2020-08-25 10:23:31최종 업데이트 : 2020-08-27 08:58:18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코로나19 확산이 무섭다. 일상이 뒤틀리고 좋은 사람들과 여행도 가지 못한다. 대신 비대면의 생활 방식이 자리했다. 일정한 공간에 모일 수도 없으니 교육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하고, 음악회와 박물관 관람도 마찬가지다. 여행도 '랜선 여행'이라고 해서 집에서 인터넷에서 즐기고 있다.

시민기자도 지방자치 단체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진으로 보는 여행을 한다. 각 지역의 유명 관광지가 잘 정리되어 있고, 설명까지 곁들여 있어서 그럭저럭 볼만하다. 그러다가 수원은 어떤 정보가 있나 들어가 본다. 우리 시의 관광 안내는 코스가 다양하다. 당일 코스는 물론 1박2일 코스, 수원 100배 즐기기 2박3일의 일정별 코스가 있다. 여기에 계절 꽃 코스, 수원화성 코스, 도보여행 코스, 전통시장 코스 등 주제별, 계절별, 장소별로 코스를 만들어 놓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볼거리뿐만 아니라, 즐길 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다.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며 즐기기 때문에 조상에 대한 감동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다.
 
그런데 수원 관광 코스에는 융건릉이 없다. 당일 코스는 물론 1박2일 코스, 수원 100배 즐기기 2박3일 코스에도 융건릉은 보이지 않는다. 2박3일 코스에서는 3일 차에 수원 인근 지역에 있는 한국민속촌, 삼성이노베이션 등까지 방문하는데, 융건릉은 없다. 수원 시티투어 관광에는 수원, 융건릉 코스가 있어 융건릉과 용주사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중단된 상태다.
평생 백성을 생각했던 애민 군주 정도대왕 동상

평생 백성을 생각했던 애민 군주 정조대왕 동상

이에 대해 수원시 관광과 업무 담당 주무관은 "정조 문화권에 융건릉은 중요한 영역이라며, 관광 코스에 포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시티투어는 "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저상 버스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관계로 현재 운영이 중단된 상태며, 지난해 주말을 이용해 융건릉을 경유하는 코스를 운행한 결과 거리 때문에 이용률이 저조한 편이었다. 이런 상황도 고려해 코스를 개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수원은 정조 이산의 한과 꿈이 서린 곳이다. 정조의 한은 현륭원을 낳았고, 13차례의 능행을 낳았고, 지지대 고개를 낳았고, 행궁을 낳았다. 정조의 꿈은 화성을 낳았고, 수원 신 읍치를 낳았고, 장용영을 낳았다. 김남일 ≪수원을 걷는 것, 화성을 걷는 것이다≫

수원시와 화성, 그리고 융건릉의 역사적 탄생을 알 수 있는 글이다. 이 글에서 보듯이 정조는 현륭원(융건릉)을 조성하고, 화성을 건설했다. 그리고 융건릉이 있는 화산 지역의 백성들을 위해 신도시 수원을 건설했다. 그 후 아버지 능행차(정확히는 원행)를 위해 화성 행궁에 머물며, 백성들의 삶을 살피곤 했다. 수원시와 화성, 그리고 융건릉은 같은 철학이 바탕이 되고, 이 철학의 실현이 만들어낸 유산이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등극하며, 처음으로 한 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다. 할아버지 눈치를 보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는데, 14년 만에 아버지를 입밖에 올렸다. 이는 단순히 아버지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정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죄인이라고 하는 노론벽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즉 정조의 말은 당시 정치 세력의 중심에 있었던 노론과의 대결을 의미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어느 정도 노론의 책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융릉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융릉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아버지 시호를 장헌으로 추존한다. 할아버지 영조가 죽은 뒤 바로 내린 시호 사도를 버렸다. 1789년(정조 13)에는 아버지의 무덤인 영우원을 수백 년간 수원도호부가 있던 화산(花山)으로 옮겨 '융성함을 드러낸다.'라는 의미의 현륭원(顯隆園)이라 고쳐 부른다. 당시 현륭원은 왕릉에만 쓸 수 있었던 난간석이 등이 없었지만, 사실상 왕릉에 버금가게 꾸며진다. 
 
정조는 천천히 자신이 꿈꾸는 조선을 만들어간다. 규장각을 건립하고 서얼 출신도 등용한다. 특히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사는 것에 관심을 둔다. 그래서 실학파인 정약용과 함께 상공업의 대중화에도 힘쓴다. 그러나 조선 개국 이후 300여 년 동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양반들이 걸림돌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예 새로운 곳에 도시를 건설하고자 한다. 그것이 수원이다. 정약용이 최첨단 기계들을 만들고, 채제공의 추진으로 화성을 완성한다.
 
정조가 묘소를 쓴 화산은 원래 관아 자리였다. 그래서 수원 도읍을 새 장소인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옮기도록 하였다. 수원부로 부르던 고을 명칭은 화성(華城)으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 수원부를 옮기고 정조 17년(1793)부터 화성 축조가 본격적으로 준비되어 이듬해 정월부터 시작해 2년 반 만인 1796년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정조에게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것도 죄인의 신분으로 일찍 떠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정조는 현륭원을 조성한 한 후 매년 1차례 이상 원행하여 친제를 올렸다. 그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원행을 자주 했다. 그 과정에서 머무를 행궁이 필요했고, 성곽이 건설됐다. 그리고 백성에 대한 애민 정신으로 수원시가 조성된다. 정조 개혁의 원대한 꿈은 융건릉과 화성, 그리고 수원이었다.
정조가 꿈꿨던 새로운 조선의 중심 화성

정조가 꿈꿨던 새로운 조선의 중심 화성

정자동에 사는 위문덕(64, 가명)씨는 "수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화성"이라며 "화성을 조성한 정조대왕을 많이 생각한다."라고 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페이스북에서 "수원은 정조대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고장이고, 정조 개혁의 터전인 수원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분들에게 끊임없이 상상력을 나누어주는 화수분 같은 곳"라는 글을 남겼다.
 
수원 관광에서 화성은 곧 융건릉 답사와 함께 해야 한다. 거리도 멀지 않다. 수원시청에서 11.5㎞에 있고, 자동차로도 19분 걸린다. 수원에서 화성만 보고, 융건릉을 지나친다면 정조가 꿈꾸던 역사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융건릉 옆에 있는 용주사도 가 볼 만한 곳이다. 이곳은 정조 14년(1790년)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기고 묘소를 수호하고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세운 절이다. 절에 중심인 대웅보전 글씨를 정조대왕이 썼다. 절에 유일하게 홍살문 흔적이 있다. 정조가 이곳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왕릉에나 있는 홍살문이 있는 것이다.
 
수원 관광 코스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체험을 할 수 있어 즐거움이 더한다. 여기에 융건릉 답사까지 포함하면 당시 조정의 정치적 상황과 왕족의 개인사까지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어 금상첨화다.


 

화성, 융건릉, 정조대왕,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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