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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동 골목을 거닐면서 역사를 산책하다
여행 중에 진짜 만나야 할 풍경
2021-11-03 11:00:37최종 업데이트 : 2023-07-07 13:40:56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한데우물' 앞에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촬영지가 있다. 골목에서 작은 기와집이 오랜 시간을 지켜 왔다.

'한데우물' 앞에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촬영지가 있다. 골목에서 작은 기와집이 오랜 시간을 지켜 왔다

 
수원 여행은 화성에서 시작한다. 정조가 개혁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축성한 성곽이 시간의 흐름에서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곽을 둘러보는 것은 과거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성곽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축성 과정의 이야기도 마음을 울린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한 잔치는 마음에 애틋하게 내려앉는다.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도 감동이지만, 여행은 오래된 골목을 걸을 때 깊은 맛을 느낀다. 도시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오래 남는다. 화성 관람은 골목 여행과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신풍루로 나와 우측으로 돌면 오래된 골목이 나온다. 

이 골목에 들어서자 도시화의 물결이 멈췄다. 옛 풍경과 색깔이 그대로 남아 있다. 큰길은 차가 넘치고 빠르게 질주하는데,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졸고 있다. 골목에는 사람들이 느리게 걷는다. 골목은 막힌 듯하다가 다시 이어진다. 낡고 작은 집들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 바쁘게 갈 일이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은 모습에 몸과 마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골목길에 들어서니 볼거리가 많다. 지붕이 낮은 기와집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촬영지다. 1961년 작품이라니, 긴 세월을 견딘 또 하나의 유산이 되고 있다.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영화다. 골목에 버티고 있는 기와집이 제법 품격이 있다. 이런 집이었으니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영화가 탄생했다. 

 
소박하고 예쁜 가게들이 이어져 있어 두리번거리다 보면 천천히 걷게 된다.

소박하고 예쁜 가게들이 이어져 있어 두리번거리다 보면 천천히 걷게 된다


맞은 편 한데우물도 이야기가 있다.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할 때 이 우물을 이용했다고 전한다. 물이 있어야 사람들이 살 수 있듯이 이 우물을 중심으로 동네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우물터에서 정조대왕과 그의 어머니가 수원에 온다는 소문을 나누었다. 행궁의 이야기도 여기서 사로 건네 들으며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옆에 새로운 공간이 들어서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지금은 어수선하지만, 곧 '행궁동 여행자 라운지 및 문화체험 공간'이라는 새로운 명소가 생긴다. 어떤 공간이 우리를 설레게 할지 기대를 해 본다. 

이 길에 들어서면 화성사업소를 지나 행궁길 갤러리가 있다. 공간이 조그마해서 더욱 정감이 간다. 행궁길 미술관 체험관이 있고, 열린 문화 공간 후소도 기다린다. 거리에 공방도 정겹다. 작가들이 마음을 담아 만든 작품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기계로 대량 생산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작품들이다. 길거리에 조그만 공방들은 정조가 문화를 즐기고 사랑했던 마음을 잇고 있는 듯하다. 

공방 사이에 껴안은 가게들도 괜히 마음이 간다. 달보드레(빵과 차), 꽃피는 솜사탕, 화전놀이 떡공방, 단오(떡과 차), 날개, 열두알 우동집, 검정 고무신(달고나), 언니의 봄날 등 우리말 간판들이 정겹다. 길도 좁지만, 가게도 크지 않다. 이것들이 이 골목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 여기는 소박함이 멋이다. 

조선 시대에 여기서는 누가 살았을까. 양반도 있었을까. 수원부를 담당하는 관리의 가족들은 제법 큰 집에서 살았을 것이다. 화성행궁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들과 가족도 많이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정조의 행궁 행차에 대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다. 길을 걷다 보면 상상력의 날개가 펼쳐진다. 

 
이곳은 정조가 문화를 즐기고 사랑했던 마음을 잇고 있는 듯하다. 작은 갤러리와 공방들이 그것이다. 비록 작아 보이지만, 이런 소박함이 골목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이곳은 정조가 문화를 즐기고 사랑했던 마음을 잇고 있는 듯하다. 작은 갤러리와 공방들이 그것이다. 비록 작아 보이지만, 이런 소박함이 골목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행궁로를 지나면 향교로 가는 길이다. 향교가 있으면 교촌리, 향교리 등으로 부르는 곳이 많다. 이 길도 향교가 있어 교동이라고 부른다. 1795년 정조는 아침 일찍 신풍루를 나서 이 길로 수원향교 배향에 다녀왔다. 향교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은 이 길로 다녔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게 공부고, 자연스럽게 공부에 관심이 많다. 

이곳에 성공회 수원교회가 있다. 팔달산 자락에 작은 듯하면서 제법 크게 자리하고 있다. 도심 속에서 나무와 푸른 잔디가 돋보이는 그림 같은 교회다. 그것도 흔히 보는 교회가 아니라 성공회다. 1906년에 짓고, 남녀공학의 진명학교를 운영했다. 이 지역에 젊은이들이 학교에 다녔을 것인데, 순국열사 이선경도 어린 시절 여기서 공부했다. 

교회 맞은편에는 수원 구 부국원 건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지었다. 농업의 기초가 되는 종자와 비료 등 물품을 판매하던 회사 건물이다. 여기는 수원역이 가깝다. 일제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이주해 들어왔고, 여기서부터 약탈을 시작했다. 부국원 건물도 일제의 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잔재다. 

그러나 건물 앞 비석을 보면 수원법원과 검찰청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후 법질서를 바로 세우고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후에는 수원예총이 사용하기도 했고, 개인에게 팔려 박내과 의원이 있었다.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고마운 병원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농업의 기초가 되는 종자와 비료 등 물품을 판매하던 회사 건물이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듯, 격동의 시간을 견디고 등록문화재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농업의 기초가 되는 종자와 비료 등 물품을 판매하던 회사 건물이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듯, 격동의 시간을 견디고 등록문화재로 남아 있다.


부국원 건물이 일제의 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잔재라고 한 것처럼,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일찍이 허물었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픈 역사도 교훈이 된다. 다행히 지금은 격동의 시간을 잘 견디고 등록문화재로 남아 있다. 이 길목에는 구 수원문화원, 구 수원시청사 등 오래된 건물들이 지나간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이 들어서는 세상이다. 이 틈에 나이 먹은 건물이 세월을 버티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간다. 오래돼서 더 정이 간다. 역사의 아픔도 그대로 있다. 화려하지도 번잡하지도 않지만, 이야기는 많이 남아 있다. 기계와 기술이 점령하지 않아 사람 냄새가 그대로 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성곽에 사람이 많이 몰리지만, 여기는 조용해 좋다. 

조금만 나서면 소음과 굉음이 들리는 큰길이 보인다. 큰길은 차가 빠르게 질주한다. 큰길은 직선으로 뻗었지만, 여기 골목은 휘어진 길이다. 큰길은 과시하고 소비를 유혹하지만, 골목은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골목에는 바쁘게 변화하는 세상에 느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성벽처럼 단단한 뚝심을 이어간다. 골목에는 여행 중에 진짜 만나야 할 풍경이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화성, 수원, 행궁동, 신풍루, 골목,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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