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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엔 걷자! 수원화성 서쪽에 있는 서호공원 일대 추천
항미정과 축만제, 철새들의 낙원인 인공섬, 여기산 백로 서식지 둘러볼 수 있어.
2020-03-13 16:45:29최종 업데이트 : 2020-03-13 16:46:54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화성성역의궤'에는 '여기산(如岐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산의 모습이 기생의 자태와 같이 아름다워서 '여기산(麗岐山)'으로 붙여지게 되었다.

서호와 여기산 풍경-화성성역의궤에는 '여기산(如岐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산의 모습이 기생의 자태와 같이 아름다워서 '여기산(麗岐山)'으로 붙여지게 되었다.


12일 오후 2시 기자는 호매실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인 정현우(남. 3학년) 군과 정가은(여. 5학년) 양, 어머니 송영자(40대. 호매실동) 씨를 만나 항미정을 시작으로 축만제, 서둔, 서호공원, 여기산 백로 서식지를 차례로 둘러보기로 했다.

코로나 19로 개학이 23일로 연기되었다. 새 학년 새 반이 되었지만, 아직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정 남매를 위한 시간이다. 경찰이 꿈인 현우 군은 요즘 답답한 마음을 덤블링으로 달래고 있다. 바느질로 필통을 만들거나 소독제 만들기로 일상을 보내는 가은 양은 "빨리 개학해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요"라는 간절한 바람을 내비쳤다.

'항주(杭州)의 미목(眉目)'이라는 소동파의 시(詩)에서 '항미정'이란 이름이 나왔다. 정현우(남. 3학년) 군과 정가은(여. 5학년) 양

'항주(杭州)의 미목(眉目)'이라는 소동파의 시(詩)에서 '항미정'이란 이름이 나왔다. 정현우(남. 3학년) 군과 정가은(여. 5학년) 양.


항미정(抗眉亭)은 '서호'라고 부르는 축만제(祝萬堤) 제방 서쪽에 있는 정자다. 순조 31년(1831년) 화성 유수가 건립한 것으로, 중국 시인 소동파(소식.蘇軾)의 시구 '항주(杭州)의 미목(眉目)'에서 이름을 따왔다.

중국 항주에도 같은 이름의 서호(西湖)가 있다. 바다같이 드넓은 호수인 서호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치의 산과 호수 곳곳에 멋지게 자리 잡은 섬들로 빼어난 경치를 가졌다. 시인 소동파는 서호를 중국을 대표하는 미녀 서시(西施)와 비유해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 오는 날에도 좋다'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고 시를 지었다.
 
항미정은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서호(西湖) 주변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자다.

항미정은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서호(西湖) 주변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자다.


'미목(眉目)'이란 눈썹과 눈을 가리키는 말로 서시의 뛰어난 미모를 말한다. 그녀는 위장병으로 고통스러울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곤 했는데 그 모습마저 아름다워 보였다고 한다. 정자 뒤편 높은 곳에 올라서서 항미정과 축만제, 여기산(麗岐山)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감상했다.
 
축만제는 여기산(麗妓山) 밑에 있는 저수지로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라는 뜻이다. 표석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축만제는 여기산(麗妓山) 밑에 있는 저수지로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라는 뜻이다. 표석이 현재 전해지고 있다.


축만제 표석 앞에서 남매가 사진을 찍었다. 축만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라는 뜻으로, 1799년(정조 23) 수원화성을 쌓을 때 만든 당시 최대 규모의 저수지다. 둑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수지 바로 아래 드넓은 둔전(屯田)이 보인다. 둔전은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한다'라는 목적하에 황무지를 개간해 만든 토지다.

전국적인 가뭄이 있던 1794년 정조는 화성 성역 쌓기를 중단하고 저수지와 둔전을 축조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만석거와 대유둔전이 만들어지면서 백성의 주린 배가 해결되자 축만제, 만년제 등이 연이어 축조되었고, 축만제 부근에 서둔이 만들어졌다.

트랙터 한 대가 서둔(西屯)을 갈아엎는 이색적인 모습이 보인다. 정조의 농업정책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현장이다. 이 둔전이 있던 곳을 '서둔촌(西屯村)'이라 했는데 오늘날 서둔동이 되었다.
 
저수지 제방 아래의 농지는 둔전(屯田)으로, 수원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이 평소에 농사를 지어 재원을 마련했다.

저수지 제방 아래의 농지는 둔전(屯田)으로, 수원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이 평소에 농사를 지어 재원을 마련했다.


서호 한가운데 있는 인공섬은 철새들의 낙원이다. 뺨과 목덜미가 흰색이고 나머지는 검은색인 민물가마우지가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는다. 현우 군이 "엄마, 섬이 왜 하얗게 보여?"라고 묻자 "새들이 똥을 쌌는데 너무 많이 쌌나 봐"라는 엄마의 답이 나왔다. 그랬다. 섬은 새들의 배설물에 뒤덮여 온통 하얗게 보였다.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이 되면 다시 푸르러진다고 한다.

저수지 위로 나뭇가지를 입에 문 민물가마우지가 낮게 날아간다. 스키를 타는 듯 물살을 가르는 모습에 남매가 웃었다. 어린 새들이 물가에서 수영연습을 하고, 많은 종류의 새들이 오가며 먹이활동을 한다. 큰기러기, 뿔논병아리, 쇠백로, 쇠기러기, 물닭, 흰뺨검둥오리 등이 공존한다는데 이름과 모습을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기자는 "저기 나뭇가지에서 남생이 보여?"라고 가은 양에게 물었다. "어디요? 남생이가 뭐예요?"라고 재차 묻는다. "남생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물 거북으로 '거북이(龜)'라 부르던 파충류야. 체온을 높이려고 햇볕 쬐는 중인가 봐"라는 기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서호 안 인공섬은 새들의 낙원이다. 망원경으로 새들을 탐사하는 정현우 군의 모습.

서호 안 인공섬은 새들의 낙원이다. 망원경으로 새들을 탐사하는 정현우 군의 모습.


햇살 좋은 서호공원에는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제 막 걸음마를 띤 아이가 삑삑 소리 나는 신발을 신고 질주한다.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힘찬 발걸음으로 운동한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훌라후프를 돌리는 시민의 모습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여기산 백로 서식지다. 도로 건너편 아파트 단지가 있음에도 백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다닌다. 날개는 크고 꽁지는 짧다.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기며 다가가 보니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가 놀랍도록 많다. 긴 다리와 S자 모양의 목이 긴 백로가 눈에 띈다.
 
여기산 백로 서식지. 나뭇가지에 수많은 둥지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백로가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를 상징해왔고, 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여기산 백로 서식지. 나뭇가지에 수많은 둥지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백로가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를 상징해왔고, 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백로는 2급수 이상 물에서만 먹이활동을 하는데, 서호와 서호천의 먹잇감이 충분해서 서식지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수원시를 상징하는 새인 백로를 눈앞 가까이 관찰하다니 흥미로웠다.

2시간 가까이 서호 일대를 걸어 힘들었을 텐데 집으로 돌아가는 남매의 표정이 밝고 환하다. 기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 기억하지 못하면 어떤가,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수원역에서 항미정 가는 대중교통은 92, 92-1, 13-1, 9-1, 5-1, 15 농촌진흥청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항미정, 축만제, 서호, 서호공원, 여기산백로서식지, 서둔, 소동파, 남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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