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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
가을에 가고 싶은 이곳, 화성 서북각루 인근 풍광
2015-09-25 13:50:48최종 업데이트 : 2015-09-25 13:50:4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성벽을 비추던 조명이 꺼지니 성벽위에 상현달이 걸려있다. 성벽 그림자 속에 숨은 숲속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동네 어귀에 있던 키 큰 장승이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면서 숲에서 툭 튀어나올 듯한 기세로 억새 숲 사이에서 억새가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스산한 숲 뒤로 조명을 받고 있는 누각이 보인다. 단청의 색상이 오싹한 느낌이지만 가을날 밤길을 걸으며 억새 숲과 누각을 보는 즐거움이 있는 길이 있다.

평지에서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길 한편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소나무들이 서있다. 솔향기 나는 그늘 아래는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연인들이 보인다. 시선을 옆으로 옮기면 성벽아래 비탈진 곳에 억새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한낮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억새꽃에 머물렀다가 부서지듯 숲에 은색 물결을 일으킨다. 숲에서 바람이 불면 어린 시절 고향산천을 달리듯 억새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시선을 더 높이면 끝없이 이어진 성가퀴 가운데 누각이 보인다. 낮에 보는 누각은 윤곽이 뚜렷하고 성벽위에 우뚝 솟은 모습이 당차 보인다. 가을날 이 길을 걸으면 솔향기에 취하고, 억새 숲 노랫소리에 취하고 누각에 혼을 빼앗기는 그런 길이다.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1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1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2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2

영산홍이 붉게 피어있고, 제비꽃이 앉아 있듯 피어있는 봄날 오솔길을 걷듯 걸어도 좋은 길이 있다. 봄꽃과 시선을 마주치며 걷던 길, 뜨거운 햇살을 이고 걷던 길, 길가 소나무 아래에서 더위에 지친 누각을 바라볼 수 있는 길, 흰눈이 성가퀴에 쌓여있고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의 쓸쓸한 길, 언제 걸어도 정겹고 새로운 길이지만 이맘때 걸어야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질 수 있고, 삶에 대해 사유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다. 친구와 걸어도 좋고, 연인과 걸어도 좋고, 좋은 사람과 걸으면 더 좋은 길이다.

성안에 있는 누각에 앉아있으면 사방으로 탁 트인 시선이 장쾌하고 시원하다.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간 성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고, 구릉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성가퀴와 그 뒤로 아스라이 광교산이 보인다. 바람이 불면 성벽에서 휘날리는 흰 깃발에서 백호가 뛰쳐나올 듯하다.
성벽 밖으로 펼쳐진 광활한 대유평에서 황금물결이 춤을 추며 풍년가로 메아리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지금은 도시 밑에 잠들어 있는 대유평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봄이면 대유평에서 농민들의 즐거운 농요가 들려왔고, 가을이면 서성 밖에서 사냥을 하던 기상이 살아날 듯하다.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3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3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4
가을빛 달빛 화성성벽과 억새꽃 위에 내려앉고_4

이곳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서북각루 풍광이다. 수원화성 서쪽 대문인 화서문에서 팔달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처음 만나는 누각이 바로 서북각루 이다. 서북각루 밖 넓은 경사지에 억새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지금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길이 있고, 누각이 있고, 성벽이 있다. 낮에 가도 좋고 밤에 가도 좋다. 좋은 사람과 가면 더 좋은 곳이다. 

성벽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강인한 생명체가 있다. 뿌리가 돌에 붙어 있다가 돌을 뚫고 뿌리가 뻗는다. 생명이 있음에 돌이 있는 게 아니고, 돌이 있음에 생명의 위대함이 빛나는 것이다. 그런 생명이 수원화성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아 숨쉬는 수원화성이 되게 한다. 수원화성은 200여년 된 무생물이 아니다. 220년 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가을햇살이 좋을 때이다. 화성을 순례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수원화성을 보듬으며 천천히 걸어보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화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을 뜨게 되면 또다시 새로운 게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면 문화재답사가 즐거운 일이 된다. 가을을 즐기듯 수원화성을 즐겨보자. 


한정규님의 네임카드

수원화성, 서북각루,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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