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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서호는 지금?
2015-07-23 08:09:30최종 업데이트 : 2015-07-23 08:09:30 작성자 : 시민기자   공석남

오랜만에 수변로를 걷는다. 기온은 덥지만 그래도 아침이라 상쾌하다. 부딪치는 숲들과 사람들의 옷깃이 잔바람에 살랑이는 길이다. 화산교 밑 도로를 건너가면서 여기산에 백로 무리가 하얗게 앉아 있는 것을 본다. 무엇을 하는 것일까. 가까이에서 바라보던 산이었지만 오늘처럼 마주 보기는 꽤 된 것 같다. 나무 색깔마저 변해버린 백로들의 보금자리다. 자세히 보기 위해 길을 나와 체육공원으로 가는 입구로 돌아왔다. 

거리가 멀고 숲이 가로 막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대로로 이어지는 화산교 위로 올라오니 조금 윤곽이 잡혔다. 백로들의 서식지인 여기산은 통행불가인 산이다.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지만 백로만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자신들의 마을인 여기산이다. 숫자도 무지 많다. 한꺼번에 백로가 날면 아마도 여기산을 덮을 만큼 장관일 것이다. 낮에는 어디서 노는지 모르지만, 저녁이면 다리를 건너 제집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퇴근길 고단한 직장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아침이면 깨어 나무 끝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칠월의 서호는 지금?_1
칠월의 서호는 지금?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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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의 서호는 지금?_2
칠월의 서호는 지금?_2

백로의 생태환경으로 서호천이 적합하기 때문에 새들이 찾아올 것이다. 도심이지만 물고기와 그 외 맑고 신선한 공기가 백로들에게 맞는가 보다. 좋은 환경을 찾아 혹은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지 싶다.
물안개가 서린 서호천은 바라만 봐도 시원하고 한 가득 안겨주는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다. 가득한 물만 봐도 배가 부르다. 푸짐하게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베풀어내는 어머니의 품이다. 그러기에 물오리나 가마우지 등등의 새들이 늘 물속을 헤집고 놀기도 하고 먹이도 건져 올린다. 긴 다리로 겅중겅중 물속을 걷는 백로의 모습은 여유가 있다. 작은 눈으로 어떻게 먹이를 그렇게 잘 찾아낼까 신비한 새들의 형태를 본다.

제방 너머 농촌 시험장엔 엊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데 벌써 시퍼렇게 물맛을 안고 일어선 벼들이다. 보기 좋다. 하얗게 덮은 벼논을 바라보며 왜 덮었을까 궁금했다. 방죽을 걷다보니 방죽 아래 논둑을 걷는 분에게 여쭈었다. "죄송합니다. 왜 벼논을 덮었어요?"
"여기는 시험장입니다. 새나 그 외 동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래까지 울타리를 쳤지요." "그물인가요?"
"그물입니다. 새들이 논에 들어가 휘젓고 다니면 제대로 된 기록이 나오지 않아요. 게다가 시험장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거든요. 남은 논도 모두 덮어야 해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 건지 자세한 것을 물어보지 못했다. 바쁜 걸음을 세워서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오늘 내로 덮어야 한다는 벼논은 종자 벌로 칸막이가 되어 있다. 우량품종 개발을 위한 시험장이다. 그러니 혹여 바람에라도 다른 것들이 날려 품종개발에 해를 미치지 않기 위한 방침일 수도 있겠다. 

칠월의 서호는 지금?_3
칠월의 서호는 지금?_3

서호에는 아침 일찍부터 뭔가를 건져 올리는 분이 있다. 호수가를 돌면서 쓰레기와 호수에 필요치 않은 것들을 건져 올린다. 이렇게 청소하고 관리하는 분들이 있기에 쾌적한 호수를 유지할 것이다. 

야들한 풀들이 어느새 자라 우뚝 올라왔는가 하면 제 명을 다한 것들, 꽃을 피운 것들로 아름답다. 무궁화가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물오리들도 길섶으로 올라와 뭔가를 콕콕 찍고 있다. 뒤뚱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물오리도 쌍으로 다니나 보다. 기러기만 짝을 데리고 노는 줄 알았는데, 오리도 그런가보다고 내가 지나가는 말에 옆에 가던 아저씨가 내 말을 거든다. 그런데 이것들은 풀씨를 먹는다고 한다. 작은 곤충도 먹지만 지금 풀밭에서 먹는 것은 풀씨를 찾는 것이란다. 그러고 보면 모든 자연은 상생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봄부터 꽃을 피움은 누구를 위한 일이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인공터널로 들어섰다. 작은 모종을 보았는데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웠다. 개중에는 허공에 열매달고 달랑거린다. 박꽃도 예뻤다. 참으로 오랜만에 본 꽃이다. 민속촌 초가지붕위에나 있을 법한 박꽃이다. 

칠월의 서호는 지금?_4
칠월의 서호는 지금?_4

어느해 여름 화성군 남양 시골마을에서 작은 정자를 타고 올라가 박을 매단 초가지붕을 보았다. 그때도 그 멋에 취해 사진도 찍고 반가웠던 소박한 꽃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호의 터널 안에는 주렁주렁 작은 박들이 매달렸다. 혹은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누가 일부러 따려고 한 것인지는 몰라도 목이 부러진 것을 망에 넣어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옆에 주석을 달았다. '대를 이어 그 꼬라지로 살아라.' 흥부놀부가 연상되는 박덩이가 허공에 매달린 풍경은 도심의 흥밋거리다. 보기만 해도 신기하고 푸짐한 시골 풍경이다. 

칠월의 서호는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시간을 먹고 제 할 일을 마무리 짓는 모습도 보이고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양 수없이 돋아 오르는 나뭇잎, 풀꽃들도 있다. 하나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무궁화가 가을까지 피고지고 할게다. 서호는 이래서 늘 새롭고 경이로운 곳이다. 푸르게 올라온 나무들이 시퍼런 잎들로 조금은 억센 느낌을 준다. 그 잎이 두꺼워지니 그늘도 시원하다. 칠월은 청장년의 기상만큼 활기찬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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