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언제나 넉넉하게 품어 주는 팔달산
역사와 문화가 있는 시민공원
2023-02-05 10:20:47최종 업데이트 : 2023-07-07 14:16:57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팔달산 중턱에 있는 수원시민회관. 시민의 문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했다.

팔달산 중턱에 있는 수원시민회관. 시민의 문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했다.
 

살다 보면 마음이 심란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집을 나서서 걷는다. 나름대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방식이다. 그런데 가슴에 어둠이 썰물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이때는 걸어도 걸어도 풀리지 않는다. 결국 어느새 팔달산까지 오른다. 꾸역꾸역 올라 정상에 서면 수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사이는 소음이 크지만, 여기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나 안 들린다. 멀리 산마루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 떼를 본다. 고요한 곳에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빈 가슴이 오히려 풍요로워진다. 


팔달산 깊은 곳에는 삼일독립기념탑이 있다.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은 수원 시민이 팔달산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팔달산 깊은 곳에는 삼일독립기념탑이 있다.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은 수원 시민이 팔달산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팔달산은 산이라기보다 공원 같은 곳이다. 높이라야 150m도 안 돼 고향에 언덕 같은 느낌이다. 몸이 찌뿌둥할 때도 아무 준비 없이 오를 수 있다. 등산화나 기타 장비도 필요 없다. 옛 경기도청 후문 길에서 서암문으로 서장대에 오르고 성신사 쪽을 지나 화서공원으로 나오면 등줄기에 땀도 적당히 난다. 

 팔달산은 오래전부터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다. 1980년에 수원시립중앙도서관이 산자락에 자리 잡았다. 도서관이 드문 시절에 수원 시민의 지식문화 및 정보의 중심지였다. 수원시민회관도 팔달산 중턱에 있다. 시민의 문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했다. 산 허리춤에는 회주도로를 내 주었다. 이 도로를 돌다 보면 수원청년회의소(JCI), 카페 등 많은 건물이 산자락에 기대고 있다. 


서장대. 팔달산에는 세계유산 수원화성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수원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서장대. 팔달산에는 세계유산 수원화성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수원 문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팔달산 깊은 곳에는 삼일독립기념탑이 있다. 1969년 3월 1일 삼일동지회에서 세웠다. 옆에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도 있다. 서장대 근처에는 효원의 종이 있다. 종 표면에는 수원화성과 화홍문을 새겼다. 근처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기념비도 보인다. 이런 시설물이 팔달산에 있다는 것은 수원 시민이 그만큼 팔달산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미로한정. 행궁 시설물로 팔달산 자락에 있다.

미로한정. 행궁 시설물로 팔달산 자락에 있다.


  팔달산은 수원 문화의 중심이다. 세계유산 수원화성이 팔달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서장대는 정상에 있고, 서남각루, 서포루, 서노대 등이 능선에 있다. 성신사, 내포사, 미로한정은 품에 있다. 행궁도 팔달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했다. 팔달산은 수원화성 축성 당시 가장 먼저 나서서 성곽에 필요한 돌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흔히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지석묘군도 있다. 이는 경기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한강 유역의 선사 문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다. 

  팔달산은 사계절 아름다운 공원이다. 봄이 되면 옛날 경기도청 후문 도로에서부터 회주도로 주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이 일대 벚꽃은 맑은 공기 덕분에 빛깔도 곱다. 여름철에는 키 큰 왕벚나무들이 잎을 키워 시원한 숲을 이룬다. 가을에도 멋지게 변신하는 것이 왕벚나무들이다. 산자락의 다양한 나무들과 함께 다채롭고 화려한 단풍 잔치를 한다. 가을철에 동북공심돈 외성 부근에는 억새밭도 일품이다. 겨울에는 어떤가. 눈 덮인 화성은 부드러운 굴곡이 더 도드라지게 멋을 낸다. 


지석묘군.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흔히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경기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한강 유역의 선사 문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다.

지석묘군.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흔히 고인돌이라고 부른다. 경기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한강 유역의 선사 문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다.


  팔달산은 아픈 역사가 있다.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이 팔달산을 훼손하려 했다. 안양에서 지지대고개를 뚫고 팔달산 뒤쪽을 지나는 경부철도 노선을 계획했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으로 들어오는 길은 정조 능행 길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조의 효심이 깃든 길은 왕실에서 중요하게 여겼지만, 백성들에게도 상징적 공간이었다. 수원 군민들은 이 길을 지키기 위해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철길은 군포에서 부곡을 지나 현재 수원역으로 확정됐다. 

  1980년대는 국회의원선거 때부터 팔달산 터널을 뚫어 교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이 나왔다. 1992년에는 대통령 선거 공약에 등장하고, 구체적인 예산 언급까지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예산에 비해 실효성이 없다는 평이었다. 시민들도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팔달산 터널 이야기는 1995년 지방선거에 다시 나타났다. 이때 시민들은 팔달산 터널 공사는 도시 미관 저해와 환경 문제만 유발한다는 후보를 선택했다. 결국 시민의 힘이 팔달산을 지켰다. 


수원화성 축성 당시 돌 뜨던 곳. 팔달산은 가장 먼저 나서서 성곽 축성에 필요한 돌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수원화성 축성 당시 돌 뜨던 곳. 팔달산은 가장 먼저 나서서 성곽 축성에 필요한 돌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팔달산은 도심에 있지만, 깊은 산의 모습도 담고 있다. 이름난 산에 가면 거기에 어울리는 소나무 숲이 있듯 팔달산 정상에도 오랜 시간을 버텨온 소나무 숲이 보인다. 산과 바위와 잘 어울려 있는 모습이 기품이 있다. 이런 곳에 언제든지 오를 수 있으니 복 받은 기분이다. 올 때마다 넉넉하게 품을 열어 준다. 곳곳에서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키 큰 소나무들이 역동적인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팔달산, 지석묘군, 채석장, 미로한정, 서장대, 도청, 벚꽃, 윤재열

연관 뉴스


추천 2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