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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
2015-10-27 16:00:38최종 업데이트 : 2015-10-27 16:00:3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호숫가에 오리들이 유유히 노닐고 있다가 어느 샌가 자맥질을 한다. 시선을 고정한 채 어디로 떠오를지 지켜보고 있으려니 재미있다. 물속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한번 잠수에 들어가면 한참을 잠영을 하다가 대부분 빈 입으로 나오지만, 가끔 물고기를 물고 나오기도 한다. 오리에게는 생존의 현장인 것 같다.

호수에는 작은 섬이 있다. 섬에는 민물 가마우지 떼가 새까맣게 앉아있고 이미 섬을 점령한지 오래 된 것 같다. 인공 섬의 나무들은 죽어가고 있다. 가마우지가 집단으로 서식하면서 나무는 고사하고, 버드나무는 죽어서 흰색으로 변하고 있다. 백로, 왜가리, 까치 등의 새는 섬을 떠났다. 인공 섬의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인간의 손이 닿아야 하는지, 자연 스스로의 치유능력에 맡겨야 하는지 진퇴양난이다.

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_1
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_1

인공 섬 뒤로는 야트막한 여기산이 있다. 해가 질 때면 호수에 비치는 여기산과 저녁노을이 호수를 붉게 물들인다. 옛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풍광을 서호낙조(西湖落照)라 하여 수원8경으로 불렀다. 잔잔한 호수에 잉어들이 뛰어 오르며 파도를 일으키면 붉게 물든 호수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만들어 지는 것 같다. 노을의 흔적은 섬과 나무들의 실루엣을 호수에 담으며 사위를 고요하게 감싼다.

제방 길은 호수와 서둔을 가른다. 제방의 안쪽은 갈대와 억새가 공존하며 호수의 맑은 기운을 온몸으로 보여주듯 춤을 추고 있고, 제방 밖의 서둔에서는 봄부터 키운 생명이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넓은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색 물결을 이루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에서 풍년가가 들리는 듯 하다. 

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_2
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_2

해마다 가을이 되면 이곳에서 울려 퍼지는 풍년가 소리가 200년 이상 지속되었는데, 농촌진흥청이 이전하면서 서둔의 생존은 위기에 빠졌다. 만석거와 대유둔, 축만제와 서둔은 정조 시대에 설치한 국영농장으로 조선후기 농업 생산기반의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대유둔을 성공적으로 만들면서 정조는 자신 있게 개혁정치를 펼칠 수 있었고, 이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려 했었다. 만석거 아래 대유둔은 도시화로 인해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정조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수원의 마지막 보루는 서둔이며, 오늘날에도 생산 활동을 하고 있는 살아있는 중요한 유적인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서둔은 지금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수원시민이 지켜내야 한다.

제방 길을 걸으면 큰 소나무 몇 그루와 만나게 된다. 큰 가지는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이지만 늘씬하고 멋스러움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세월을 초월한 듯 오늘도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 서둔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오고가는 길손을 반기고 서있다.

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_3
축만제 표석. 어떤 몰지각한 자가 '축'자 위에 십자가를 그려놓았다.

제방에는 축만제(祝萬堤)란 표석이 서있다. 화성 주변에서 가장 크게 축조된 축만제는 '천 년 만 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처럼 글씨가 호방하고 힘차 천년의 기상이 느껴진다. 축만제는 1799년(정조 23)에 축조된 것이니 이 표석도 그때 세워졌을 것이다. 축만제 표석은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니 소중하게 보호해야 한다. 축만제는 수원화성의 서쪽에 있는 호수라 서호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제방 끝에는 항미정(杭眉亭)이란 정자가 있다. 항미정은 1831년 화성유수 박기수가 건립한 것으로, '서호는 항주의 미목 같다'고 소동파가 읊은 시구에서 따다 지었다고 한다. 중국 서호의 절경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 축만제 였던 것이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존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항미정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고 수문에서 쏟아지는 물보라를 보면 시가 절로 나올 만하다.

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_4
축만제에서 깊어진 가을을 본다_4

제방을 돌아 호수 옆길을 걷고 있으니 가을이 다가와 있다. 길 한편으로는 드넓은 호수가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길 한편으로는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도열해 가을을 노래하는 듯 하다. 
가을나무는 온몸이 꽃으로 피어나 가을의 끝자락까지, 마지막 잎새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부르르 떨다가 떨어질 때까지 우리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는 가을의 한복판에 와있다. 가을을 즐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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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만제, 서호, 항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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