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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
2015-08-29 07:16:01최종 업데이트 : 2015-08-29 07:16:01 작성자 : 시민기자   공석남

며칠 전 화서2동 주민센터에 가기 위해 날씨가 더워서 신동아 아파트 뒷길로 걸었다.  상가와 주택들이 있는 길을 따라 가다보니 한 옆으로 제사유적지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아무리 유심히 둘러봐도 유적지를 나타내는 그 무엇도 눈에 띄지 않았다. 놀이터와 더불어 시민 건강을 위해 마련된 운동기구들이 있을 뿐이었고 앞에는 주민 센터 주차장이었다. 그리고 좌측으로는  기찻길이 있다. 물론 재개발로 인해 모두 손실되었다 해도 비석 같은 것이라도 그 자리에 있어야하지 않을까. 제사를 지냈다는 표시로 남아 있어야하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제사 유적지라는 표지판만 덩그마니 서 있어 조금 허전해 보였다. 

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1
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1

수원시 향토 유적 제8호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688-4
꽃뫼 제사 유적지는 수원시 도심의 서북부 서호천 근처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며 택지개발지구로 예정되면서 1995년 수원대학교 박물관의 사전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1997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유적에 대한 성격을 알게 되었다.
발굴된 유구는 제사유적으로 추정되는 석축 토광묘, 옹관묘 등이었고 유물로는 토기류, 자기류(백자,청자, 분청사기) 청동숟가락 따라서 이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 전기(B.C 300-0)부터 조선시대까지 제사를 지냈던 제사유적으로 추정된다. (표지판 글을 인용했음)

그래서 인터넷으로 수원대학 박물관을 찾아봤지만 꽃뫼 제사유물의 소장여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제 1전시실에 토기류나 자기류 등을 전시한다고 하니 혹여 제기 같은 것이라도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것이 삼국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으로 봐서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발굴해 소장하고 보관하여 널리 알리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시대와 역사를 증명하는 일은 박물관의 소장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수원대학교 박물관을 찾았다. 5층엔 기증된 유물들과 문화재청의 인가를 얻은 유품들이 정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에서 일하시는 학생에게 물었더니,
"꽃뫼 유적지에서 발굴된 제사유적은 발굴하긴 했어도 문화재청 수장고에 보관 중이고 여기는 몇 점만 있다"고 했다. 좀 보았으면 했더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본 유물은 제기류로 사용했던 자기류 몇 점과 철재 기기들이었다. 97년도 발굴한 것이라고 명기되어 있었다. 유물로 보아서는 제사 유적지를 나타내는 제기들이다. 
친절하게 도와주셔서 감사했다. 제사유적의 미비한 점을 보충하느라 찾았던 박물관이었다. 그 외는 그곳에 없었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2
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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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3
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3

유적지로 인해서 조상들의 삶과 죽음에 이르러 행했던 예절을 찾아봤다. 시대에 따라 그 무덤의 형태도 다양하다. 석곽묘, 토광묘, 옹관묘 등은 시체를 구덩이를 파고 그대로 묻는 형태도 있지만, 돌로 옹벽을 쌓아 그 안에 나무 관에 넣어 묘를 형성하기도 했다.

석곽묘는 돌너덜무덤이라고도 하는데 돌로 쌓은 곳에 나무관을 넣어 시체를 안치했는데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로 그 시대를 알아보는 잣대가 되지 않았나 한다. 토광묘는 움무덤이라고도 한다. 땅을 파고 시체를 그냥 묻는 형태로 위에 봉이 없으면 묘인지 구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청동기말부터 철기시대에 많이 행해지던 묘의 형태라고 한다. 

수원대 박물관에서 옹관묘의 옹관을 보았다. 둥근 항아리와 같았다. 표지판에 명기된 사실로는 토광묘, 옹관묘의 무덤자리가 추정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제기들의 유물이 축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사를 지내고 꽃뫼 주민들이 일심으로 동제를 지내며 귀신의 원혼을 달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마디로 제사 유적지라면 사람들의 시신이 어딘가에 묻혔기에 제기들과 같은 유물을 출토해내지 않았을까?  

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4
꽃뫼 제사유적지를 둘러보면서_4

유적지 뒤에는 소나무, 잣나무와 더불어 참나무들이 숲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표지판 뒤로 작은 동산인데 철조망으로 둘레를 친 그 안에 있는 참나무 한 그루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바퀴를 돌면서 봤지만 특이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아래둥치에 깊게 구멍이 길게 뚫려서 세월을 이고 온 흔적으로 남아 있다.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참 나무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보호목에 해당하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아 사진으로 남겼다.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동네이다. 이처럼 작은 둔덕은 여름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혀줄 안식처처럼 숲은 조용했다. 그곳에 표적으로 제사 유적지를 나타낼 수 있는 표지판 외에 다른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사 유적지라는 표지판 하나로는 그 의미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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