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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중인 창성사지, 예사 절이 아니었네
지난 창성사지 역사 제대로 밝혀지길 기대
2014-11-19 07:58:21최종 업데이트 : 2014-11-19 07:58:21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발굴중인 창성사지, 예사 절이 아니었네_1
발굴 중인 창성사지
 
수원시 상광교동 산41에 소재한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인 창성사지. 창성사는 고려 말의 국사인 화엄종사였던 진각국사(1305~1382)의 사리탑과 함께 조성이 된, 보물 제14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던 곳이다. 진각국사의 탑비는 현재는 수원 화성 안 방화수류정 길 위편으로 옮겨져 있다.

상광교동 버스 정류장에서 광교산 방향으로 폭포농원이 있다. 창성사를 오르는 길이 따로 나 있지 않아 이곳을 통과해 안쪽 하천에 놓인 가교를 건너야 한다. 이곳에서 산으로 오르는 길은 그저 평범한 어느 산골마을을 찾아가는 길 같다. 길가에 쓴 몇 기의 묘를 지나 산길을 걷다보면 길이 양편으로 갈라진다. 좌측으로 난 길이 창성사지로 오르는 길이다.

18일 오후에 오른 창성사지 오름길. 이곳부터는 길이 험해진다. 발밑에서 바삭하며 부스러지는 마른 낙엽들이 아파하는 소리가 난다. 물길과 산길을 따라 수북이 쌓인 낙엽들을 밟으며 걷다보면 때 늦은 단풍들이 손짓을 한다. 좌측으로 계곡 옆에 선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보인다.  

발굴중인 창성사지, 예사 절이 아니었네_2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천천히 걸어 조금 더 오르면 누군가 쌓다가 만 돌탑이 보인다. 막돌로 쌓아놓은 이 탑은 언제 누가 쌓은 것일까? 아마도 누군가 이곳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길이 갑자기 험해진다. 낙엽이 쌓인 밑으로 뾰족한 돌들이 발바닥을 찌른다. 아마도 낯선 사람이 이 길로 들어선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땀이 흐르는 것을 닦으며 조금 더 오르니 창성사지가 보인다.

창성사지 이렇게 대단했었나?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옛 축대가 보인다. 높이 4 ~ 5m 정도의 축대로 보아, 이곳을 기점으로 아래 위에 전각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창성사지 주변에 온통 여기저기 줄을 늘어놓았다. 수원시 향토유적인 창성사지를 한신대학교박물관과 수원시에서 발굴을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보물로 지정된 창성사지 진각국사 탑비는 이곳을 떠났다. 아마도 절이 사라져버린 산 중에 놓아두는 것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발굴의 흔적이 보인다. 모두 3단으로 축대를 쌓고 전각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창성사지는, 발굴을 하면서 각종 와편과 석재들이 노출이 되었다.

발굴중인 창성사지, 예사 절이 아니었네_3
우물터로 추정되는 곳
 
그 뒤편에도 작은 축대 한 곳이 있다. 아마도 그 위에는 산신각이나 삼성각이 자리했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석재들과 함께 몇 곳 우물의 흔적도 보인다. 이렇게 발굴하고 있는 사지를 돌아보니, 창성사지가 적은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을 보아도 이 절의 크기가 가늠이 간다.

많은 석재와 와편들, 창성사지 옛 역사 밝혀질까?

현재 발굴중인 창성사지는 장대석과 주초 등의 석재나 우물터, 축대 등으로 보아 모든 발굴을 마치고나면 사적이나 문화재자료로 지정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장대석을 잘 다듬어 사용했다. 
한창 발굴 중인 창성사지를 돌아본다. 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소나무 뒤편으로 문양을 한 사각형의 석재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우물인 듯하다. 삼면을 잘 다듬은 네모난 석재로 마감을 하고, 그 위에 네모난 문양을 곁들인 돌을 올려놓았다. 안에는 물이 고여 있다. 그동안 노출이 되어있던 우물터는 모두 막돌로 주변을 쌓아놓았었다. 그런데 이 우물은 왜 이렇게 정성들여 꾸며 놓은 것일까? 전문가가 아니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 우물은 특별하게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발굴중인 창성사지, 예사 절이 아니었네_4
잘 다듬은 장대석과 주초
 
잠시 소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본다. 마치 용트림을 하듯 굴곡진 산등성이들이 보인다. 옛날 진각국사도 이런 풍광 때문에 이곳 창성사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 드러난 잘 다듬은 장대석과 주초, 와편, 우물터와 전각 터 등을 보아도 예사 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이 다 끝나고 나면 창성사에 대한 더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창성사지, 진각국사, 광교산, 고려,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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