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음악계의 선구자, 홍난파 선생의 유적 답사
수원화성 팔달산, 전망 좋은 기슭에 ‘고향의 봄’ 노래비 세워져
2023-04-03 22:54:51최종 업데이트 : 2023-07-06 16:31:10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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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선생 '고향의 봄' 노래비 모습
춘사월 초, 봄 노래를 음미하면서 홍난파 선생의 '고향의 봄' 노래비를 답사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날 노래비 주위에는 개나리, 벚꽃이 예년에 비해 일찍 꽃망울을 터트려 화사하기까지 했다. 노래비 주위에 핀 화사한 개나리, 벚꽃들
행궁동 일대의 화성행궁이 보인다. 내려다 보이는 팔달문과 시장 상권 일대
1968년 '수원노래비건립위원회(위원장 박용석외 8명)'가 노래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 후 1974년 7월 경기도지사 조병규, 수원시장 유기천, 유신학원 이사장 박창원 등의 도움으로 예총수원지부와 새싹회에서 보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난파 선생은 1897년 4월 10일 태어났다. 그는 3세 때 상경해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거주하면서 새문안교회에 출석했고, 어릴 적부터 교회음악을 비롯한 서양음악에 입문할 수 있었다. 소년 시절에는 집안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사립 영신소학교에 다녔다.
14살 되던 1910년 9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 중학부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1914년 3월 졸업했다. 그 사이 1912년부터는 근대 이후에 설립된 최초의 전문음악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 성악과에 입학해 1913년 4월 2회로 졸업했다. 그리고 1913년 다시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부 기악과에 입학해 1년 동안 바이올린을 배웠고, 1914년 졸업 후 이듬해인 1915년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부 교사에 임용되었다. 노래비 아래의 아름다운 수원화성 아치형 성곽과 도로
그는 이처럼 대한민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이다. 그의 대표적 동요는 개구리, 고향의 봄, 무지개, 옥수수 하모니카, 작은 별, 퐁당퐁당, 햇볕은 쨍쨍이 있다. 가곡으로는 금강에 살으리랏다, 봄처녀, 봉선화, 성불사의 밤 등이 있다. 이는 우리세대가 어릴때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주로 불렀던 곡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며 잘 부를 수 있는 유명한 곡이다. 그의 대표적인 동요 '고향의 봄' 노래비에 새겨진 악보는 다음과 같다. 노래비에 새겨진 '고향의 봄' 악보
그는 "어려서 학교 다닐 때 불렀던 노래가 거의 홍난파 곡이기 때문에 음악 시간외에도 소풍, 각종 모임 등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만한 음악가가 어디 있나. 그러기에 이곳 좋은 위치에 그를 기리고자 노래비를 세운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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