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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와 찬란한 왕실문화를 수원에서 만나다
9일까지 전시..정조대왕 을묘년 수원행차 220주년 특별기획전
2015-08-02 14:15:15최종 업데이트 : 2015-08-02 14:15:1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원행을묘정리의궤'의 탄생

"왕은 이르노라. 세월이 흘러 회갑을 맞이하는 것은 드물게 있는 큰 경사다. 어버이의 연세가 여기에 이를 경우 기쁨을 크게 드러내는 것은 자식의 직분상 당연한 것이다. 정중히 음식을 마련하고 술을 올리는 것은 서민들의 일이고, 크게 잔치를 베풀고 친척들을 초대하는 것은 경대부(卿大夫)의 일이며, 정사에 베풀어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거워함은 임금의 일이다." 

자궁의 회갑일에 경사를 표하고 은택을 널리 베푼 윤음(綸音), 즉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글로서 '홍재전서' 권28에 나온다. 
220년 전 정조는 어머님 회갑잔치를 2년 전부터 직접 기획하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시도를 한다. 조선 개국 이래 궁중 연희를 한양의 정궁이 아닌 수원화성행궁에서 펼치고, 기념비적인 이날의 축제를 기록으로 낱낱이 남긴다. 이름하여 기록문화의 백미라 칭하는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그렇게 탄생됐다. 

1795년(정조 19) 어머니 혜경궁과 동갑이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아 화성과 현릉원을 찾은 8일간의 행차 보고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행사의 전말과 함께 당대 최고의 화원들의 손길로 도판이 남겨졌다. 완벽에 가깝게 전말을 재현한 '주교도', '화성행궁도', '낙남헌 방방도', '봉수당 진찬도', '득중정 어사도', '신풍루 사미도', '대호궤도' 등 18세기 궁중 문화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귀중한 우리문화유산으로 남겨졌다.

혜경궁 홍씨와 찬란한 왕실문화를 수원에서 만나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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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와 찬란한 왕실문화를 수원에서 만나다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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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토록 세밀한 기록이라니!

지난 6월26일부터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전시중인 '혜경궁 홍씨와 풍산홍씨'를 드디어 관람했다. 정조대왕 을묘년 수원행차 220주년 특별기획전으로 오는 9일까지 전시하는데 그야말로 '놓쳤으면 어떡할 뻔했을까!'라는 아찔한 생각이 들 정도로 전시 내용이 알차다.
전체의 흐름은 조선최대의 왕실잔치 봉수당진찬연, 왕실의 큰 어른 혜경궁 홍씨, 명문대가 풍산 홍씨로 꾸며졌다. 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왕실문화와 명문사대부가의 밀도 높은 생활사까지 엿볼 수 있어 그야말로 느리게 봐야 하는 전시다.

이번에 특별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대작들도 나와 있는데 가장 눈여겨 봐야하는 것이 삼성미술관 리움이 대여한 유물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와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대여한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이다. 
정교함의 극치를 이루는 두 작품 앞에선 말을 잇지 못할 정도다. 들고 있던 가방을 내치고 무릎은 접고 아래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사선으로....6천여 명의 인원과 1천400여필의 말과 길마다 가득 메운 구경꾼 들이 생생히 살아 움직여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진다. 
이외에도 왕실 잔치에 쓰인 유물과 명문사대부가였던 풍산홍씨가에 전해져온 복식과 장신구 등이 전시장을 메웠다. 무엇하나 존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명문대가 풍산 홍씨, 혜경궁

궁중문학의 중요한 자료로 치는 '한중록'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61세부터 10년간 집필한 책이다. 10세에 사도세자의 아내로 입궁하고 28세에 동갑이던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은 후 81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70여년이 넘는 긴 시간을 궁궐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임오년 윤 5월 13일 생부인 영조에 의해 남편을 여의고 아들 정조가 왕으로 등극한 이후엔 의지했던 아들마저 친정 풍산홍씨가를 탄압하는 등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 전말이 '한중록'에 담겼다.

후대사람들은 '한스러운 가운데 쓴 기록'이라 하여 '恨中錄'이라 불렀는가 하면, '한가로운 가운데 쓴 기록'이라 하여 '閑中錄'이라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간 비정한 여인이라고 수런거렸다. 정병설(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혜경궁홍씨를 둘러싼 몇 가지 오해'란 논고(혜경궁 홍씨와 풍산홍씨 도록 259P)에서 친정의 누명을 벗겨내고 더 이상 풍파를 겪지 않도록 하고자 한중록을 썼다고 했다. 즉, 사도세자 사건을 겪은 당사자들, 사도세자의 아내이자 한 신하의 딸로서의 자리와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한 나라 임금으로서의 자리는 서로 입장이 달랐다는 것. 그 입장 차이가 둘의 천륜을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갈라놓았다고 변론했다. 

혜경궁 홍씨와 찬란한 왕실문화를 수원에서 만나다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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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남은 특별전시, 놓치면 후회

세자빈으로 뽑히고, 임금의 어머니(1795년 회갑을 기념하여 존호 '휘목'을 올리며 지은 글 '헌경왕후 가상존호 옥책-국립고궁박물관 대여'유물도 전시 중)가 되고, 또한 대왕대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올랐던 혜경궁 홍씨, 과연 그녀는 행복한 여인이었을까. 아니면 한(恨) 많은 인생을 살아낸 인물이었을까. 

재위 중 총 13번이나 수원화성행차에 나섰던 국왕 정조, 특히나 어머니 회갑연을 열어 들이기 위해 을묘년(1795)에 나섰던 8일간의 원행은 조선 최대의 왕실잔치였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의미와 왕실여인의 삶까지 엿볼 수 있는 이번 특별전시, 놓치면 정말 후회한다. 

딱 일주일 남았다. 왕실 기록문화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유물 보존으로 인해 전시장이 다소 어두우니 돋보기를 준비해 가시면 좋다. 
한편에 마련된 궁중 정재(呈才) '왕조의 꿈 태평서곡'이 재현된 봉수당 진찬 공연이 영상으로 준비되어 있다. 이번 전시 주최측의 큰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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