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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
2015-07-12 11:28:49최종 업데이트 : 2015-07-12 11:28:49 작성자 : 시민기자   공석남

전에 서호 예찬 기사를 보고 이웃이 했던 말을 생각한다. 수원팔경이 생각난다고. 그 중에 북지상련과 더불어 수원팔경을 설명해 주었다. 화성성곽에서 볼 때 북쪽에 있는 연못이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연꽃이 장관이라고 하니 만석공원의 연밭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날씨는 더웠지만 시원한 연밭을 보니 상쾌하다. 사람들은 아침운동을 한다. 얼굴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는 깊숙이 눌러썼다. 메르스는 물러났으니 여름날 피부 관리를 위해서 일거다. 
한참을 걸어도 연밭은 보이는데 연꽃의 모습은 가뭄에 콩 나듯이 하나 둘뿐이었다. 재두루미 두 마리가 날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한 조용한 호수다. 

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1
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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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2
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2

연잎은 흐드러지게 돋아 올라 수면을 덮었는데, 이상하게 꽃대는 올라오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계신 분에게 여쭈었다. 그분은 모른다고 고갤 흔들었다. 또 한분의 말씀에 의하면 어느 핸가 연의 대를 잘라버려서 올라오지도 않고 꽃도 많이 피지 않는단다. 아쉬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의 휴식처인데 그 푸름과 연꽃의 우아함이 7월이면 호수를 빛내던 장관이 눈에 삼삼하다.

수원팔경에서 말하는 북지상련이 '화성성역의궤의 영화정도'를 보면 1912년 4월7일 매일신보에 실린 이원규의 수원팔경가 중 제5경으로 북지상련을 노래했다.
'북지 연꽃을 구경하니 푸른 연꽃 연잎 사이로 꽃 붉고
신선 타는 배 바람이 살랑대서 이슬이 살짝 내린 강남여인의 뺨이로다' 라고 노래했다. 화성성역의궤의 영화정도를 보면 만석거에 떠 있는 배 두 척이 보인다는 것이다. 공간적 배경으로 봐서 만석거가 맞을 것 같단다. 

정조대왕의 행차가 지지대고개를 넘어 파장동으로 접어들면서 만석거의 如意橋에서 잠깐 쉬었다는 대목이 있다. 여의교는 다리 같은데 한 바퀴 돌면서 건너온 작은 다리였을까 모르겠다.   여의루 라는 누각은 보았다. 누각이 그 시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인지는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4
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4

호수 건너 여의루(如意樓)는 미술관 건너편 공원 앞에 제법 큰 누각이다. 현판 글씨는 예서체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야 한다. 멋스런 누각이 2층으로 되었다. 아무런 방비가 없어 아이들이 마구 올라가 깨끗하게 보전 되지 못한 점도 있다. 다만 누각이 언제 어떤 이유로 이곳에 지어졌는지, 혹은 어느 시대에 복원되었는지 하는 연대도설명도 없다. 그냥 누각만 덩그마니 홀로 섯는 느낌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쓸쓸했고 어울리지 않아 보였는데,  정자의 2층을 보면서 순간 정조대왕을 생각했다. 만석거 어디에도 없던 그 시대의 자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2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석거가 현존한다는데 감사한다. 선견지명이 남다른 왕이었다. 그렇다면 그때도 연못에는 연꽃이 피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확실히 백년대계를 꿈꾸던 왕임에 틀림없다. 꽃을 보며 풍류를 즐기고 학문에 도통한 임금으로 다산과 같은 신하가 있어 화성의 찬란함을 일궈냈으니 현명한 왕이다. 지금 내가 걷는 길이 혹여 왕의 행차가 지나던 길은 아니었을까 잠시 황공한 마음이 든다.

수원시는 10월 화성문화제에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하여 그 시대를 들여다본다. 이 행사는 창덕궁에서부터 시작이 아니기에 만석거를 들려갈 리가 없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부터 출발한다. 많은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선두군사가 앞장 서 출발하면서 행렬은 상상을 뒤엎을 정도로 보기 드문 행사다. 잘 보이지 않아 장안문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던 그 가을날이 생각난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 이 행사를 재현하고 있다. 한결 같은 도시의 모습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변해버린 시내이었다. 말을 탄 씩씩한 보병들도 궁녀도 정예군사들도 떼지어 걸어가는 행렬은 시대를 건너 타이머신을 탄 것처럼 빨려들어 갔다. 언제쯤 왕의 행차가 보일까 고개를 늘이던 그날이었다.

정조대왕은 임기동안 이 행차를 13차례나 하였다고 한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왕이 혼자 수행원만을 데리고 오는 행차가 아니다. 잠시 정궁을 옮길 만큼 대대적인 행사이다. 8일간의 시간을 소요하는 능행차는 어머님혜경궁홍씨를 모시고 화산의 사도세자(아버지)현릉원을 참배하는 행차이다. 이에 동원된 인원은 '원형을묘정리의궤'의 반차도에 참여한 사람이 1505명이고 말이 516필이란다. 재현행렬이 끝없이 펼쳐지기에 찾아보았다. 이것은 문헌에 기재된 인원이고 그 외 동원된 인원도 수없이 많다고 한다. 만석거를 돌면서 정조대왕의 능행차로 한 시대를 풍요했던 왕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만석거에서 왕의 혼기가 서린 듯하여 감회가 깊다. 그처럼 훌륭한 왕이었기에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바른 정치를 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민심을 살폈기에 만석거를 만들었고, 연꽃을 심어 오래도록 시민들 가슴 안에 자신의 혼을 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안위를 생각했던 왕이다. 자신의 권위보다는 상처 입은 백성을 치유하고 싶었던 애민정신으로 만석거도 만들었을 것 같다. 

고맙고 지혜로움 덕분에 수원의 물줄기를 담게 되었다. 가뭄이 심해 논밭의 곡식들과 가로수들이 고갤 외여 꼬고 있는데, 만석거와 서호의 물줄기 덕분에 관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3
만석거 호수에 핀 연잎 위엔 정조대왕의 넋이_3

한 바퀴 만석거를 돌면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더운 날 갈 곳이 있는 시민들, 호수의 분수가 시간대로 뿜어 올려 시민들의 가슴을 적셔준다. 시원한 물이 있고 불거리가 있다. 주변에 큰 나무들이 욱어져 그늘을 만들어주니 벤치에 앉아 쉬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모습이 화목해 보였다. 또한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 역시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처럼 애처롭지만 함께해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연꽃은 생각대로 올라오지 안했지만 그 와 덤으로 얻은 것이 많다. 내일을 위한 연뿌리의 기다림과도 같이 수원시민은 다음해에 아름답게 피워 올린 연꽃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오늘도 호수를 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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