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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풍상에도 무념무상으로 서 있는 삶
수원화성 안에 깃들어 있는 나무를 만나다
2023-08-23 14:29:03최종 업데이트 : 2023-08-23 14:29:02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장안문과 화서문 사이 성가퀴에서 만나는 느티나무. 눈으로 봐도 300년은 넘어 보인다.

장안문과 화서문 사이 성가퀴에서 만나는 느티나무. 눈으로 봐도 300년은 넘어 보인다.


  수원화성을 돌면서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있다. 장안문과 화서문 사이 성가퀴를 걷다가 만나는 느티나무다. 큰 키에 몸집도 어른 서너 명이 감싸도 못 품을 정도다. 성곽 축성 당시 어린나무를 심었다고 추정해도 230년은 넘은 나이다. 아니 눈으로 짐작해보면 나이가 족히 300년은 넘어 보인다. 보통 이 정도면 보호수 팻말을 달고 있는데, 여기는 없다. 
 
수원천 버드나무. 수원천은 시민들의 쉼터이면서 문화 공간이 됐다.

수원천 버드나무. 수원천은 시민들의 쉼터이면서 문화 공간이 됐다.
 

  맑게 열린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은 의연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성곽은 보수가 한창인데, 여기 나무는 건강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성곽과 문루는 무너지고 훼손됐어도 나무는 시련을 빗겨 갔다. 아니 빗겨 간 것이 아니라, 둔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듯하다. 풍성한 몸채로 만드는 그늘에 잠시 앉으니 더위에 날리는 바람을 불러온다. 
  내친걸음에 수원화성에 있는 나무를 찾아 나섰다. 걸어서 화홍문에 왔다. 화홍문에 앉아 수원천과 마주한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천변에 버드나무가 멋진 풍경을 만든다. 흰 물살 소리를 듣고 있는 버드나무들은 천변과 잘 어울린다. 키가 클수록 잎은 늘어져서 겸손한 모습이 연상된다. 길가에 시장가 사람들, 바쁘게 다니는 차량 행렬에도 침묵을 지키며 산다. 사람들은 이 덕분에 밋밋한 도시에서도 버드나무를 보며 소박한 여유를 즐긴다. 
 
매향중학교 정문 쪽 우측에 작은 언덕에 느티나무가 숨어 있다. 1982년 수원시청에서 보호 지정 당시 370년이 됐다.

매향중학교 정문 쪽 우측에 작은 언덕에 느티나무가 숨어 있다. 1982년 수원시청에서 보호 지정 당시 370년이 됐다.


  정조대왕은 흔히 식목 왕이라 하는데, 화성 축성 후에도 나무를 심었다. 이 지역에 버드나무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수원천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특히 많아서 유천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리기도 했다고 하고, 수원에서 활동하던 상인들을 유상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시민들의 쉼터이면서 문화 공간이 됐다. 매련 여기서 벌이는 문화 행사는 사람들을 푹 빠지게 한다. 
 
서장대 소나무. 허리가 굽어진 소나무가 기품을 잃지 않고 멋을 내고 있다.

서장대 소나무. 허리가 굽어진 소나무가 기품을 잃지 않고 멋을 내고 있다.


  동장대(연무대)로 가는 길에 매향중학교 정문 쪽 우측에 작은 언덕이 있다. 여기에 느티나무가 숨어 있다. 1982년 수원시청에서 보호 지정 당시 370년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은 나이가 411년이나 된다. 작은 숲속에 있어 생육 환경은 좋은 듯하다. 그래서 외관이 멋들어져 보인다. 고목은 속이 비듯 이 나무도 외과 수술을 크게 했다. 
  창룡문에서 봉돈, 남수문 쪽으로 가는 동안 성곽 안에는 나무가 없다. 동이포루 근처에 마을 쪽으로 소나무가 보일 뿐이다. 팔달문을 지나 남포루를 지나 서장대로 오르기 시작하면 팔달산 나무들이 보인다. 
 
서암문 근처에 느티나무. 나무 둘레에 의자가 있어 사람들이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서암문 근처에 느티나무. 나무 둘레에 의자가 있어 사람들이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화성의 현륭원이 있는 화산엔 소나무가 울창하다. 정조가 현륭원을 자주 참배했는데, 송림에 송충이들이 많아 입으로 깨물어 죽였다는 말이 있다. 정조의 효심과 나무를 아끼는 마음이 만든 이야기다. 그래서인가 수원엔 소나무가 많다. 광교산, 칠보산, 여기산, 노송지대까지 소나무 천지다. 
  팔달산에도 소나무가 많다. 수원시의 발표에 의하면, 팔달산에는 침엽수와 활엽수 등 76종에 달하는 1만 7,541그루의 나무가 자생하고 있는데, 이 중에 47%인 8,293그루가 소나무라고 한다. 시는 팔달산 자생 소나무 숲을 가꾸는 '천년의 소나무 숲' 조성 사업을 한다. 사업 명칭은 정조가 1793년 수원 원행을 천년에 한 번 있는 즐거운 날이라고 한 표현을 인용했다고 한다. 사업의 이름이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처럼, 팔달산 소나무 숲과 수원화성의 자연경관 보전도 미래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팔달산 소나무 숲. 수원시는 팔달산 자생 소나무 숲을 가꾸는 '천년의 소나무 숲' 조성 사업을 한다.

