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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을 돌아보며 ‘정조대왕의 애민사상’을 보다
아름다움의 실체는 '구조적 안정감의 비율'
2024-01-05 13:26:43최종 업데이트 : 2024-01-05 13:26:40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화성 화홍문, 홍예 수문과 누각의 비율이 안정적이라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수원화성 화홍문, 홍예 수문과 누각의 비율이 안정적이라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매향교 부근에서부터 수원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약간 깊은 물에 팔뚝만 한 잉어들이 떼 지어 헤엄치고 오리들이 유유히 노니는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백로가 물속을 주시하며 먹이 사냥을 할 때면 오랜 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집중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과연 먹이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기다리다 보면 망부석 같은 백로보다는 사람이 먼저 지쳐 발걸음을 재촉한다.

수원화성 성벽에 뿌리를 내린 생명이 강인함을 보여준다.

수원화성 성벽에 뿌리를 내린 생명이 강인함을 보여준다.


걷다 보면 눈앞에 화홍문이 나타난다. 한두 개 수문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장마철의 웅장함은 없지만 고요함 속의 정적을 깨는 소리라고 할까, 정신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화홍문은 7개의 홍예 수문 위에 단층 누각이 있는 구조이다. 언제 어느 때 보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왜 아름다울까?

수원화성 북동치와 성벽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구조적으로 튼튼하다.

수원화성 북동치와 성벽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구조적으로 튼튼하다.


건축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고대부터 서양에서는 '황금비율', 우리나라에서는 '금강비율'이라는 것이 있었다. 눈으로 봤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균형감 있는 구도이다. 일반적으로 황금비율은 세로와 가로의 비가 1대 1.618이고, 금강비율은 1대 1.414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명함, 카드 등의 비율도 비슷하며 가로로 보았을 때의 안정감이다.

정조대왕의 애민사상이 실현된 성벽

정조대왕의 애민사상이 실현된 성벽


화홍문은 7개의 홍예 수문 자체로도 아름다운데, 가운데 3개의 홍예 수문 위에 누각의 기둥이, 팔작지붕의 처마 선은 좌우로 1개의 홍예 수문 위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5개의 홍예 수문 위에 누각이 있는 모습이고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황금비율과 금강비율 사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대의 건축가들이 비율을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안목에도 미적인 기준이 있었고 이런 비율이 전승되어 아름다운 건축물로 태어난 것이라 여겨진다. 

수원화성 축성 당시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성벽

수원화성 축성 당시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성벽


수원화성을 답사하면서 여러 형태의 건축물과 성벽의 돌까지 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신기하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찾는 게 재미있다. 화홍문을 지나 성벽 길로 접어들어 북동포루 가는 길에서 성 돌 틈에 뿌리를 내린 생명을 봤다. 식물의 강인한 생명만큼이나 성벽이 잘 유지되기를 바란다.

수원화성 북서포루

수원화성 북서포루


화성성역의궤 '어제성화주략(정조대왕이 수원화성 축성에 필요한 기본 지침을 지은 글)'에는 '큰 돌은 하층에 중간 돌은 중층에 작은 돌은 상층에 놓아 크기를 가려 점차로 재료를 맞게 쓸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부근의 성벽을 보면 성 돌의 규격이 제멋대로이다. 성벽을 쌓은 기술자들이 감히 어명을 어긴 것인가?

수원화성 북포루

수원화성 북포루


장안문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중 북서적대에서 북서포루 사이 약 50여 m 성벽은 축성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대체로 성벽 아래는 큰 돌을 중간에는 중간 돌을, 위에는 작은 돌로 쌓았다. 이런 성제는 고구려 석성에서 시작되었다. 너무도 정교해 돌 틈에 바늘 끝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이다. 성벽은 구간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른데 기술자들의 실력 차이였을까?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이 구간의 성벽은 S자로 굽어 있다. 정조대왕의 애민사상이 실현된 현장이기도 하다. 1794년 1월에 수원을 방문한 정조대왕은 성터를 둘러 말뚝을 박고 깃대를 세운 것을 보았다. 깃발을 꽂은 터가 북쪽 마을의 민가 가운데를 곧바로 꿰뚫고 지나간 것을 보고 "만일 이러하다면 인가(人家)가 많이 훼철될 것이고, 득중정에서 불과 백수십 보 떨어져 있어서 담벼락에 낯을 대고 있는 것과 같으니 더 넓혀야 할 것이다."라며 민가 밖으로 성벽을 쌓으라 명했다. 이곳 성벽을 곡선으로 쌓다 보니 구조적으로도 안정감이 있고 더 튼튼하다. 오늘날 여기 성벽이 증명하고 있다. 

수원화성 서북각루

수원화성 서북각루


화홍문에서 장안문, 북서적대, 북서포루, 북포루, 서북공심돈, 화서문, 서북각루, 서1치까지 걷다 보면 수원화성 전체 시설물의 특징적인 모습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성벽에 치성을 덧대어 쌓지 않고 이어서 쌓은 모습, 축성 당시의 원형, 고구려 성제의 모습, 성벽에 벽돌로 덧대어 쌓은 포루, 치성 위에 쌓은 포루, 치성 위에 쌓은 공심돈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중에서도 보물 같은 곳이다.

수원화성 서1치

수원화성 서1치


수원시민, 관광객, 답사객 등 많은 사람이 수원화성 성곽길을 걸으며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조금만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 아름다움의 실체도 볼 수 있다. 우리 문화재에 애정을 갖고 더 알면 문화재를 보는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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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정조대왕, 애민사상, 금강비율, 황금비율,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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