팔달산 소나무 숲. 수원시는 팔달산 자생 소나무 숲을 가꾸는 '천년의 소나무 숲' 조성 사업을 한다.
 

  서장대에서 소나무를 본다. 큰 소나무는 수령이 오래됐다. 옛날 정조대왕이 신하들과 함께 올랐던 날을 기억할 것이다. 허리가 굽어진 소나무도 기품을 잃지 않고 멋을 내고 있다. 작은 소나무는 수줍은 여인처럼 잔가지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서암문 쪽에 네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 둘레에 의자가 있어 사람들이 쉼터로 이용하고 있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쉬고 있어 말을 걸었더니 "이곳에 자주 온다. 요즘처럼 더울 때는 여기가 시원하다."라고 한다. 나무 나이를 물었더니 "100년은 넘었다."라고 한다. 그 말에 "300년 가까이 돼 보인다."라고 대응하며 말을 나눴다. 
 
수원화성 행궁 앞 삼정승 느티나무. 신풍루에서 본 풍경.

수원화성 행궁 앞 삼정승 느티나무. 신풍루에서 본 풍경.


  샛길을 따라 내려가니 나무가 다양하다. 뽕나무, 자두나무, 팥배나무, 살구나무, 오리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큰 키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발밑에는 이름 모르는 예쁜 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야말로 나무와 꽃, 풀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약수터 쪽으로 내려오면 순환도로에 이른다. 여기는 벚나무가 지천이다. 봄에 벚꽃이 피면 감성이 무딘 사람도 꽃의 화려함에 취한다. 특히 이곳의 벚꽃은 아래 보이는 행궁과 수원화성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려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행궁 후원 역할을 하는 언덕에는 개나리가 피는데 행궁 쪽으로 쏟아질 듯이 피어 있어 일품이다. 
  수원화성 행궁 앞에는 삼정승 느티나무가 있다. 품(品)자형 삼괴목(三槐木)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5대 궁궐과 여러 곳의 행궁 앞에는 3그루의 괴목을 심었다. 어진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나무 그늘 밑에서 어진 임금과 함께 선정을 베푼다는 의미로 심었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는데 수령이 약 350년이라고 적혀 있다. 이제 나이가 391년이라는 의미다. 
  다른 궁궐의 삼괴목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다. 화성행궁 나무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삼괴목은 잔혹한 역사와 참혹한 전쟁을 지켜봤다. 비바람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말이 없는 나무지만, 생애를 곱씹어 보니 숙연해진다. 외국인 셋이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어서, 시원하냐고 했더니 엄지를 치켜세운다. 
행궁 안 느티나무는 수령이 600여 년이 넘었다. 하늘의 여백과 잘 어울려 간결하면서 심오한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느낌이다.

행궁 안 느티나무는 수령이 600여 년이 넘었다. 하늘의 여백과 잘 어울려 간결하면서 심오한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느낌이다.


  행궁 안에는 수령이 600여 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이 오래됐는데 보호수 지정은 하지 않았다. 화재로 일부 훼손됐으나 나무 살리기 사업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안내가 있다. 이에 대해 김충영(수원일보, 수원현미경에서) 박사가 자세히 밝힌 글이 있다. 화성행궁에는 한때 수원경찰서가 들어와 있었는데, 이 나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수난을 겪었다. 가지치기를 잘못해 나무 일부가 잘리고, 일부는 불에 타기도 했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으로 느티나무도 안정을 찾았다. 이 나무는 행궁을 짓기 전에 이미 400여 년이 된 괴목이었으니, 수령이 600년이 넘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행궁동 득중정 앞마당에 향나무. 품격 있는 기상이 지조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처럼 보인다.

행궁동 득중정 앞마당에 향나무. 품격 있는 기상이 지조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처럼 보인다.


  보기에도 안타깝다. 몸이 커다랗지만, 장작처럼 말라 있다. 우측은 나뭇가지만 있어 살아 있는 느낌이 없다. 좌측 나무에만 잎이 무성하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느낌은 허공으로 시원스레 뻗어 올랐다. 맑은 하늘의 여백과 잘 어울려 간결하면서 심오한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느낌이다. 
  행궁동 득중정 앞마당에 향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어떤 안내도 없이 위태롭게 서 있다. 몸체도 도끼로 내려찍은 듯 쩍 갈라져 있고, 옆에 붙은 나뭇가지는 죽은 듯하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가난한 선비가 떠오른다. 품격 있는 기상이 지조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도 보인다. 
  불볕더위에도 화성 행궁 2단계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행궁을 복원하는 것은 우리 역사 회복이다. 문제는 자연유산은 복원이 쉽지 않다. 행궁동 득중정 앞마당에 향나무가 향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나무들을 만나니 늠름한 자태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조금도 거만하지 않고, 온화한 미소로 살아왔다. 풍상을 이겨낸 것도 큰 몸이 아니라, 가슴속에 의지와 염원을 담고 견뎌냈다. 나무의 심오한 정신과 향기가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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